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시장에 레트로(복고)는 여전히 강세다. 각 브랜드마다 헤리티지(전통)를 살린 모델을 내놓는다. 이젠 레트로 모델이 없는 브랜드를 찾기 힘들 정도다. 덕분에 모터사이클 시장에 이야기가 넘쳐난다.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델의 복귀, 혹은 새로운 재해석이니까. 출력, 즉 숫자로 승부하는 무대에 다른 가치를 되새겼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시했다.
이제 레트로 모터사이클은 이벤트 모델이 아니다. 중요한 라인업으로 자리 잡았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은 오래된 라이더에겐 과거 향수를 자극한다. 어릴 때의 기억을 소환해 현재의 설렘을 이끈다. 더불어 전 분야에 고루 퍼진 레트로 무드에 익숙해진 새로운 라이더도 끌어들인다. 역사 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 확장된 것이다. 명확한 건 하나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이 시장 분위기를 쇄신했다.
그 시작이 언제였을까. 누구도 정확한 발화점을 짚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모터사이클 문화가 풍성한 유럽과 미국에서 오래된 모터사이클을 복원해 타는 경우는 늘 있었다. 그들의 고집이 확장됐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기폭제 역할을 한 모델이 있다. ‘트라이엄프 본네빌’이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의 선구자랄까.
트라이엄프 본네빌은 1959년 탄생했다. ‘트라이엄프’가 미국 소금사막 본네빌에서 최고 속도를 기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다. 모터사이클 타는 사람 중에 소금사막 본네빌은 몰라도 트라이엄프 본네빌을 아는 사람은 많다. 본네빌은 1980년대까지 개선, 발전하며 시대를 관통했다. 트라이엄프의 대표 모델로서 모터사이클 역사의 한 챕터로 남았다.
보통 이렇게 단종된 모델은 박물관에 전시된다. 하지만 트라이엄프는 2000년에 본네빌을 부활시켰다. 일본 모터사이클의 공세에 허리까지 휜 유럽 모터사이클 회사의 승부수였다. 트라이엄프는 다른 무엇보다 헤리티지에 집중해 본네빌을 박물관에서 끌어냈다. 결과는 2019년 현재에 이른다. 트라이엄프는 ‘모던 클래식’이라는 본네빌의 파생 라인업까지 만들었다. 다른 브랜드들도 하나둘 레트로 모터사이클을 발표했다. 앞서 말했듯 레트로 모터사이클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본네빌이 모두 이뤄낸 건 아니다. 여러 브랜드가 각자 전략을 선보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본네빌이 큰 몫을 했다는 건 부인하기 힘들다.
현재 본네빌 시리즈는 2016년에 나왔다. 그동안 이모저모 변했다. 엔진 냉각방식이 공랭에서 수랭으로, 연료 분사 방식이 카브레이터 방식에서 인젝션으로 바뀌어 다양한 환경 규제에 대응한다. 편의장치도 놓치지 않았다. 레트로라고 해서 안전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ABS부터 트랙션 컨트롤까지 주행에 꼭 필요한 안전장치를 탑재했다. 이런 변화가 트라이엄프가 제창한 ‘모던 클래식’을 설명한다. 부활한 본네빌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달린다.
그럼에도 고수하는 건 1959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외관이다. 현재의 본네빌이 덩치가 조금 커지고 엔진 쪽이 더 꽉 찼다. 더 옹골찬 느낌을 줄 뿐 기본 형태는 거의 흡사하다. 이 지점이 본네빌의 가치를 높인다. 성능으로 승부하는 모터사이클은 몇 마력 높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지고, 레트로 모터사이클은 얼마나 옛 형태를 고수하느냐에 따라 매력이 달라진다. 본네빌은 요즘 기술력을 담았지만 여전히 공랭 엔진 모터사이클처럼 보인다. 일부러 냉각핀을 절삭하고, 인젝션을 카브레이터 커버에 담은 까닭이다. 아는 사람만 노력을 알아준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아봐준다. 그 노력에 가슴이 떨릴 사람들이니까.
