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관세청이 2월 16일 발표한 ‘1월 수출입 운송비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유럽연합(EU)행 해상 수출 컨테이너의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당 운송비용이 전월에 비해 무려 72%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9년 이후 역대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유럽으로 보낼 때 운송비가 급증한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홍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 때문이다. 홍해는 세계 해상 무역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 항로이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최단 거리에 있는 해상길이다. 수에즈 운하로 곧장 이어진다. 그동안 평온했던 이 홍해가 국제사회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벌어지고 있는 중동전쟁 여파 때문이다.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하면서 해상 위기가 불거졌다. 후티 반군은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이스라엘 소유이거나 깃발을 달거나 이스라엘 항구로 향하는 선박만을 겨냥해 공격을 시작했지만, 사실상 무차별적으로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에 물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군 함대를 직접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조선, 화물선도 국적에 상관없이 공격하고 있다.
이에 이곳을 지나던 선박들은 안전을 위해 홍해를 통과해 수에즈 운하로 나아가지 않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우회로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거리가 늘어나니 당연히 운송비용이 치솟는 것이다. 물동량도 빠르게 줄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올 초부터 홍해를 지나는 물동량이 30% 줄었다.
이 홍해 위기가 국제 해상 안보와 관련해 간단치 않은 것은 쉽사리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하마스를 향한 공격이 국제사회의 중재에도 계속되고 있고, 이에 반발하는 후티 반군 및 반이스라엘 세력들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반격하면서 강대강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홍해를 위협하는 후티 반군의 활동은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다. 선박 공격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홍해 해저의 통신케이블을 파괴하겠다는 위협까지 하고 있다. 홍해 해저에는 16개의 주요 통신케이블이 묻혀 있는데,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17%를 담당하고 있다. 이 케이블이 끊어진다면 지구촌 통신 혼란은 불가피하다.
이에 미국은 영국 등 세계 주요국과 다국적군을 꾸려 예멘 내 반군 관련 군사시설을 타격하며 맞대응을 하고 있지만 상황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홍해 사태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고심하고는 있지만 사실 묘책은 딱히 없다. 지리상 거리의 문제여서 이를 대체할 신 노선을 단기간에 대체 발굴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 2위 해운업체 머스크의 찰스 반 데어 스테인 북미지역 사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안타깝지만 우리는 홍해에서 어떤 변화도 곧 일어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고객사에 어쩌면 3분기까지 홍해 문제가 지속될 수 있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머스크의 빈센트 클레스크 회장도 올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홍해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초래하는 공급망 혼란은 몇 달간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홍해 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또 있다. 미중이 벌이는 국제사회의 치열한 지정학적 파워게임도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중동과 최근 가까워진 중국을 향해 홍해 위기의 중재자 역할을 해 달라고 계속 주문하지만 중국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랜 우방인 미국과 불협화음을 내는 틈을 노려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월을 형성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적대적인 이란과도 관계가 두텁다. 지난해 3월 중국은 앙숙이던 두 국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이란을 통해 친이란세력인 후티 반군을 다독일 수도 있다. 글로벌 물류길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현 상황을 완화시킬 중재자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중국이지만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과의 친분을 국제사회에 공공연히 내보이곤 한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홍해 안정을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은 개입에 따른 위험보다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은 현 중동사태와 관련해 친팔레스타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홍해 상황은 가자지구 분쟁의 파급 효과”라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예멘에 대한 어떤 국가의 무력 사용도 승인한 적 없다. 예멘과 홍해 연안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 보전은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티 반군은 이 같은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며 미중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홍해를 지나는 중국 국적의 선박들에 대해서만은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한 바 있는데, 실제 행동으로 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선박은 최근 중국 해군의 호위하에 홍해를 무사히 통과했다.
지구촌 해상 안보에서 중동 다음으로 휘발성이 큰 곳이 바로 대만해협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은 계속 되고 있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 간의 군사적 긴장은 올 초 있었던 대만 총선에서 최고조를 달했다. 친미 후보와 친중 후보 간의 맞대결에서 친중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 중국은 경제적 당근을 제시하는 동시에 군사적 압박을 병행했다. 총선 결과 친미 후보인 라이칭더 민진당 부총통 후보가 당선되자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더 위협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만 주변 해역에 인민해방국 소속 군용기와 군함이 수시로 나타나고 있고, 대만해협을 사정권에 둔 해안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도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정찰 풍선으로 의심되는 물체도 50차례 넘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은 최근 대만해협 민간항로(M503)를 일방적으로 조정했다. M503 항로는 사실상 양안의 경계선인 대만해협 중간선에서 불과 7.8㎞ 떨어져 있는데, 이번 조정으로 대만 침공용 군용기 루트로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상태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1954년 12월 미국과 대만 간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선언된 비공식 경계선이다.
대만 정부는 “중국이 대만해협 상공을 지나는 민간항로를 일방적으로 조정해 안보위협을 불러왔다”고 경고했다. 대만은 항의 차원에서 3월부터 전면 재개하려고 했던 중국행 단체관광을 다시 막았다.
