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드가 걸린 것 같아~”
티샷을 날린 동반자 공이 숲 속에 들어가자 누가 옆에서 보낸 멘트이다. 내 눈에는 슬라이스가 분명했다.
페이드(Fade)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휘는 전략적인 샷을 말한다. 반면 슬라이스(Slice)는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밀려나가는 미스 샷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살짝 휘는 드로(Draw)와 페이드는 주로 프로선수들이 장애물을 피하거나 거리를 내기 위해 구사한다.
필드에서 사용하는 골프 용어는 종종 헷갈린다. 골프가 국내에 들어온 이래 관행적으로 잘못 굳어진 용어가 많다. 셋업(Set up)과 어드레스(Address)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골퍼도 많지 않다. 셋업은 스탠스, 클럽 각도 등 기본 준비자세를 말하고 어드레스는 공을 치기 직전 클럽을 땅에 붙이는 자세를 말한다. 즉 셋업은 전체적인 준비, 어드레스는 클럽을 지면에 맞닿는 순간을 표현한다. 어드레스는 셋업의 마지막 단계로 보면 된다.
“티업 시간이 언제인데 지금 오는 거야. 좀 일찍 서둘러야지.” 지인이 출발을 기다리던 카트로 달려오자 기다리던 동반자가 핀잔을 줬다. “티업(tee up)이 아니라 티오프(tee off)야. 너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또 다른 동반자가 면박을 주면서 골프 시작 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골프 용어는 잘 아네~.” 지켜보던 나머지 동반자가 가세했다.
골프 시작을 알리는 행위는 티업이 아니라 티오프가 맞다. 티업은 첫 홀에서 티샷을 위해 공을 티 위에 올리는 행위다. 출발 시간을 말하려면 티에서 공이 날아가는 티오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골프를 한다”는 말 대신 라운드(round) 혹은 라운딩(rounding)이라는 단어도 혼용되는데 라운드가 정확한 용어다. 라운드에 ing를 붙인 라운딩은 국적 불명 용어이다.
“내일 라운딩이 있어”가 아니라 “라운드가 있다”라는 표현이 맞다. 라운드는 18홀 전체 경기를 말하고 홀은 한 개 코스를 말한다. 즉 “오늘 라운드 어땠어?”라고 말하면 하루 경기 전체를 뜻한다.
티샷을 하기 위해 올라가는 구역을 티박스(tee box)라고 자주 말하는데 티잉 구역(teeing area)이 맞다. 티샷을 하는 구역이 박스처럼 네모나다고 해서 티박스라 붙여진 일본식 용어다.
그린에서 퍼트하기 전에 라인(line) 혹은 라이(li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라인은 공이 홀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려보는 가상의 선을 말한다. 따라서 라이가 아니라 ‘라인을 읽는다’라고 말한다.
라이는 공이 놓여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퍼트하기 어려운 지점에 놓였다면 ‘라이가 어렵다’ 혹은 ‘라이가 안 좋다’라고 표현한다. ‘라이를 읽는다’라는 표현은 틀렸다.
라이각(Lie Angle)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클럽 샤프트와 헤드의 각도를 말한다. 즉 라이는 필드에서 사용하고 라이각은 장비 용어이다.
라이각은 쉽게 말해 클럽을 땅에 놓았을 때 클럽 헤드가 지면과 얼마나 수평을 이루는지를 나타낸다. 라이각이 자기 스윙과 체형에 맞지 않으면 일관된 샷을 만들기 어렵다.
흔히 사용하는 훅(hook) 라이, 슬라이스(slice) 라이, 퍼팅(putting) 라이도 잘못된 표현이다. 공이 꺾이는 지점을 말하는 브레이크(break) 포인트를 기준으로 훅 브레이크, 슬라이스 브레이크라는 단어가 맞다.
골프에서 홀(hole)은 두 가지 의미다. 일단 그린에서 퍼터로 공을 집어넣는 구멍을 말한다. 다음으로 티잉 구역(teeing area)에서 스루 더 그린(through the green)을 거쳐 그린에 이르는 코스를 구성하는 단위다. 첫 홀, 두 번째 홀, 18홀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그린에서 홀(hole)과 홀컵(hole cup)도 혼용되는데 홀이 바른 용어다. 홀 안에 컵이 있으면 “홀 컵에 넣다”로 말할 수도 있는데 중복 표현이다. 처가를 처갓집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샷(shot)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공을 클럽으로 안전하게 빼낼 때 레이 업(lay up)이라고 표현한다. 레이 아웃(lay out)이라고도 자주 말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비탈진 곳에서 공을 페어웨이로 잘 쳐냈을 때 “오우, 레이 업이 훌륭했어!”라고 말한다.
다음 홀에서 첫 번째 티샷하는 사람을 오너(owner)라고 말하는데 틀린 표현이다. 샷을 가장 먼저 하는 골퍼를 아너(honour)라고 한다. 지난 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기에 존경, 공경, 영광의 뜻을 부여한다.
파3홀에서 진행이 밀릴 때 앞선 팀이 그린에 공을 올려놓고 마크하고 빠진 상태에서 티잉 구역에 있는 뒤 팀에 사인(sign)을 준다. 정확하게는 손을 흔든다는 의미로 웨이브(wave)가 맞다.
공이 위험지역으로 날아갈 때 경고를 알리면서 “보~올(ball)”이라고 고함지르는데 “포어(Fore)”가 원래 용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골프장에서 “포어”라고 외치면 알아들을 사람이 많지 않다.
연못 등 예전 해저드 구역은 페널티(penalty) 구역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숏 홀, 미들 홀, 롱 홀도 파3, 파4, 파5 홀이라고 부르는 게 올바르다. 파 온(par on)도 정규 온(regulation on)이라고 말한다.
그린에서 한 타로 넣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오케이(OK)라는 표현을 쓴다. 컨시드(concede)나 김미(gimme)가 옳은 표현이다.
기준 타수보다 두 배의 타수를 기록할 때 간혹 사용하는 양파라는 표현도 옳지 않다. 더블(double) 파가 맞고 4타를 넘길 때 에버라는 골프 용어는 없으며 쿼드러플 보기(quadruple bogey)가 정확하다. 간혹 TV 해설자가 컷(cut) 통과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도 중복 표현으로 엄밀하게는 예선 통과 혹은 예선 탈락이라고 해야 옳다.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 프로 골퍼도 헷갈리는 용어는 플레이스(place)와 리플레이스(replace)다. 플레이스는 볼 위치를 옮기는 것이다. 즉 수리지나 규칙에 따라 페어웨이 상태가 나빠 다른 지점으로 공을 옮기는 경우 등을 말한다. 반면 리플레이스는 디벗 자국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든지 그린에서 마크하고 집어든 공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을 때 사용한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