‘본네빌 T100’은 본네빌 라인업 중 기본 모델이다. 물론 모던 클래식 라이업 엔트리로 ‘스트리트 트윈’이 있긴 하다. 청바지처럼 편하게 타는 레트로 모터사이클이다. 본네빌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본네빌 이름이 들어간 모델 중에선 T100이 기본이다. 기본이면서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배기량 900cc는 과거 본네빌은 물론, 밀레니엄을 맞아 부활한 본네빌보다 크다. ‘본네빌 T120’이 있긴 하다. 1200cc로 오버리터급 배기량을 자랑한다. 둘의 차이는 배기량과 몇몇 외장 부품 외엔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T100과 T120은 배기량으로 선택지를 나눴을 뿐이다.
본네빌 T100을 시승하기 전 바라봤다. 일단 타고 느끼고 싶은 모터사이클이 있는가 하면, 타기 전에 음미하고 싶은 모터사이클이 있다. 본네빌 T100은 후자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의 특징이기도 하다. 각 부분이 감상할 여지가 다분하다. 물론 모든 모터사이클이 기계적 조형미를 뽐낸다. 그럼에도 레트로 모터사이클의 조형미는 특별하다. 단출하게 모터사이클의 원형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동그란 헤드램프가, 갈비뼈처럼 드러난 냉각핀이, 차체에 얹힌 각종 부품이, 그 부품을 이루는 쇠의 질감이 모두 감상할 요소가 된다. 본네빌 T100은 그 지점을 명확히 인식한다. 단지 형태를 복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각 부분의 질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냉각핀의 절삭면이라든가, 카브레이터 형태 커버의 질감이라든가, 반짝거리는 양각 로고라든가. 꼼꼼하게 바라볼수록 각기 다르게 연마하고 질감을 표현한 솜씨에 흐뭇해진다. 앉았을 때 가장 시선이 자주 닿는 계기반 테두리 절삭면을 보면 금속 공예품처럼 느껴진다. 면면이 보고 만지고 싶어진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은 응당 그래야 한다. 트라이엄프는 그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시동을 켜기 전까지 의심했다. 외관은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명백히 현대적으로 빚은 엔진이 얼마나 옛 감성을 자극할지는 의문이었다. 공랭과 수랭의 차이는 분명 다르니까. 의심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본네빌 T100이 몸을 떨며 심장을 깨웠다. 두두둥, 하며 제법 두툼한 고동감이 느껴졌다. 명확하게 엉덩이를 때리진 않았다. 그 수준까지 바라는 건 물리의 법칙을 넘어선 영역이다. 분명 수랭 엔진의 부드러운 엔진 질감을 유지하면서 엉덩이를 기분 좋게 두들겼다. 감각의 빈 영역은 피슈터 머플러에서 연주하는 배기음이 채웠다. 1960년대가 엉덩이 아래로 펼쳐졌다고 하면 당연히 과장이다. 그럼에도 2019년 모델이 보여주는 레트로 질감으로선 절충 영역에 들어간다. 그만큼 2019년에 걸맞은 여러 가지 조건을 맞췄으니까.
시트고는 790㎜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은 툭, 편안하게 앉을 높이다. 본네빌은 더 많은 사람에게 모터사이클을 전하는 임무를 받고 1959년에 태어났다. 여전히 그 임무는 유효하다. 편하게 양발을 딛고 핸들바를 잡은 딱 그 모습. 앉아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뿌듯해하는 그 자세. 60년이 지났지만 그 느낌은 변함없다.
스로틀을 감으면 부드럽다. 수랭이기에 엔진 회전 질감도, 전자식 스로틀이기에 스로틀 감각도 요즘 모터사이클 감각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저속에선 둥둥거리는 고동감을 연출한다. 기어를 재빨리 올려 엔진 회전 수 적게 쓰면서 달리면 레트로 모터사이클의 운치가 배어나온다. 툭툭거리는 질감은 엉덩이를 간질이고, 둥둥거리는 배기음은 그 질감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빨리 달리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는 영역. 본네빌 T100은 주행에서도 레트로 모터사이클 영역을 잘 보존했다. 기술로 편의성을 높이면서 감성도 살렸다. 둘을 잘 섞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본네빌 T100은 그 배율을 탁월하게 맞췄다. 덕분에 본네빌 T100은 품이 넓다. 더 많은 사람을 본네빌 T100 앞에 불러 모은다. 레트로 모터사이클에 관심은 있지만 불편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모터사이클에 관심은 있지만 너무 본격적인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본네빌 T100은 그들까지 품는다. 기술과 감성, 상징성까지 두루 겸비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