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지구는 점점 따스해져 가고, 인간이 느끼는 온도를 높이기 위한 문명은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정말 추워서 생명이 위협받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전쟁이나 금융 위기에 비하면 이제 난방이라는 이슈는 상대적으로 심각하진 않다.
날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패션 비즈니스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변화는 남성을 위한 코트나 장갑, 여성을 위한 모피 제품들의 수량 축소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겨울용 외투의 본질이 보온에 그친다면 굳이 테일러링의 전통을 기초로 한 코트를 입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특히 코트는 의상 전체를 마무리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남성 룩의 전체적인 인상에서 최종적인 아이템이라고 봐야 한다. 외출을 앞둔 여성들에게 핸드백의 역할 같은 것이랄까. 그러니 아주 추운 겨울 날, 혼자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혹은 회사 로비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동안 머무를 때 멋진 외투 하나가 그 사람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편하고 쉬운 옷을 놔두고 남자가 슈트를 입는 건 그 안에 담긴 고귀한 정신을 수용하는 마음인 것처럼, 두꺼운 플란넬(Flannel·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얇은 모직물) 슈트나 캐시미어 재킷만으로 이겨내기 힘든 겨울바람 앞엔 클래식 코트가 필요하다. 남자의 클래식이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미덕으로부터 출발한 사회적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우터(Outer)란 일단 입고 있는 의상 전체를 덮어버리기 때문에 겨울이라면 외투의 선택 그 자체가 착용자의 안목을 드러내는 어떤 상징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소재나 가격표, 트렌드와 브랜드를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 몸에 잘 맞는, 그러면서도 복식 전체를 편안하게 정리해주는 자신만의 코트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클래식 코트라면 그것을 걸치는 순간, 마치 디켄터에서 오래도록 인내한 부르고뉴 와인처럼 우아한 남성의 일부로 스며들어야 한다. 그런 코트라면 겉으로 보이지 않는 코트 안의 정교한 풍경까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코트, 결국은 클래식 스타일
체스터필드 코트(Chesterfield Coat·폭이 좁은 남성용 코트)처럼 아주 고상해 보이는 오버코트는 19세기 프록코트(Frock Coat·주머니 없는 베스트)에서 유래된 것이다.
캐주얼한 오버코트와 레인코트는 어깨 장식, 벨트, 끝이 뾰족한 옷깃, 더블 브레스티드(Double-Breasted) 같은 세심하고도 예민한 장식들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장식들은 군인용 코트에서 유래되었음을 알리는 선명한 흔적이다. 또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오버코트의 길이는 무릎부터 바지 끝부분에 이르는 등 그야말로 다양해졌고, 실루엣 또한 몸에 딱 맞는 것부터 담요나 텐트처럼 몸을 풍성하게 덮는 스타일까지 다양해졌다. 하지만 슈트 깃을 방불케 하는 옷깃, 싱글 또는 더블 브레스티드, 그리고 싱글 벤트(Vent·코트나 재킷의 엉덩이 부분을 튼 것)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러 스타일이 혼합된 코트도 많이 나왔지만 클래식 스타일에 가까운 코트가 역시 오래가는 것이다. 옷차림이란 여러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숙성되지만, 결국은 늘 손이 가는 베이직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MAESTRO
기본에 충실한 다양한 코트
강조했듯 코트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복식의 완성이어야 한다. 방한의 목적 또한 추위에 못 이겨 타인을 불안케 하는 불상사를 막으려는 배려에서 출발한다면 우리의 옷차림은 사실 얼마나 명예로운 것인가.
이제 남자가 클래식 코트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명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논리적 여정 같다. 슈트의 기본이 차콜 그레이 스리버튼이고, 블레이저(Blazer·슈트 상의)는 네이비 더블 브레스티드가 첫걸음이라면 코트는 네이비, 그레이 혹은 브라운의 체스터필드가 필두에 서 있다. 윈저공 이전에 발군의 패션 감각을 가졌던 영국 체스터필드 백작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 코트는 무릎 정도의 길이에 조금 넓은 라펠을 가졌으며, 전통적으로 슈트와 같은 계열인 네이비, 그레이, 브라운 컬러를 입는다.
특별히 일반 코트와 다른 점은 코트 깃에 블랙이나 브라운 벨벳 장식이 있다는 점이었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디테일은 아니므로 생략이 가능하다.
