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1일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조금 낯선 공간 하나가 문을 연다. 약 330㎡ 규모의 독립 전시관에 이탈리아 작가 22명의 작품 45점이 들어서는 ‘이탈리아 파빌리온’이다.
하동군과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민간이 주최하는 국내 비엔날레 가운데 독립 국가관이 마련되는 첫 사례이자 최대 규모다.
국가관은 세계 비엔날레 역사의 오래된 문법이기도 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1907년 벨기에가 첫 국가 파빌리온을 열었고, 이후 국가관은 각국이 자국의 동시대 미술을 독립된 공간과 서사로 제시하는 상징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문법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하동 삼화실 골짜기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개관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골짜기의 작은 예술제, 10년 만에 국가관까지
지리산 환경예술의 뿌리는 국가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리산생태아트파크 조성을 위한 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2011년이고, 하동군과 한국조형예술원이 관련 협약을 체결한 것은 2012년이다.
2016년에는 ‘다시, 자연으로(Back to the Nature)’를 주제로 첫 지리산국제환경생태예술제가 열렸다. 당시 영국의 대지미술가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가 지리산에 머물며 작업했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작가 에릭 사마크(Erik Samakh), 2018년에는 미국 작가 제임스 W. 설리번(James W. Sullivan)이 레지던시를 이어갔다.
완성된 작품만 전시장으로 가져오는 방식보다 작가가 지역에 머물며 산과 숲, 돌과 식생을 작업의 재료로 삼는 방식이 초기 행사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변화는 이후 더 빨라졌다. 2024년에는 ‘Jirisan Biennale 2024_Pre’를 열며 국제미술전뿐 아니라 백남준을 기리는 AI 영화, 티아트 퍼포먼스 등으로 무대를 넓혔다. 자연을 바라보던 예술제가 자연과 기술의 관계까지 질문하기 시작한 셈이다.
올해 이탈리아 국가관은 갑자기 등장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2025년 비엔날레에서는 마리아 만치니(Maria Mancini)가 이끄는 ‘이탈리아 동시대미술 특별전’이 먼저 열렸다. 당시 비토 부치아렐리, 파올라 디 벨로, 마시모 펠레그리네티 등 이탈리아 작가 7명이 참여했다.
만치니는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서 미술기법사를 가르쳐 왔으며 2025년부터 복식사를 맡고 있고, 밀라노 MXM Arte의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이탈리아 예술교류 프로젝트를 장기간 진행해 온 그가 지난해 특별전에 이어 올해 파빌리온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7명의 특별전은 22명·45점 규모의 독립 공간으로 커졌다.
전시 주제는 ‘이탈리아의 일기: 계시와 그림자(Diario Italiano. Rivelazioni e Ombre)’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과 이탈리아 마그마 문화협회의 후원 아래 마시모 펠레그리네티를 비롯한 작가들의 동시대 작업을 소개한다. 중요한 변화는 작품 수보다 형식에 있다.
해외 작가를 ‘초청하는 행사’에서 한 국가의 미술을 독립된 공간과 큐레이션으로 보여주는 단계로 국제교류의 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국제 네트워크는 이탈리아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리산아트팜은 올해 노르웨이의 하데란드 폴크훼이스콜레와 손잡고 대지미술과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결합하는 ‘랜드 아트 제너레이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봄에는 예술가와 교직원, 학생 등 40여 명이 하동을 방문해 지역 주민과 워크숍을 진행하는 계획도 잡혀 있다. 그 점에서 지리산 비엔날레가 앞으로 증명해야 할 것은 행사의 크기만은 아니다.
국가관이 한 해의 화제성으로 끝나지 않고 작가 레지던시와 교육, 주민 참여, 국제 공동 프로젝트로 반복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환경’을 주제로 내거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이 실제 에너지와 지역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도 남아 있다.
10월 1일 문을 여는 이탈리아 파빌리온은 지리산의 작은 예술제가 세계적인 비엔날레의 형식을 받아들였다는 상징이다. 그러나 진짜 전환점인지는 다음 국가관과 다음 레지던시, 그리고 그 사이 하동에 무엇이 남는지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