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24년 4분기 영업이익 6조5천억원을 기록하며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 성적표를 받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30% 넘게 늘었지만, 전 분기에 비해서는 약 30% 가까이 줄어들어 연속 두 분기 역성장이라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는 높아진 관심 속에서 출발했던 ‘인공지능(AI) 수혜주’라는 이미지와 달리, 구형 메모리 가격 하락과 전방 산업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수치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8일 공시를 통해 지난해 4분기 잠정 연결기준 매출이 75조원, 영업이익이 6조5천억원이라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65%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30.5% 오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러나 이는 직전 분기인 지난해 3분기와 견주면 매출은 5.18% 줄었고, 영업이익은 29.19%나 감소했다.
시장 전망치와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4분기 증권사 평균 전망치(7조7천96억원) 대비 15.7%나 적은 결과로, 이미 하향 조정된 기대치조차 충족하지 못했다.
연말을 앞두고 상당수 증권사는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의 기류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지난해 4분기 실적을 최대 10조원 수준까지 예상해왔다.
그러나 구형(DRR4 등) 메모리 가격의 급격한 하락세가 확인되자, 대다수가 전망치를 7조~8조원대로 급격히 낮췄음에도 실제 실적은 이를 밑돌았다.
이번 실적 부진의 배경에는 스마트폰·PC 등 전방 IT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식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의 핵심인 DRAM, 낸드플래시 등에서 고객사의 재고 조정이 계속되고,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진 가운데 가격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구형 메모리 부문의 의존도가 여전히 큰 삼성전자의 수익성에도 부정적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한편, 지난해부터 이어진 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HBM 양산 체계가 아직은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못해, 이에 따른 이익 기여도는 미미한 상황이다.
HBM이 DRAM 시장을 재편할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 만큼, 삼성전자는 향후 신공정 도입과 차세대 기술 확보를 통해 HBM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외에 시스템 반도체 분야(시스템LSI)와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 역시 부진했다. 반도체 경기 침체로 인한 가동률 하락, 그리고 일부 일회성 비용 발생 등이 겹치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관측이 증권가 전반에서 나왔다.
애초에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실적 반등을 꾀하기 위해서는 선단 공정 경쟁력 제고와 안정적인 수주가 필수적이지만, 전방 수요 둔화 시점에 이같은 이슈들이 겹치면서 단기간 내에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디스플레이 부문 역시 실적 둔화를 면치 못했다. 업계 추정으로 지난해 3분기 1조5천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렸던 디스플레이 사업은 4분기 1조원 안팎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마트폰 수요 부진, 스마트폰 제조사 간 경쟁 심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판가 압박이 심화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모바일 사업부(MX·네트워크사업부) 역시 통상적인 비수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이익이 크게 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적으로 4분기에는 연말 특수를 기대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예전보다 줄었고, 동시에 부품단가 하락이 반도체 실적 악화에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이번 실적으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에 이어 연속 두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3분기 영업이익(9조2천억원)에서 4분기 영업이익(6조5천억원)으로 약 30%에 가까운 감소 폭을 기록하면서, 반도체 업황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다만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보면, 매출은 300조800억원, 영업이익은 32조7천300억원을 기록해 사상 초유의 ‘연 매출 300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반도체 시장이 크게 얼어붙었던 2023년과 비교하면, 연간 매출이 16%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398% 늘어난 수치다.
이는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사업 등에서의 일정 수준 호조와, 1·2분기 때 AI 수요가 집중되면서 메모리 부문이 일시적으로나마 탄력을 받았던 영향이 더해진 결과다.
이제 시장의 눈은 2025년 이후 삼성전자가 어떻게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되찾느냐로 모이고 있다. 특히 구형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신제품 확장과, 2nm 등 차세대 파운드리 공정의 안정적인 고객 확보가 핵심 과제로 거론된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기존 DRAM보다 한층 고사양인 HBM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이 반도체 주도권을 움켜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TSMC 등 경쟁사가 이미 3nm, 2nm 공정에서 앞서 나가고 있고, 미국과 유럽 주요 기업들의 국가적 지원책도 이어지고 있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각국의 지원 흐름 속에서 전략적으로 투자 타이밍과 파운드리 생태계 확장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 시점부터는 삼성전자 DRAM 부문의 체질 개선(HBM 확대, DDR4 축소)과 파운드리 2nm 신규 고객 확보에 투자 포인트를 맞추고 비중을 늘려가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1cnm 공정 개발을 통해 HBM4 등 차세대 DRAM 기술 경쟁력을 마련하는 한편,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2nm 고객사를 유치해 중장기 성장에 대한 가시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최근 몇 분기 동안 가파르게 위축된 구형 메모리 의존도를 줄이고, 향후 반도체 시장에서 재도약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지금의 부진을 어떻게 빠르게 돌파하고, AI 중심의 미래 반도체 수요에 부합하는 포트폴리오로 체질을 바꿀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구형 제품에 머물러서는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이 겹치는 ‘이중고’를 지속해서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난 4분기 실적이 보여준 만큼, 고부가가치 제품과 한발 앞선 공정 기술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 전반이 반도체의 성능과 기술 진보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HBM 등 고사양 메모리 시장의 확장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삼성전자가 불확실성이 높은 글로벌 경기 속에서도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해나간다면, 이번 4분기 부진을 딛고 중장기적으로 긍정적 성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