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Walking] 충남 예산 예당호 느린호수길 잠시 쉬어가도 좋은 느릿느릿 걷는 산책코스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10.13 16:27:27
수정 : 2022.10.13 16:27:44
“출렁다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이거 보러 여기까지 두 시간 반이나 걸려서 올 이유가 뭐냐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중년 부부가 주차장에서부터 티격태격한다. 아내의 푸념에 남편이 미안한지 나름의 변명을 내놨다.
“여기 산책길이 그렇게 좋대. 호수 끼고 걷는 산책길이 아주 잘 돼있다네.”
“파주에 있는 출렁다리도 호수 끼고 걷는 길이잖아. 집에서 한 시간도 안 걸리고. 걷는 건 좋은데 집에까지 돌아가는 데 또 얼마나 걸릴 거냐고. 당신은 떠나는 것만 좋아하지 돌아갈 걱정을 안 하더라.”
옳거니. 아내의 말마따나 지난해 기준 전국의 출렁다리는 총 208개나 된다. 어떤 곳은 고개 너머 또 하나가 있으니 숫자만 놓고 보면 전국 시군구에 하나씩 있는 셈이다. 꿀 먹은 벙어리가 돼 걸음을 옮기던 남편이 호숫가로 내려서며 입을 열었다.
“저기 봐봐. 파주 출렁다리도 좋긴 한데 여기 출렁다리엔 중앙에 전망대가 있다니까. 저기 저 주탑이 64m야. 다리 길이는 400m가 넘고. 저 위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거야.”
“높긴 높네. 공부 아주 열심히 하고 왔나봐.”
“그러어엄. 누굴 모시고 오는데, 이 정도 공부는 기본이지. 여기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중 한 곳이야. 이 출렁다리하고 연결된 산책로가 ‘느린호수길’인데 올여름에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 안심관광지’로 선정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한 번 와야지 했어.”
남편의 설명이 싫지 않은지 아내의 말끝이 살짝 휘어졌다.
“다음부턴 떠나기 전에 어디 간다고 설명부터 해주세요. 그래야 얼마나 갈지 알 거 아냐. 하늘이 높아졌네. 바람도 시원하고.”
어느새 올라간 남편의 어깨. 슬쩍 아내의 손을 잡고 이끄는 품이 이채롭다.
예당호 출렁다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무료로 운영 중인 출렁다리와 음악분수
어쩌면 앞서가는 남편이 내세운 이유 덕분(?)에 예당호 출렁다리 위에 섰다. 2019년 4월, 402m의 길이를 자랑하며 개통된 이 현수교는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였다. 지금이야 충남 논산에 있는 탑정호 출렁다리(길이 600m)에 타이틀을 내놨지만 전망대 풍경만큼은 여전히 모객의 일등공신이다. 한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바람이 강해 봄·가을에 찾는 이들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무료로 운영되는 주차장엔 평일인데도 서너 대의 관광버스가 객을 기다리고 섰다. 호수 앞 마트 사장님의 설명을 빌리자면 “출렁다리 한번 밟아보고 전망대에 올라 야호 한번 외친 다음 붕어찜이나 어죽 먹고 덕산온천에 몸 담그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신발을 고쳐 신으려고 마트 앞 의자에 앉았더니 예산 맛집 예찬이 이어졌다.
“예산엔 8미라고 여덟 가지 맛이 있는데, 예당호에서 잡은 붕어로 만든 붕어찜하고 민물어죽은 아까 말했고, 소고기도 유명해요. 소갈비지. 삽다리 곱창이랑 수덕사 산채정식도 빼놓을 수 없고, 광시시장이나 역전시장에 국밥이랑 잔치국수는 말해 뭐해. 그중에서 가장 맛있는 거? 배고프면 다 맛있지 뭐.”
마트 사장님 말처럼 전망대에 올라 야호 한번 외치려 했더니 슬쩍 오금이 저려온다. 가림막이 있다지만 투명한 유리로 막은 난간은 그냥 트인 것처럼 앞이 훤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엄지손가락 만한 이들이 다리 위에서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고소공포증엔 시선을 멀리 두는 게 낫다는 말이 떠올라 먼 산을 바라보니 물이 그득한 예당호의 끝이 가물가물했다. 둘레만 40㎞에 너비 2㎞, 길이가 8㎞나 되는 예당호는 예산군과 당진군에 걸친 홍문(鴻門) 평야의 관개 저수지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강태공들이 찾는 낚시일번지이기도 한데,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낚시좌대가 가을풍경과 썩 잘 어울렸다.
올 4월부터 가동한 음악분수도 예당호와 출렁다리의 명물이 됐다. 호수 위에 떠 있는 길이 96m, 폭 16m, 최대 분사 높이 110m에 이르는 부력식 분수가 LED 불빛과 어우러져 공연을 펼치는데,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물줄기가 크고 웅장하다. 이런 공연을 보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출렁다리는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엔 검사 등의 이유로 문을 닫는다. 음악분수는 10월부터 12월까지 주중 오후 2시, 5시, 7시 반, 8시 반에 주말과 공휴일엔 오후 2시, 5시, 6시 반, 7시 반, 8시 반에 진행된다. 모두 무료다.
예당호 생태공원.
▶호수 둘레길 산책, 마음도 차분해져
이곳까지 와서 출렁다리만 보고 가는 이들이 열이면 일곱이라는데, 그건 느린호수길을 제대로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예당호 수변공원에서 나무데크로 이어진 이 길은 출렁다리를 거쳐 대흥면의 예당호 중앙생태공원까지 7㎞나 되는 산책로다. 예당관광지 공연장과 충효정 아래로 굽이친 산책로는 예당휴게소를 거쳐 수변으로 연결된다. 나무데크가 평평하지 않지만 턱이나 계단이 없어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니기에도 수월하다. 그러니 그저 걷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두어 시간 혹은 걸음걸이에 따라 서너 시간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산책코스다.
걷다보면 굽이굽이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가을바람 타고 나는 왜가리까지 무엇 하나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10월부터는 예당호에 설치 중인 모노레일이 운행을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예당호의 사계절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데, 성인 8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6000원의 요금을 받고 운영할 계획이다.
10월 운행 예정인 모노레일.
예산 휴식여행
○봉수산자연휴양림
임존성 남쪽에 자리해 예당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연림과 인공림이 조화를 이루고 각종 야생조수가 서식하고 있다.
○봉수산수목원
봉수산과 예당호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자생수목, 약용수목, 야생화, 허브, 자연습지 등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예산황새공원
자연환경 훼손으로 절멸됐던 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의 성공적인 복원과 한반도 야생 복귀를 위해 2014년 국내 최초로 조성됐다.
○덕산온천
49℃ 이상의 천연 중탄산나트륨 온천수로 근육통,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좋다.
○덕산세계인형박물관
인형 2500여 점을 전시하고 5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층마다 테마를 달리해 다채롭게 구성된 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