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내세운 오픈AI가 선전포고한 AI 패권 전쟁에 구글이 맞불을 놓으면서 경쟁구도가 점점 격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구글은 “제미나이 3을 오늘부터 검색에 바로 넣는다”라고 발표했다. 예전 같으면 ‘일단 내놓고, 몇 주 뒤에 적용하고, 반응 보고 손보는’ 순서였는데, 이번엔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12월 11일, 오픈AI는 GPT-5.2를 공개했다. 업계에선 “구글이 속도를 올리니 오픈AI도 속도를 올렸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요즘의 AI 경쟁은 성능 비교표로 끝나지 않는다. 검색·업무도구·앱 생태계라는 ‘배급망’ 위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 그리고 그 깃발을 오래 꽂아둘 전력·데이터센터·칩 공급망이라는 병참이 받쳐주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말하자면, 이건 모델 올림픽이 아니라 플랫폼 전쟁이다.
오픈AI의 최근 전략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모델을 팔기보다, 모델이 들어갈 ‘자리’를 먼저 만든다.” 그 ‘자리’가 바로 챗GPT다. 대화창 하나로 시작했지만, 지금 오픈AI가 노리는 건 대화창이 아니라 업무의 첫 화면이다. 사람이 하루에 가장 오래 붙잡는 화면을 잡는 쪽이 생태계를 만든다. 스마트폰 시대에 홈스크린과 앱스토어가 그랬고, 지금은 “대화형 인터페이스가 새로운 홈스크린이 될 수 있느냐”가 핵심 질문이 됐다.
이 지점에서 엔비디아가 등장한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골드러시의 ‘삽과 곡괭이’다. 하지만 이번엔 삽을 파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산 운영 방식까지 같이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오픈AI와 엔비디아가 초대형 파트너십을 공개하며 “최소 10GW 규모의 엔비디아 시스템 배치” 같은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은 것도 그 연장선으로 읽힌다. 숫자가 과감한 이유는 단순하다. AI는 이제 ‘똑똑함’보다 ‘물량’이 돈이 되는 구간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이에 대해 “모든 것은 컴퓨팅에서 시작과 끝이 난다”라고 말하며 포문을 열었다.
더 많은 사용자가 더 자주, 더 복잡한 일을 시키면, 연산과 전력이 곧 비용이 된다. 그래서 엔비디아와의 결합은 성능 자랑이 아니라 원가·공급·확장성 이야기다.
동시에 오픈AI의 동맹은 단일 혈맹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합이 바뀌는 ‘연합군’이다. 컴퓨팅 수요가 폭발하면서 오픈AI는 공급망을 넓히고, 필요하면 경쟁자 클라우드와도 손을 잡는다. “진영”은 선명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선 연산이 모자라면 적의 항구도 빌리는 실용주의가 작동한다. 결국 오픈AI가 지키려는 건 ‘자존심’이 아니라 ‘가동률’이다. 하루에 멈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플랫폼 전쟁에서 땅을 잃는다.
구글은 AI 전쟁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새로운 앱”을 만드는 회사라기보다, 이미 전 세계에 깔린 도로망(검색·지메일·문서·지도·유튜브·안드로이드)을 가진 회사다. 그래서 구글이 제미나이를 키운다는 건, 새 사업을 연다는 뜻보다 기존 제국의 엔진을 갈아 끼운다는 뜻에 가깝다. 이게 구글의 무서운 점이다. 모델이 좋아도 배포가 느리면 체감이 안 되는데, 구글은 배포를 ‘기본 옵션’으로 갖고 있다.
그 배포의 밑바닥에서 판을 흔드는 도구가 TPU
다. 구글이 공개한 7세대 TPU ‘아이언우드(Ironwood)’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이제는 훈련(training)보다 추론(inference)이다.” AI가 대중화될수록 ‘대규모 훈련’보다 ‘매일 수억 번 돌아가는 추론’이 더 큰 비용 덩어리가 된다. 그러니 칩 경쟁도 ‘초당 몇 토큰’이 아니라 “같은 전력에서 얼마나 많은 요청을 처리하냐”로 이동한다. 구글이 TPU를 강조하는 건 기술 과시이면서 동시에 클라우드 전략이다. 자체 칩은 곧 클라우드 계약을 따내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구글 vs 오픈AI지만, 병참의 세계에서는 “물량을 맞추는 쪽이 이긴다”라는 원칙이 먼저 온다. 구글은 TPU로 그 물량의 일부를 흔들 수 있게 됐다.
이제 질문은 “누가 더 똑똑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이 쓰이게 할 것인가”다. 구글은 제미나이를 검색에 ‘즉시’ 붙이는 전략을 전면에 세웠다. 발표일에 맞춰 검색에 바로 넣는다는 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 전체가 “배포 속도”를 KPI로 삼았다는 뜻이다. 사용자가 체감하는 ‘AI 경험’은 모델 발표 자료가 아니라, 내가 매일 쓰는 서비스 안에서 갑자기 편해지는 순간에 생긴다. 검색은 그 순간을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무대다.
오픈AI는 다른 무대를 만든다. 챗GPT를 “앱들이 들어오는 생태계”로 만드는 방식이다. 10월 오픈AI가 ‘Apps in ChatGPT’와 Apps SDK를 공개한 흐름은, 챗GPT를 단순 대화창이 아니라 외부 도구·데이터를 연결해 일을 끝내는 작업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12월 어도비가 포토샵·아크로뱃·익스프레스를 챗GPT 안에서 쓰도록 통합한다고 발표하면서, 이 전략은 더 설득력을 얻었다. 사용자가 포토샵을 열고, 파일을 옮기고, 다시 메신저로 돌아오는 ‘전환 비용’을 줄일수록, 챗GPT는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된다. 플랫폼 경쟁에서 체류시간은 곧 시장 점유율로 번역된다.
이 경쟁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건 비용이다. AI가 생활 속으로 들어올수록 ‘추론 단가’는 치명적인 변수로 떠오른다. 결국 두 진영 모두 “더 많이 쓰이게 만들기”와 “더 싸게 돌리기”를 동시에 해야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챗GPT vs 제미나이 경쟁은 기능 비교보다 업무 흐름(워크플로)을 누가 장악하느냐, 그리고 그 흐름을 전력·칩·클라우드 비용 구조로 누가 더 싸게 유지하느냐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구글은 이미 깔린 서비스 도로망을 활용하고, 오픈AI는 도로 위에 ‘새로운 광장’을 세운다.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는, 사용자 습관이 어디에 고정되느냐에 달렸다.
AI 전쟁의 최종 보스는 의외로 전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약 945TWh 수준으로 늘며 ‘두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앞으로 5년 동안 두 배 이상 늘 전망”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숫자만이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특정 지역에 몰리고, 송전·변압기·인허가·냉각수 같은 요소가 한꺼번에 병목을 만든다. 그래서 몇만 장의 GPU보다 “몇 년 치 전력 계약”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전력망이 받쳐주지 않으면, 계획은 발표 자료에만 남는다.
이 대목에서 엔비디아는 여전히 삽과 곡괭이 기업으로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삽을 파는 회사가 광산의 운영 규칙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오픈AI와의 초대형 동맹은 그 신호 중 하나다. 단, 이 같은 결합은 규제·반독점 같은 변수를 동반한다. 전쟁에서 병참이 중요하듯, 플랫폼 전쟁에서도 규제라는 ‘보급 제한’이 어느 순간 속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결국 AI 경쟁의 승자는, 가장 화려한 데모가 아니라 가장 오래 버티는 운영체계를 가진 쪽일 가능성이 커졌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