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한 패션, 유통 기업들이 경기 불황을 이유로 미뤄둔 상장 계획을 재개하고 나섰다. 패션업계에선 “기업공개(IPO)를 통한 대규모 자금 유치로 세계 시장 진출 등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고 분석한다. 우선 뷰티 브랜드 ‘에이프릴스킨’,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널디’, 뷰티 솔루션 브랜드 ‘메디큐브’,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포멘트’, 건기식&헬스케어 브랜드 ‘글램디’, 즉석 포토부스 브랜드 ‘포토그레이 오리진’ 등 6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 절차에 돌입한 에이피알 측은 “이번 상장에서 37만9000주를 공모할 예정이며 희망 공모가는 14만7000~20만원”이라며 “공모 규모는 557억원에서 758억원 사이로 상장 후 시가총액은 1조1149억~1조5169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에이피알은 전통 있는 뷰티와 패션 산업권에서 뷰티 디바이스로 대표되는 일반 소비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혁신을 안겨주려 노력한 기업”이라며 “수요 예측과 일반 청약 등 남은 상장 절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 설립된 에이피알은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3718억원)과 영업이익(698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9%, 277.6%로 성장하며 2022년 4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매출액 1200억원, 영업이익 2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3분기 해외 누적 매출액도 138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효자는 2021년 론칭한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 지난해 11월 국내외 누적 판매 150만 대를 달성한 메디큐브는 올해 처음으로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4에 참가해 ‘부스터 프로’ ‘더마EMS’ ‘유쎄라딥샷’ 등의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에이피알 측은 “국가별로는 미국 외에도 캐나다, 멕시코, 인도, 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의 관계자들이 부스를 찾았다”며 “논의를 이어가던 태국과 카타르의 총판과 계약을 마무리하며 추가 해외 판로 개척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에이피알은 1월 22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을 통해 최종 공모가를 확정한 후 2월 1일부터 2일까지 일반 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2019년 이마트의 PB브랜드 노브랜드와 상표권 문제로 법정 송사를 진행했던 글로벌 의류 ODM(주문자개발생산) 업체 ‘노브랜드(Nobland)’도 최근 한국거래소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승인받았다. 상장예정 주식 수 831만2734주 중 184만 주를 공모할 계획이다. 1994년 김기홍 회장이 설립한 노브랜드는 원사와 원단을 가공, 생산한 제품을 ODM 방식으로 전량 수출하고 있다. 쉽게 말해 콘셉트 이미지 한 장으로 디자인과 소재는 물론 시장 조사, 색감, 원단 개발 등 모든 과정을 자체 진행해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 납품하는 것이다. ‘갭(GAP)’ ‘제이크루’ ‘망고’ ‘리바이스’ ‘바나나 리퍼블릭’ ‘DKNY’ ‘H&M’ ‘랙앤본’ ‘에일린 피셔’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유명 브랜드가 주 고객사. 최근엔 ‘MLB’와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까지 영역을 넓혔다. 미국 뉴욕에 디자인 센터를 두고 있는 노브랜드는 지속가능한 생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공장에 스마트팩토리 공정을 도입,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바이어에게 전달하고 있다. 노브랜드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5500억원. 영업이익은 470억원에 달한다. 2021년과 비교해 매출은 18%, 영업이익은 130% 성장한 역대급 실적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70% 늘어난 300억원에 육박했다.