물론 중국이 전방위적으로 대만을 향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대만 침공이 임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국 실제 대만을 향해 군사를 움직인다면 미국의 즉각적 개입을 불러올 수밖에 없고, 내부적으로도 경제 상황 악화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쟁을 시작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때문에 대만을 향한 중국의 최근 군사적 행보는 오는 5월 들어서는 친미 성향의 라이칭더 정권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종의 ‘길들이기’용이라는 것이다.
실제 올 들어 중국 내에서도 대만 침공을 강행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구체적 침공 시점까지 거론됐지만, 올 1월 ‘무력 통일’을 언급하지 않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22년 7월 당 중앙 ‘통일전선공작회의’ 연설이 공개되면서 대만 무력 통일 움직임은 다소 잠잠해진 모양새다. 또 시진핑 주석은 연설에서 “홍콩·마카오·대만 및 해외에서 통일전선 활동의 역할을 발휘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중국이 당분간 대외 선전전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만과 미국의 밀월은 계속되고 있다. TSMC란 반도체 공급망에서 필수적인 기업을 매개로 더 가까워진 양국은 군사적 부분에서도 중국을 향해 보란 듯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부터 대만의 대중국 최전선인 진먼다오와 펑후섬에 미국 군사고문단이 주둔하는가 하면, 대만이 미국산 무기를 구입할 때 5년간 100억달러를 융자 형식으로 지원하는 국방수권법안을 미국은 지난해 통과시켰다.
대만해협과 연계될 수도 있는 남중국해는 중국의 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출발점이다. 남중국해를 지나가지 못한다면 해상 실크로드 건설 자체가 무산된다. 그래서 중국은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남중국해를 향해 야욕을 보이며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 영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주장하는 남중국해 영역을 통제하려 하지만,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남중국해 주변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에는 필리핀과 잦은 해상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내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카버러 암초 등에 필리핀 선박이 접근하면 항로 통제 및 퇴거 조치를 강행하는데, 올해만 벌써 세 차례나 충돌했다. 사실 중국의 이 같은 해상 행동은 막무가내식이다. 필리핀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국제상설재판소(PCA)에 소송을 제기했고, PCA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2016년 판결했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법상 판결을 무시하고, 남중국해 내에 있는 스카버러 암초를 포함해 스프래틀리 군도·파라셀 군도 등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 등 영유권 확보와 관련한 행보를 강행하고 있다.
군사력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는 이들 국가들은 미국과 협력해 대항하고 있다. 필리핀은 연초 중국과의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합동순찰에 나서며 항의성 항행을 했다.
표면적으로 남중국해 문제에 중립적인 미국이지만 남중국해서 중국과 주변국들의 충돌이 빚어질 때마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 원칙을 내세우며 중국을 압박한다. 정기적으로 미 군함을 남중국해 일대에 띄운다. 물론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6월에는 남중국해 상공서 미중의 군용기가 초근접 비행을 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했다.
현재 필리핀·베트남 등 남중국해 분쟁 당사자인 국가들은 중국에 비해 열세인 해군력을 보강하기 위해 첨단 무기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필리핀이 인도로부터 러시아와 합작으로 개발한 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 브라모스를 도입한 것이 일례다.
3대 원유 수송로에 해당하는 말라카해협은 전통적인 해상 요충지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해적이다. 이곳 해적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거의 소탕이 돼 한동안 해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해적들이 다시 활개를 치며 이곳을 오가는 선박들을 위협하고 있다. 말라카해협과 인접한 싱가포르해협도 해적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국제기구인 아시아해적퇴치협정(ReCAAP)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아시아 해역에서 발생한 선박에 대한 해적 및 무장강도 건수는 7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 증가했다. 특히 이 중 56건이 말라카해협과 싱가포르해협 일대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8건)에 비해 56%나 증가한 수치다. 말라카해협과 싱가포르해협 일대에서 해적 활동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들의 활동하기에 적합한 지형과 물살 때문이다. 해협이란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좁은 항로가 이어지는데, 오가는 선박이 많아 혼잡이 끊이지 않는다. 동시에 물살도 빠르다. 해적들이 빠르게 공격하고 숨기에 충분한 공간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사례가 없지만 우리 선박이 이들에 의해 납치된 경우도 있다. 최근 다시 급증하는 해적에 관련국들의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ReCAAP은 선박들에 진행 중이거나 정박 중이거나 항구와 정박지에 정박하는 동안 계속해서 경계 태세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가뭄’이란 의외의 복병에 최근 힘겨워하고 있다. 홍해·남중국해·대만해협 등의 상황이 글로벌 패권 다툼에 바탕을 둔 지정학적 갈등의 성격이 짙다면 파나마 운하는 자연 재해가 위기의 원인인 셈이다. 주로 미국발 해상 물류가 영향을 받는다.
파나마 운하청은 가뭄으로 운하의 수위가 낮아지자 통과 선박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루 38~40척 운하를 통과하던 배들이 현재는 24척 수준에 그치고 있다. 5월 우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상황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에즈 운하에 이어 파나마 운하까지 통행이 제한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희망봉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해운사들이 늘고 있고, 이에 따른 글로벌 물류 대란 위기도 쉽게 사그라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