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막을 올리며 취임 직후부터 각종 행정명령에 연이어 서명하고 있다. 빠른 정책 집행을 시사하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다시 고개를 든 관세 정책이다. 여러 국가 및 품목을 겨냥한 고율 관세 방침이 발표되거나 예고되는 상황에서, 세계 무역 질서는 또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관세 정책들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즉각 보복 관세로 맞서며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까지 꺼내드는 등 이전 ‘트럼프 1기’ 시절의 무역분쟁 양상을 재현하는 분위기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한발 물러서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최종 합의에 이르기 전까지 수면 아래에서 이해관계 충돌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로서는 교역 둔화, 글로벌 물가 상승, 공급망 재편이라는 삼중 부담이 닥칠 수 있어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지난 2018년 무역 전쟁 경험을 반추하면서도, 이번에는 당시와 다른 변수들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기 행정부 출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보편관세(universal tariff)’와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 도입이다. 보편관세는 특정 국가를 한정하지 않고, 일정 품목 혹은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관세를 매기는 방식을 의미한다. 세율을 정해두고 해당 상품이 어디에서 들어오건 똑같이 부과하기 때문에, 교역 둔화와 수입 물가 급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이에 반해 상호관세는 국가 간 관세 격차를 최대한 줄여 동등하게 부과하는 형태다. 상대국이 미국의 특정 산업에 매기는 높은 관세를 그대로 돌려주는 식이다. 일종의 ‘미러링(mirroring) 관세’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주류가 되느냐에 따라 시장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진다. 보편관세가 실제로 가시화되면, 소비재부터 산업재까지 대다수 품목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소지가 크다. 반면, 상호관세가 주요 기제로 작동한다면 ‘정밀 타격형’ 관세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져, 업종별·국가별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보수 성향 싱크탱크들은 상호관세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어느 정도 절충할 수 있다고 보지만, 동시에 관세 정책이 외교적 협상의 지렛대로 쓰이면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 상호 관세 언급은 보편관세 가능성을 떨어뜨릴 변수”라며 “보편관세는 우회 수출로 모색과 양자 회담을 통한 돌파구 성사 가능성을 낮춰 주식시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무역분쟁은 미국 경제와 세계 교역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2018년부터 본격화된 관세 전쟁은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농산물 등 광범위한 분야로 확산했다. 중국과의 극심한 갈등 국면에서 세계 증시는 변동성을 키웠고, 그나마 2020년 중후반 무역 합의 ‘1단계 협상’이 이뤄지면서 잠시 봉합됐을 뿐이다.
문제는 이번 트럼프 2기의 관세전쟁이 당시보다 더 강도 높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2018년) 미국의 기준금리는 점진적 인상 기조였다. 고물가 부담이 크지 않았기에, 관세로 인한 제품 가격 상승은 ‘성장률 둔화’ 형태로 주로 반영되었다. 현재(2025년)는 인플레이션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관세가 추가되면 ‘물가 자극 → 금리 인상 유지 → 경기 둔화’의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다.
중국의 대응 여력도 이전과 다르다. 중국은 팬데믹 동안 대미 수출 비중을 낮추고 희토류, 배터리 소재 등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는 등 ‘우회 전략’을 구축해왔다. 따라서 2018년에 비해 미국이 중국에 일방적으로 관세 압박을 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이는 “관세전쟁이 더 복잡해지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8년의 미·중 갈등은 중국 수출 전반에 충격을 준 반면, 이제는 중국이 내수 중심 성장 기조를 강화하고 있어 타격을 상쇄할 수 있는 수단이 늘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였던 2018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철강에는 25%, 알루미늄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한국은 미국과 협상을 통해 철강 관세 면제받았지만, 수출 물량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할당제를 도입해야 했다.
