지난해 말 김규정 씨(46)의 금융자산 규모는 약 10억원이었다. 채권에 5억원, ELS에 2억원, 주식과 펀드에 3억원가량을 분산해 넣어두고 있었다. 3월 현재 김 씨의 자산은 12억원으로 불어났다.
채권과 ELS에선 약간의 수익을 얻는 데 그쳤지만 증시 활황 덕분에 보유주식 가치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요즘 김 씨는 주식에서 본 수익을 언제 실현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김 씨는 과거 어렵사리 확보한 수익률을 환매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몇 차례 까먹은 뼈아픈 추억을 갖고 있다. 역시 시장이 좋았던 지난해 상반기에는 5개월간 무려 60%의 수익을 봤지만 소버린 쇼크 이후 급락장에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그런 경험을 떠올리면 지금쯤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다가도 올해 장이 대세 회복 국면이라는 정보를 접하다 보면 또 마음이 달라진다. ‘너무 적게 먹고 빠지는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주식 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씨와 같은 고민에 맞닥뜨리게 된다. 주식 투자 성과가 지금까지 좋았다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지금까지 좋지 않았다고 해서 계속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즉 장이 나쁘건, 좋건 간에 상관없이 주식을 언제 사고팔아야 할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투자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시장분위기의 지배를 받는다. 주식 가격이 급등하면 생각이 낙관적으로 바뀌면서 주식을 더 사게 된다.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면 비관론에 휩싸이면서 주식을 팔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냥 가만히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 상반되는 이런저런 정보에 좌고우면하다 보면 순식간에 장의 방향성은 바뀌어 ‘어어’ 하는 사이에 수익률이 날아가거나 장 진입 타이밍을 놓치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리밸런싱(rebalancing)’의 원칙이다.
리밸런싱이란 자산배분 비율을 조정함으로써 최초 투자를 시작할 때 세워뒀던 자산배분 비중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산배분은 위험 수준이 다양한 여러 자산집단을 대상으로 투자 자금을 배분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김 씨의 지난해 말 자산배분을 보면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이 50%, ELS 등 중립형 자산이 20%, 나머지 30%가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김 씨가 거래 증권사 PB와 의논해 정한 나름의 전략적 자산배분 비율이다.
투자를 하다 보면 포트폴리오 내 자산집단의 가격이 변하면서 자산간 비중이 변화한다. 대부분 비중 변화는 변동성이 높은 주식부문 자산의 가격 변동에 의해 비롯된다. 김 씨의 경우 5:2:3이었던 자산배분 비중이 2개월이 조금 더 지나는 새 4:2:4로 바뀌었다.
김 씨가 원래의 자산배분 비중으로 돌아가려면 이익이 난 주식을 팔아 비중이 줄어든 채권을 새로 사야 한다. 이것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다.
리밸런싱에 생소한 투자자들은 지금 한창 오르고 있는 주식을 파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리밸런싱을 해야 하며 또 리밸런싱의 원칙과 방법은 무엇일까.
리밸런싱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산배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증시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원칙 중 하나로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숫자 만큼을 주식 비중으로 갖고 가라’는 말이 있다. 주식은 금융자산군 중에서 가장 변동성이 큰 상품이다. 재산을 쉽게 불리는 수단으로 주식만 한 것이 없지만 반대로 큰 하락장에선 개인의 자산을 반 토막, 세 토막 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젊을 때는 주식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만회할 충분한 기회가 있다. 20~30대 직장인이 저축액의 대부분을 은행 정기예금으로 운용한다면 이는 너무 소심한 것이다.
연령에 따라 자산배분도 다르게
미육 뉴욕 증권거래소
증시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20~30년의 중장기적 기간을 두고 봤을 때 주식투자 수익률은 평균적으로 예금 이자율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처럼 아직 성장하는 시장에선 특히 그렇다. 주식의 변동성이 두려워 젊은 나이부터 안전자산에만 의존한다면 증시상승을 개인 자산 증가로 연계시킬 기회를 포기하는 꼴이 된다. 즉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은퇴를 앞둔 50대 남자가 주식에서 큰 손실을 본다면 이걸 채워넣기가 만만치 않다.
50대는 돈을 벌 기회는 제한된 대신 지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잭팟’을 바라고 주식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경우에 따라선 한 번의 큰 손실이 은퇴 이후의 곤궁한 생활을 불러올 수도 있다.
