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장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를 표방한 조란 맘다니(34, Zohran Mamdani)가 최종 승리했다.
인도계 이민 2세로 무슬림 출신인 그는 비주류 출신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1위 경제도시 뉴욕의 시정을 이끌게 됐다.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왼쪽에 속하는 정치노선을 내세워 뉴욕의 표심을 거머쥐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이번 선거 결과를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분석했다. 유권자들이 정치적 정체성보다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표를 던졌다고 전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보수 성향 투자자인 피터 틸(Peter Thiel)도 이 같은 분석에 동감한다. 맘다니 당선이 확정된 후 틸이 지난 2020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마크 안드리슨에게 보낸 이메일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당시 “밀레니얼 세대 약 70%가 사회주의에 호감을 보인다. 이들을 어리석다거나 세뇌됐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적은 바 있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틸의 예언이 현실이 되자, 그가 바라보는 맘다니 승리 비결과 향후 정치 지형에 대한 분석이 주목받고 있다.
틸은 젊은 세대가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고 진단하며 “자본주의는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사는 것을 보장했던 자본주의 ‘성공의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젊은 층이 절감한다는 의미다. 틸이 바라보는 맘다니 승리의 핵심은 뉴욕의 부동산 문제다. 그는 “학자금 부채가 계속 쌓이는데 임금 상승은 정체되고 생활비와 렌트비는 폭등한다면 젊은 세대는 ‘시스템이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맘다니의 승리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적 실패’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 틸의 해석이다. 실제 출구조사에 따르면 뉴욕 18~29세 유권자의 약 78%가 맘다니에게 투표했다.
맘다니는 약 100만 가구에 달하는 임대료 동결, 보편적 보육, 부유층 증세를 통한 사회정책 재원 마련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틸은 맘다니의 이러한 공약이 뉴욕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뉴욕시가 임대료를 대규모로 통제할 경우 시장 공급이 줄어들어 장기적으로는 집값과 렌트비가 더 오를 것”이라고 지적하며, 주택의 ‘사회화(socialise)’가 주거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틸은 한편으로 “기성 정치인이 놀라울 정도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은 반면, 맘다니는 핵심 문제를 정확히 건드렸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틸은 이번 현상이 특정 도시의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더 넓은 현상의 일부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젊은 세대가 점점 아이를 덜 낳고, 고령 인구가 늘고 있다. 투표로 선택된 사회주의적 체제가 온다고 해도, 결국 젊은 이를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복지 부담이 급증하는 구조 속에서 젊은 세대의 정치적 발언권은 약화될 수 있다. 이들이 원하는 제도적 결과가 쉽게 도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틸은 보수 진영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단순히 상대 후보를 극좌·극단주의자로 낙인찍는 전략만 반복한다면, “향후 오랜 기간 동안 기성정치가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전한다.
맘다니 당선자와 도널드 트럼프가 향후 어떤 설전을 주고 받을지도 관심사다. 맘다니 당선자는 대통령의 강력한 이민 정책을 비판하며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해 주 방위군을 뉴욕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연방 정부와 새롭게 출발하는 맘다니 시 정부 간 충돌이 예상된다. 맘다니 당선자는 선거 기간 중 고소득층 반발을 샀던 부유세 신설 공약을 실제 집행하겠다는 의지도 밝혀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뉴욕시에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을 만들라는 게 본인이 당선된 이유인 만큼 이를 추진할 재원을 고소득층에서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부유한 뉴욕 시민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고, 현재 7.25%인 법인세를 11.5%로 인상할 것”이라며, “이 두 가지를 합하면 약 90억달러(약 13조 원)를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뉴욕시장이라 해도 과세 제도 변경에는 뉴욕주 의회와 주지사의 승인이 필요해 현실적 장벽을 넘기 힘들거란 지적도 함께 나온다.
반면 맘다니가 현실과 타협해 트럼프 대통령과 유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거란 목소리도 높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맘다니 당선인 측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조율하기 위해 백악관 관리들과 잦은 접촉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시장은 우리와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뉴욕을 위해 모든 것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맘다니의 이같은 유연한 태도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뉴욕 ‘엑소더스(대탈출)’ 문제를 막을지도 관심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명 헤지펀드 퍼싱스퀘어를 이끄는 빌 크먼은 맘다니를 저지하기 위해 200만달러(약 29억 원)를 지출한 바 있다. 맘다니 당선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는 선거 결과 발표 후 축하 인사를 건네며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의 눈초리는 거세다. 퀀트 투자자 클리프 애드니스는 영화 ‘혹성탈출’ 중 자유의 여신상이 산산이 조각난 장면을 게시했다. 암호화폐 투자자 앤서니 폼플리아노는 “사회주의자가 세계 금융 수도의 시장으로 선출된 건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수혜자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부동산 중개인이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뉴욕의 부자들이 맘다니를 피해 플로리다로 이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뉴욕 고소득층은) 맘다니의 정책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안전한 플로리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포스트는 텍사스주가 뉴욕을 대체하는 새로운 금융허브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뉴욕의 법인세 인상과 치안 문제를 피해 기업들이 텍사스로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댈러스에 7만 8000㎡ 규모의 캠퍼스를 건설하고 5000명 이상 직원을 파견할 계획이다. JP모건체이스는 이미 3만 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댈러스는 금융 부문에서 38만 4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뉴욕에 이어 두 번째 금융 중심지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맘다니는 1991년 우간다에서 태어났으며 7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머니 미라 나이르는 인도 출신 영화감독으로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교수다. 맘다니는 뉴욕 맨해튼 사립학교와 브롱스 과학고를 거쳐 보든 칼리지를 졸업했다. 이후 201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2020년 뉴욕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홍장원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