그런가 하면 특수한 사안이 발생하며 거래소에 다시 이름을 올린 경우도 있다. 지난해 말 코웰패션과의 인적분할을 통해 새롭게 설립된 ‘폰드그룹’은 상장 규정에 따라 한국거래소 심사를 받은 뒤 올 2월 2일 코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될 예정이다. 폰드그룹은 언더웨어, 레포츠·패션의류, 패션잡화 등 패션 부문만 운영하고, 존속회사인 코웰패션에는 전자부품 사업(콘덴서, 저항기 제조 판매)과 운송 부문(로젠택배)만 남았다. 폰드그룹은 이번 인적분할을 계기로 패션전문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2002년 언더웨어 ‘엘레쎄(비케이패션코리아)’로 패션 시장에 발을 내디딘 폰드그룹은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승승장구하며 사업을 확장해왔다. 최근엔 스포츠캐주얼 브랜드 ‘FIFA1904’와 친환경 아웃도어 ‘BBC EARTH’를 선보이며 지난해 기준 각각 40개와 10개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했다. 지난해 3월엔 영국 캐주얼 브랜드 ‘슈퍼드라이’의 아시아·태평양 지적재산권(IP)을 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8월엔 미국 스포츠 브랜드 ‘스파이더’를 전개하는 브랜드유니버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운영자금 200억원을 지원했다. 슈퍼드라이는 올 7월경 국내와 해외에 동시 론칭할 예정이다. 영국 본사와 계약 당시 10년간 5억달러(약 6500억원) 규모의 OEM 제품 수출도 약속받았다. 최근엔 스위스 프리미엄 골프웨어 ‘헬베스코(HELVESKO)’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올가을 시즌부터 골프 의류와 가방, 잡화 등의 제품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밸롭’을 전개하는 지티에스글로벌도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아쿠아슈즈 등 신발로 이름을 알린 밸롭은 스포츠 의류로 영역을 확장해 지난해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온·오프라인 채널과 해외 사업 확장에 주력할 방침이다. 꽃 모양 로고로 유명한 ‘마르디 메크르디’를 전개하는 피스피스스튜디오도 지난해 5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한 후 3년 내 상장을 예고했다. 프랑스어로 화요일과 수요일을 의미하는 마르디 메크르디는 2018년 론칭한 디자이너 브랜드다. 감각적인 디자인이 입소문을 타며 론칭 초기부터 화제가 됐다. 이후 스포츠 라인인 ‘마르디 메크르디 악티프’, 키즈 라인인 ‘레쁘띠’, 핸드백 라인인 ‘르삭’을 차례로 론칭하며 종합 브랜드로 성장했다. 최근엔 반려동물을 위한 펫 컬렉션 ‘마르디 메크르디 쥬디’를 통해 IP 라이선싱 사업 모델도 구축했다.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사업본부를 신설한 피스피스스튜디오는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중국 내 주요 거점 도시와 도쿄, 마카오, 방콕에 마르디 메크르디 스토어를 개장할 예정이다. 크라우드펀딩 ‘와디즈’, 4050 패션 애플리케이션 ‘퀸잇’ 등 온라인 플랫폼도 상장과 관련한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와디즈는 이르면 2년 내 증시 입성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9월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와디즈는 11월부터 일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마쿠아케’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하며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이 예고되기도 했다. 현재 미래에셋증권, 신한투자증권 등과 함께 상장을 준비 중이다. 퀸잇을 운영하고 있는 라포랩스는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빠른 성장을 거듭해왔다. 2020년 9월에 론칭한 퀸잇은 시리즈B 투자 유치로 몸값 4000억원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180억원) 대비 2배 이상인 4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3월에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흑자전환하며 성장과 수익성을 모두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반면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증시 상장은 답보 상태다. 지난해 11월 한문일 무신사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2025년까지 IPO 계획이 없다”고 밝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 대표는 “IPO를 하는 이유는 자금을 조달하고 기존 주주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함인데, 이미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신사는 지난해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자산운용사 웰링턴매니지먼트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C를 유치하며 3조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증시 상장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투자 시장의 한파에 숨 고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몸값을 최대한 높인 후 상장 시기를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상장도 패션업계의 화두 중 하나. 지난 1월 4일에는 중국 안타그룹이 소유한 핀란드 회사 ‘아머스포츠’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 신청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 아머스포츠는 ‘살로몬’ ‘윌슨’ ‘아크테릭스’ ‘아토믹’ ‘피크퍼포먼스’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종합 스포츠웨어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1만800명 이상을 고용하며 핀란드 헬싱키, 독일 뮌헨, 폴란드 크라쿠프, 중국 상하이 등에 지사를 두고있다. 시장에선 아머스포츠의 기업가치가 최대 100억달러(약 13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아머스포츠 측은 “상장을 통해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 조달할 계획”이라며 “조달된 자금 전액을 미결제 주주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머스포츠의 2022년 말 기준 순부채 규모는 58억달러다.
2세대 패스트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온라인 패션 쇼핑몰 ‘쉬인(Shein)’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비중국 기업으로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의 주요 경제매체들은 “쉬인이 뉴욕증권거래소의 IPO를 위해 골드만삭스, JP 모건, 모건스탠리를 선임했고, 지난해 5월 기준 660억달러의 기업가치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