노 연구원은 “2018년의 사례를 보면, 관세 충격에서 상대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던 산업은 서비스업이었다”라며 “국내 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 및 미디어 콘텐츠 업종이 이에 해당한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서비스 수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해당 업종도 절대 저평가 상태를 지나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중심으로 차별화되는 과정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한, 정보기술 서비스,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SI), 보안 솔루션, 운송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여행, 금융 등의 업종이 무역 갈등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시장 최대 화두는 ‘인플레이션’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고율 관세를 단행하면, 수입 가격이 올라 미국 내 물가를 자극하는 동시에 해외 경제에도 연쇄 파동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보편관세가 현실화하면 그 충격이 전 세계로 퍼져, 원자재 및 중간재 가격 상승→최종 소비자 가격 상승→소비 위축의 경로가 강화될 수 있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연준(Fed)은 지난 1~2년간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긴 줄다리기를 벌여왔지만 관세 인상으로 물가가 다시 들썩이면, 금리 인하 전환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이는 결국 주가 할인율을 높여 주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안전자산(채권, 금 등)에 대한 선호를 촉진하는 변수로도 작동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무역 전쟁이 재점화되면, 교역량 감소와 공급망 재편은 불가피하다.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전자제품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수출경로 차단이 나타나거나 중간재 수급이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비용이 증가하고 매출이 줄어드는 이중고가 예상된다. 과거 2018~2019년에도 글로벌 교역 증가율은 급락세를 탔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서비스’ ‘첨단기술’ ‘비(非)관세 민감 산업’이 대표적인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18년 무역전쟁 당시를 복기해봐도, 제조업·중간재·소비재 위주의 관세 충격이 컸던 반면, 소프트웨어·IT 서비스, 미디어·오락, 의료, 일부 반도체 설계 분야는 비교적 완만한 타격에 그쳤기 때문이다.
IT 아웃소싱,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시스템 통합(SI), 게임·콘텐츠 등이 관세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노동길 연구원은 “국내 소프트웨어 및 미디어 콘텐츠 종목군을 주목할 만하다”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전쟁 주요 전장으로 한국을 택하지 않는다면 지난해 KOSPI 낙폭 만회를 시도할 수 있을 터”라고 분석했다.
첨단기술·AI 관련 업종은 미·중 양국이 기술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특허·R&D를 보유한 기업이 우위를 점하기 쉽다.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대체가 어려운 혁신 기술을 가진 회사는 세계 시장에서 수요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차, 배터리, 로보틱스 등도 미국 내에서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커 덜 타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관세 전쟁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시장 둘 다 양호한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은 감세,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 등 트럼프노믹스 기조가 2기에도 이어지며 경기 부양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크다.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압박은 분명하지만, 미국 기업들이 누리는 세제 혜택과 정부 프로젝트 수혜가 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팬데믹 이후 내수 진작책과 기술·소비 분야에 대한 육성 정책을 펴면서, 무역의존도가 점차 줄었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의도적으로 공급망 자립도를 끌어올린 만큼, 보복 조치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전반적인 경제가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미국의 관세 방침은 대부분 “무역수지 적자가 큰 국가를 우선 겨냥”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대미 무역흑자 상위국인 중국, 유럽연합(EU), 멕시코, 일본, 캐나다, 대만이 주요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커지고 있는 편이지만 이미 FTA가 체결되어 있고 한 차례 개정까지 거쳤다는 점에서 관세 직격탄을 피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멕시코·캐나다는 지리적으로 밀접하고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로 묶여 있기에 일정 정도 유예받는 분위기지만, 부분적 예외와 상호 관세 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은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품이 많으나, 미국과 달리 FTA가 본격 발효된 상태가 아니기에 관세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국가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태국, 인도, 말레이시아는 관세율이 높은 국가들로서, 교역량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도 표적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들도 안심할 순 없다. 특히 자동차, 철강 등은 여전히 대미 흑자 폭이 큰 분야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나 자동차 안전기준(NTB) 등을 걸고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관세가 보편적으로 부과되기보다는 개별 협상으로 조정될 것이기에, 한국은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미 FTA가 여전히 유효하며, 한국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체인에서 생산 거점을 다변화했다는 점에서 안심하고 있지만 자동차, 철강 등 섹터에서 통상 압박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충격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주식의 관세 이슈가 물가 부담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인프라 투자와 감세 정책, 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이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AI·클라우드·반도체 설계(팹리스)·전기차 등 첨단기술 업종을 비롯해 의료·헬스케어 섹터가 유망 분야로 꼽힌다.
국내 주식시장의 경우 관세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일부 IT·서비스 종목에는 매수세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증시가 저평가 구간에서 점진적으로 반등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관세가 물가를 자극할 경우, 정책금리가 예상보다 오래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채권시장에도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도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 장기금리는 하락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장기물과 단기물 금리가 엇갈리는 ‘수익률곡선’ 변동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4호 (2025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