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을 준비하던 안드로이드 사용자 A씨. 최근 스마트폰 검색엔진에서 제주도를 검색하고, 인스타그램을 열었더니 뉴스피드 사이에 제주 항공권 광고가 떠 적잖이 놀랐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앱 사용 데이터를 제3자인 광고 회사가 활용하면서 항공권 광고가 노출된 것. A씨는 덕분에 자신이 사용한 앱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를 받았지만, 한편으론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찜찜함이 들었다.
앞으로 A씨 사례와 같은 즉각적이고 노골적인 맞춤광고 노출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모바일에서 이용자 데이터가 제3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는 새 개인정보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정보 보호 주권 강화를 위해 안드로이드 앱 생태계에서 개인별 앱 사용 기록을 쇼핑·여행업체 등 제3자에게 건네지 않기로 한 것. 특히 코호트(인구세대) 기반의 타깃 광고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2월 구글은 전 세계 주요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새로운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를 안드로이드에 확대 도입한다고 밝혔다. 구글이 새롭게 도입할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는 이용자의 데이터(쿠키·광고 ID)를 제3자와 공유하는 것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해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맞춤형 광고를 웹(PC·인터넷)뿐 아니라 모바일(스마트폰·앱)에서도 점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의미다. 구글은 지난해 웹상에서 쿠키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추적 기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개인정보 강화 정책을 밝혔는데, 이를 안드로이드(앱)로 확장한다고 못 박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간 구글은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터넷·모바일 이용자의 검색 기록(신상정보는 없음)을 메타와 같은 세계적 디지털 광고 업체나 쇼핑몰 등 광고주에게 판매해왔다. 온라인 광고 업체들은 이 쿠키(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A씨에게 제주 항공권 광고를 띄우는 방식으로 개인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방식의 디지털 광고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사용자들로부터 사전에 충분한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비판이 고조됨에 따라 지난해 구글은 웹 브라우저인 크롬에서 제3자의 ‘쿠키’ 수집을 단계적으로 중단키로 결정했다.
쿠키란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자동으로 생성되는 파일을 말한다. 쿠키에는 개인의 검색 내역, 상품 구매 내역, 아이디와 비밀번호, 카드 정보 같은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글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개인정보 추적 방지 기능이 탑재된 브라우저를 내놨고 애플은 자사 웹 브라우저인 사파리에서 쿠키 수집을 차단했다.
▶구글·애플 광고 시장 장악력 더 커질 듯
맞춤형 광고로 막대한 매출을 올린 전 세계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은 연간 700조원에 달한다. 작년 iOS 앱 생태계에서 비슷하게 맞춤형 광고를 차단한 애플에 이어 구글까지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벗기 위해 맞춤형 광고 방식을 바꾸기로 하면서 맞춤형 광고로 매출을 올려온 전 세계 기업들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생활 침해 우려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광고 업체나 광고주는 ‘맞춤형 광고’의 판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판이다. 구글이 개인 데이터 확보 방식을 바꾸면 광고 타깃을 지금처럼 세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글의 신규 솔루션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광고주 교육 등 구글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 모바일 광고 시장에서 제3자가 개인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가 크게 위축되고, 구글·애플 등의 광고 시장 장악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iOS 14.5에서 새 개인정보 보호 기능인 ‘앱 추적 투명성(App Tracking Transparency·ATT)’을 도입했다.
당장 구글의 안드로이드 앱 생태계 정책 변경은 세계 광고 업계에 쓰나미급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에서 맞춤형 광고로 수익을 올려온 메타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메타는 이미 지난해 4월 애플이 사용기록의 공개 여부를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앱 추적 투명성(ATT)’ 정책을 내놓은 뒤 최근 주가가 크게 하락한 바 있다. 귀신 같은 개인 맞춤형 광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제3자 쿠키와 광고 ID를 쓰기 어려워진 만큼 메타의 디지털 광고 매출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애플의 업데이트 방안이 처음 공개된 이후 페이스북(메타)은 반대 의사를 극렬하게 표명하기도 했다.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이 디지털 광고 산업에 예상보다 더 큰 파장을 가져왔는데, 구글의 이번 조치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특히 광고 업계에서는 구글의 이번 조치가 되레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구글 의존도’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염려한다. 개인 맞춤형 광고 시장 생태계를 쥐락펴락하는 구글이 새 정책 변경을 통해 안드로이드 앱 생태계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키우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 규제당국 등은 구글의 정책 변경이 디지털 광고 시장에 갖는 파급력이 워낙 큰 만큼 최소 60일 전에 중요한 정책 변경을 고지할 것으로 요구한 바 있다.
세계 시장에서 안드로이드보다 앱 생태계 영향력이 크지 않은 애플의 경우 웹 광고(2020년 3월)와 앱 광고(2021년 4월) 모두 제3자의 사용자 데이터 추적을 사실상 막으면서 시장에 소폭 타격을 줬다.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책임지는 구글의 정책 변경은 파급 범위와 강도가 현저히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구글은 개발자 피드백을 수집해 연내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를 적용한 안드로이드 베타 버전을 공개할 계획이다. 웹에서 개인정보의 3자 유출을 막는 것이 2024년 도입으로 예고된 것에 반해 안드로이드 시행 시점은 기술 고도화 상황에 달려있다고 구글 측은 귀띔했다.