따라서 젊을 때는 주식형 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방법으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나이가 들수록 안정형 자산의 비중을 늘려가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30세에 주식 비중을 70%로 가져간 사람이 70세가 됐을 때는 그 비중이 30% 이하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 비율이 나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연령의 투자자라 하더라도 자산규모, 개인의 투자성향에 따라 위험자산의 비중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1억원을 가진 사람이 5000만원을 잃는 것보다는 10억원 자산가가 5억원을 잃는 쪽이 충격이 덜하다. 돈이 많다면 주식 비중이 커도 무방하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이가 들수록 안전자산의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는 기본원칙, 사전에 정한 자산배분 비율을 지속적인 리밸런싱으로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다.
수익 내려면 리밸런싱 하라
리밸런싱의 1차적 필요성은 ‘수익의 확보’에 있다. 자본시장은 주기적으로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리밸런싱 전략은 이렇게 과잉 반응하는 자산가격이 장기적으로는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주식 가격이 폭발적으로 우상향하는 대세 상승장이라고 치자. 이 상승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투자자 A씨는 지금까지 30% 수익을 봤는데 계속 있으면 수익률이 100%를 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당장 내일 미국이나 중국에서 큰 경제변수가 돌출해 하락장으로 반전하지 말란 법도 없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 언제가 됐든 간에 주가는 언젠가는 내재가치에 따라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적절한 시점에 주식을 팔아 안전자산으로 편입하는 것이 수익을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방법이다.
투자자는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자산의 가격이 내재가치보다 상승해 포트폴리오 내 비중이 늘어났을 때 이 만큼의 자산을 매도하고 대신 비중이 줄어든 자산을 매수함으로써 투자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것이 리밸런싱 전략이 추구하는 바다.
리밸런싱에도 원칙이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은 “리밸런싱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리밸런싱 대상과 방법, 시기, 범위 등에 대해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시장 상황에 휩쓸려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리밸런싱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포트폴리오 내 편입 자산 중 주식, 채권, 부동산과 같은 상위 수준 자산간 조정인지, 성장주와 가치주 또는 대형주와 중소형주 등과 같은 하위수준의 조정인지, 아니면 이 모두를 조정할 것인지 리밸런싱 대상 자산의 범위를 사전에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리밸런싱의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낸 자산을 팔아 성과가 적은 자산을 매입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그렇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성과가 적게 난 자산을 팔고 성과가 많이 난 자산 비중을 계속 늘려가는 모멘텀 리밸런싱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장기적으로 가치주보다 성장주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국면에서 가치주 비중을 전략적으로 줄이는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 해당 자산이 시장 또는 벤치마크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맞춰 자산 비중을 조정할 수도 있다.
리밸런싱의 시점과 빈도는 무척 까다로운 주제다. 투자자에 따라선 아예 리밸런싱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비정기적으로 리밸런싱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것은 일정 주기를 정해 두고 정기적으로 리밸런싱을 실시하거나 포트폴리오 내 자산 편입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었을 때 하는 것이다.
만약 특정 자산집단 비중이 일정 규모를 상회하거나 하회할 때 리밸런싱을 하기로 했다면 최초 자산 비중에서 어느 정도 오차가 생길 때 리밸런싱을 실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식 40%와 채권 60%로 짜인 포트폴리오를 가진 투자자가 해당 자산 비중이 20% 이상 변동하면 리밸런싱 하기로 한 경우를 가정해 보자.
투자자는 주식비중이 48%를 넘으면 주식을 매도해 채권을 구입하고 주식 비중이 32% 미만이 될 때 채권을 매각해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으로 최초 비중으로 돌아가게 된다.
변주열 미래에셋증권 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개인 투자성향에 따라 리밸런싱 주기는 3개월, 6개월, 1년 등으로 다양할 수 있다”며 “단 시장상황에 휘둘릴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면 정해진 주기에 따라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매매비용·세금부담은 단점
리밸런싱의 장점을 요약하면 우선 포트폴리오의 장기적 수익률을 제고시키면서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는 포트폴리오와 투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깊게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다. 일단 리밸런싱에는 비용이 든다. 포트폴리오 조정을 지나치게 자주 반복하다보면 매매비용이나 세금 부담이 커진다. 또 합리적인 기간 또는 진폭의 범위 내에서 평균회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리밸런싱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수익률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투자자가 과연 가격이 오르는 자산을 팔고 떨어지는 자산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른다. 실제 상승장에서 오르는 주식을 파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락장에서 떨어지는 주식을 사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김동엽 센터장은 “리밸런싱 전략은 단기투자보다는 은퇴자금 마련과 같은 장기투자에 적합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투자기간이 길어질수록 시장의 과잉반응과 평균회귀 현상을 활용한 리밸런싱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리밸런싱을 투자자의 의지에만 맡겨 두면 상승장에서의 낙관 심리와 불황장에서의 공황 심리로 제대로 된 리밸런싱 전략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시스템에 따라 자동 리밸런싱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