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차지 않아? 조금 천천히 갈까?”
“아니. 그냥 지금대로 가. 천천히 가도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잖아.”
보리암 입구 매표소 직원이 분명 15분이라 했는데….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지는 걸 보니 여기가 깔딱고개인 모양이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이는 두 딸을 바라보던 아빠, 엄마의 얼굴에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이 헐떡이는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괜찮아. 쉬었다 가도 돼.”
아빠의 바람에 첫째가 고개를 저었다.
“좀 있으면 해도 진다며, 앉으면 못 일어날 거 같아.”
툭툭 탁탁, 두 손을 꼭 잡은 자매의 발걸음에 아직은 힘이 있다는 듯 리듬이 얹힌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쪽은 엄마가, 또 다른 한쪽은 아빠가 자매의 남은 손을 꼬옥 잡고 이끌었다.
“저기 끝이 보이는 곳까지 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이미 다녀간 곳인 듯 엄마의 길 인도에 이번엔 막내가 가쁜 숨과 함께 한마디 내뱉었다.
“엄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거야? 아빠가 내려가면 올라가는 거랬잖아?”
“아니야. 내려가면 보리암이 나올 거야. 지금 가는 곳이 그곳이야.”
안도의 한숨도 잠시, 이번엔 내리막이 계단이다. 살짝 살얼음 낀 계단을 기어가듯 조심조심 살피다 첫째가 한마디한다.
“소원을 이루는 건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소원? 어떤 소원을 빌려고?”
아빠의 물음에 막내가 화답했다.
“난, 장원영(아이브 멤버)이 될 거야. 산타클로스한테도 말했어.”
동생을 바라보던 언니가 거들었다. “산타는… (엄마를 보더니) 나도 네 소원 같이 빌어줄게.”
아빠, 엄마보다 앞선 자매를 맞은 해수관음보살의 표정이 그윽했다.
금산 정상에 자리잡은 보리암은 기암괴석과 눈부신 남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찰이다. 삼국시대에 창건된 사찰 중 원효대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곳이 많은데, 보리암도 그중 하나다. 683년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親見)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 초당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했다고 한다. 보리암으로 개명한 건 1660년 조선 현종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감사의 뜻으로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錦山), 사찰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금산 보리암은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한국의 3대 관음성지(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로 꼽힌다. 무엇보다 금산의 풍경은 빼어나다.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사계절 내내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보는 남해안 한려수도는 눈이 시릴 만큼 넓고 깊다. 오죽 고왔으면 산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붙였을까. 금산 정상(해발 701m)을 중심으로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바로 금산바래길이다. 보리암 입구에서 보리암을 거쳐 쌍홍문, 금산산장(제석봉), 상사바위전망대, 단군성전, 금산 정상을 거쳐 다시 보리암 입구로 돌아 나오는 원점회귀코스인데, 빠른 걸음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길이다. 물론 길은 쉽지 않다. 산 정상 부근이라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져 평소 걷기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근육에 무리가 올 수 있다. 이럴 땐 보리암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발길을 돌리는 게 올바른 산책 요령이다.
보리암에서 멈추기 아쉽다면 요즘 SNS의 명소로 떠오른 금산산장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자. 해발 600여m에 자리한 이곳에선 해물파전(1만1000원), 메밀김치전병(1만원), 전주식비빔밥(5000원), 컵라면(4000원) 등을 맛볼 수 있다. “할머니~!”라 부르면 주인장 목소리가 들리는데, 주문한 후 산장 앞을 바라보면 한려수도가 코앞이다.
산장 아래 자리한 3개의 테이블이 이른바 오션뷰 포인트. 산장 운영시간이 오후 5시까지인데, 늦으면 문이 닫혀 헛걸음할 수도 있다. 겨울엔 그 무렵에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니 산을 내려가는 시간까지 염두에 둔다면 오후 4시 무렵엔 보리암에 올라야 한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