▶구글 “개인정보 보호 강화, 기업 수익과 상충되지 않아”
제시카 마틴 구글 APAC프라이버시 총괄은 매일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구글의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는 궁극적으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주는 것을 방지하는 게 목표”라며 “특히 비밀리에 진행되는 데이터 수집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업계가 숨죽이고 있는 ‘유예 기간’ 적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한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약 2년에 걸쳐서 광고 ID의 대안을 찾아내고 개발하기 위해 업계 이해당사자들과 협력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제시카 마틴 구글 아시아·태평양 개인정보보호 총괄은 이용자 정보와 활동을 추적하는 것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에서 이용자 정보를 추적·수집하는 데 쓰이는 식별자인 광고 ID를 개인정보 보호에 초점을 맞춘 새 식별자로 대체할 계획이다. 알파벳과 숫자로 구성된 식별자는 각각의 스마트폰에 고유하게 부여돼 있다. 이 코드는 이용자들이 앱을 둘러보며 검색하거나 살펴본 상품, 콘텐츠 등을 추적해 이용자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고 관심사와 필요 등을 파악해왔다. 이를 대체할 새 기술을 업계와 협력해 개발하겠다는 구글의 새로운 계획이다. 새롭게 적용될 프라이버시 샌드박스에는 쿠키나 광고 ID 대신 이용자의 관심사를 350개 토픽으로 분류해 3주간 보관하는 토픽 API 기술이 적용된다. 마틴 총괄은 “이 새 기술이 코호트(집단)가 아니라 이용자의 관심사를 주제별로 분류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에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는 연합학습(FLOC) 방식으로 고안됐다. 연합학습은 사용자 기기(PC·스마트폰) 내의 인공지능(AI)을 업그레이드하는 기술이다. 중앙서버에 데이터를 보내지 않고도 자가학습하면서 맞춤형 광고를 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광고 ID처럼 중앙서버로 다 모은 뒤에 제3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다만 FLOC는 코호트(특정 집단) 분류 방식을 거치기 때문에 집단화 과정서 특정 개인이 유추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가령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코호트를 분석하다보면 사람이 특정될 수 있다. 마틴 총괄은 “이번에 공개하는 새로운 기술(토픽 API)은 코호트가 아니라 이용자의 관심사를 주제별로 분류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에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올해 말까지 프라이버시 샌드박스의 안드로이드용 시험판을 공개할 예정이다. 충분한 시장 교감 없이 정책 변경과 이행을 감행한 애플(iOS)과 달리 구글이 업계와 협업하는 방향성 등을 제시하면서 글로벌 광고 시장에서는 안도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마틴 총괄은 디지털 맞춤형 광고 매출에 의존하는 메타 등 특정 기업 충격 가능성에 대해 “프라이버시 샌드박스가 발전해나가는 것은 하나의 긴 여정과 같아서 특정 기업 하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인정보 보호 강화는 이용자 생태계에서 원하는 것이며 반드시 해내야 할 이슈”라고 강조했다.
이용자 관심사 중심의 새 시스템 도입 시점에 대해 그는 “크롬과 웹 관련한 샌드박스는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개인정보 제공(제3자 쿠키)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며 “다만 안드로이드의 광고 ID와 관련해서는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최소 2년 유예기간 적용 방침) 이 밖에 보다 구체적인 타임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구글의 정책 변경이 디지털 광고 시장에 갖는 파급력이 워낙 큰 만큼 업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점진적인 변화를 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글 장악력만 커진다 우려도
빅테크의 개인정보 활용 문제는 규제당국 입장에서도 난제다. 개인정보 보호와 반독점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를 두고 구글의 장악력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영국 경쟁시장국은 “제3자 쿠키(웹 방문 기록) 제한은 구글의 데이터 우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글 고위 관계자가 “규제당국, 업계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협력해 대안을 찾겠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IT) 업계에서는 개인정보 문제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인터넷(웹2.0)에서 웹3.0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웹1.0이 단순히 보여주는 수단에 그쳤다면,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웹2.0은 세계를 연결하고 소셜미디어, 전자상거래 등 혁신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부작용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게 ‘데이터의 권력화’다.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 기록을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고 이들의 정보를 중앙화된 서버에 모았다.
빅테크가 데이터 통제권을 지니게 되면서 개인정보 침해, 시장 독점, 정보 손실 가능성 등 문제가 늘어나자 대안으로 ‘웹3.0’이 모색되고 있다. 웹3.0은 빅테크가 만들어놓은 플랫폼이 중앙 집권하는 현재의 웹2.0 시대에서 진화한 웹 생태계를 의미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플랫폼 등 소수가 데이터를 독점하는 형태가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데이터를 소유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