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정과 작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오브제가 3000만달러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지난 12월 크리스티 런던에서 파베르제의 윈터 에그가 그 가격에 낙찰됐다. 파베르제는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 황실에 보석과 오브제를 납품해 온 주얼리 하우스다. 황제는 매년 부활절마다 황후와 황태후에게 선물할 달걀 장식을 주문했고, 31년간 50개의 임페리얼 에그가 탄생했다. 윈터 에그는 그중 하나로, 2002년에 960만달러에 팔렸으니 이번 차익만 2000만달러가 넘는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2022년 11월 제네바에서 열린 파베르제 전시가 떠올랐다. 원래 러시아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계획을 뒤엎었다. 공교롭게도 제네바는 파베르제가 혁명을 피해 망명한 뒤 생을 마감한 도시였다. 게다가 전시를 주관한 이고리 칼 파베르제(Igor Carl Faberge… ) 재단도 파베르제의 손자가 바로 그 제네바에 세웠다. 전쟁 때문에 밀려난 전시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도시에 도착한 셈이다. 160점의 주얼리와 오브제가 전시됐는데, 모두 러시아 혁명 이전 오리지널 파베르제 작품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파베르제 에그를 여러 번 관람했고, 경매와 딜러를 통해 파베르제 오브제들도 수십 차례 접해본 터였다. 그런데 이 전시에는 황제가 직접 주문한 임페리얼 에그 세 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자리에서 세 점을 본 건 처음이었다. 황제의 주문으로 제작한 총 50개의 임페리얼 에그 중 7개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나머지 43개 대부분도 박물관이나 개인 컬렉션에 들어가 좀처럼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윈터 에그만 1994년, 2002년, 2025년 세 차례나 경매에 등장했고, 매번 그 시점의 파베르제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백수정은 고가 보석 축에 들지 않고, 로즈컷 다이아몬드 4000개를 합쳐봐야 그리 높은 값어치가 나올 리 없다. 그렇다면 3000만달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1885년 알렉산드르 3세가 부활절 선물로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에게 작은 달걀 장식 하나를 건넸다. 흰 에나멜 껍데기를 열면 금빛 노른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 금으로 빚은 암탉이 들어 있다. 암탉 배 속을 열면 다이아몬드 왕관과 루비 펜던트가 또 나온다. 열고 또 열면 예상치 못한 보물이 튀어나오는 구조. 황후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이 간다. 6주 뒤 파베르제는 ‘황실 공식 금 세공사’ 칭호를 받았다. 매년 부활절마다 새 달걀 장식을 주문하는 전통이 여기서 시작됐고, 아들 니콜라이 2세는 황후 알렉산드라 몫까지 더해 연간 두 개씩 의뢰했다.
파베르제 공방은 해마다 새로운 서프라이즈를 고안해야 했다. 어떤 달걀은 열면 미니어처 궁전이 나왔고 어떤 달걀은 태엽을 감으면 황금 공작새가 날개를 펼쳤다. 황실 요트의 정밀한 모형을 담기도 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통을 기념해 금으로 기차를 만들어 넣기도 했다. 그들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었다. 달걀 하나를 완성하는 데 장인 수십 명이 1년 넘게 매달렸고 비용은 황실 예산에서 충당했다. 파베르제에게 임페리얼 에그는 기술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였고 황제에게는 사랑하는 여인들을 놀라게 할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28년 동안 50개의 달걀이 쌓였고 윈터 에그는 그 계보의 막바지에서 태어났다.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 디자인을 맡은 건 스물다섯 살의 알마 필이었다. 훗날 파베르제 역사상 손꼽히는 여성 디자이너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때는 아직 신참이었다. 어느 겨울날 서리 낀 창문을 바라보던 그녀에게 얼음 결정이 꽃밭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윈터 에그가 신참 디자이너의 창가에서 태어난 순간이었다. 알마 필은 백수정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투명한 외형을 빚어낸 뒤, 플래티넘 눈송이 모티프 위에 로즈컷 다이아몬드 4000여 개를 촘촘히 박았다. 뚜껑을 열면 플래티넘 바구니 안에 백수정으로 깎아낸 아네모네가 기다린다. 겨울 속에 봄을 숨겨둔 것이다. 사실상 수천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 자체는 큰 값어치가 없다. 실제 가치는 서리라는 아이디어를 위해 다이아몬드를 동원한 예술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보석으로 무엇을 표현했느냐가 보석 자체보다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터지자 파베르제 일가는 스위스로 도피했다. 3년 뒤 페테르 칼 파베르제는 망명지에서 숨을 거뒀고, 그가 만든 달걀 장식들은 크렘린 무기고 어딘가에 상자째 처박혀 먼지만 쌓여갔다. 그러다 1920년대 후반, 소비에트 정부가 외화 확보를 위해 황실 보물을 팔아치우기 시작하면서 윈터 에그도 러시아를 빠져나온 것이다. 당시 런던 앤티크 딜러 워츠키가 450파운드에 사들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이 싼 값이다. 혁명 정부에게 제정의 유산은 외화로 바꿀 수만 있으면 그만인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영국 귀족과 아트 컬렉터 손을 몇 차례 거치다가 1975년 마지막 소유자가 세상을 뜨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러다 1994년 제네바 크리스티에 불쑥 나타나 560만달러에 낙찰됐다. 450파운드짜리 달걀 장식이 반세기 만에 수백만달러가 된 것이다. 2002년 뉴욕에서 960만달러, 2025년 런던에서 3020만달러. 나타날 때마다 전작을 갈아치웠다. 윈터 에그는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지만, 4년 뒤 혁명으로 그 왕조는 무너진다. 눈부신 겨울 축제가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던 시절에 태어난 오브제였다. 역사를 아는 눈에는 마지막 겨울의 상징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2002년의 낙찰자는 카타르 왕가였다. 960만달러에 손에 넣어 3020만달러에 팔았으니 연평균 수익률은 5% 남짓, S&P500 장기 수익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계산에는 빠진 게 있다. 23년간 도하 왕궁 어딘가에 놓여 있었을 이 오브제. 국빈 만찬에서 화제가 되었을 수도, 왕족들의 눈을 즐겁게 했을 수도 있다. 세계 최정상급 컬렉션의 일부로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이었을 터다.
황제도 사라지고 제국도 무너졌지만, 서리와 봄꽃을 담은 이 오브제는 한 세기를 버텼다. 러시아 황실에서 소련 정부로, 런던 딜러에서 영국 귀족으로, 다시 카타르 왕가로.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