영국 어느 브랜드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트렌치코트는 처음엔 전쟁터에서 방수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레인코트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영화 <카사블랑카>가 트렌치코트를 입는 현대적 방식을 설파한 이후로는 아예 일반 코트의 대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형사 콜롬보가 즐겨 입었던 밸머칸(Balmacaan) 코트는 둥근 어깨의 래글런 스타일이 특징이며, 단추가 보이지 않는 플라이 프런트(Fly Front)에 네이비 혹은 아이보리 컬러로 제작된다. 그 밖에 군복의 기운이 강하게 스며든 브리티시 웜 코트, 아이비리그에서 선호되어 온 폴로 코트, 말뚝처럼 생긴 토글 단추를 단 더플 코트(Duffle Coat·후드가 달린 짧은 싱글 코트) 등이 더 있지만, 어떤 코트를 입더라도 너무 펑퍼짐하게 몸을 둘러싸지 않도록 해 신체의 비율이 왜곡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최근 시대를 앞서가는 밀라노나 서울의 신사들은 길이가 무릎 직전까지 충분히 길지만 포멀한 코트가 아닌 롱재킷을 코트 대용으로 입기도 한다. 이미 네이비 싱글 코트니 차콜그레이 더블 코트를 옷장에 가진 사람이라면 적극 권하고 싶은 새로운 옵션이다.
몸에 꼭 맞는 오버코트 고르기
오버코트의 사이즈는 신체와 의상을 감싸고 보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지, 지나치게 크거나 너무 딱 맞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슈트를 입은 그 위에 입을 것인지, 아니면 길이가 긴 재킷처럼 터틀넥 니트나 카디건 정도에 가볍게 걸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전자라면 코트가 상반신에 잘 맞는지 알기 위해 슈트 상의나 스포츠코트, 스웨터를 입은 다음 걸쳐보아야 한다. 특별히 뒷부분의 천이 불룩하게 울거나 너풀거리지 않는지도 살펴야 한다. 후자라면 도톰한 소재로 만든 트위드 재킷의 느낌으로 품을 설정해 둔다.
어느 경우에서든 입었을 때 어깨뼈 부근과 둔부, 가슴 부위의 옷이 당기는지를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오버코트를 입었을 때 먼저 눈에 띄는 부위는 얼굴과 가까운 가슴과 칼라(Collar·슈트 상의나 셔츠의 옷깃)이므로 우선 가슴과 칼라가 자신의 얼굴과 비율이 맞는지도 확인한다. 코트 칼라는 재킷의 칼라처럼 목 주위에 편안하게 눕혀지면서 셔츠 칼라를 충분히 덮을 만큼 높은 것으로 고른다.
오버코트는 마네킹처럼 입고 서 있는 느낌보다는 가볍게 걸어보면서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코트에는 더블 벤트를 쓰지 않고 오직 싱글 벤트만 적용하는데, 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벤트가 높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몸을 보호하지 못할 만큼 한없이 높아서도 안 된다. 또한 오버코트의 소매는 재킷과 셔츠 소매를 덮을 수 있을 만큼 긴 정도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코트 소매는 슈트나 재킷의 상의 소매보다 1~2cm 더 긴 편이다. 코트 소매가 짧으면 셔츠의 소매단이 드러나고, 지나치게 길면 손을 덮어 거지 왕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코트의 적당한 길이도 신장에 따라 달라지므로, 무릎 바로 위 정도를 고를지 무릎 아래에서부터 종아리 중간 정도까지를 선택할지 신체를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신장이 좀 더 커 보이고 싶은 분이라면 코트 자락을 무릎 위에 두어서 하반신이 길어 보이도록 비율을 만든다. 코드가 커 보이고, 길이가 너무 길면 옷에 파묻히게 된다.
캐시미어 코트를 살 수만 있다면 기능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먼저 봄부터 겨울까지 입을 수 있는, 안감에 지퍼나 단추가 달린 레인코트는 분명 필요하다. 꼭 비가 오지 않아도 입을 수 있는 레인코트는 사실 추운 날씨에도, 반대로 따뜻한 날씨에도 입을 수 있다. 네이비 슈트 차림이든 블랙 니트 차림이든 레인코트 안의 옷차림을 미리 정해두면 되기 때문이다. 모직이나 캐시미어 혼방, 낙타털로 만들어진 짧은 길이의 코트는 주말용으로도 적합하고 정장 위에도 걸칠 수 있다. 무릎길이의 모직 코트는 정장 위에 걸치는데, 주말에 골프를 치러 나갈 땐 스포츠웨어와도 밸런스가 좋다. 많은 코트들 가운데 활용도가 높은 베이직 코트는 울 혹은 캐시미어 소재의 싱글 브레스티드 오버코트인데, 이 스타일은 (슈트 위는 기본이고) 마치 스포츠코트처럼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고, 파티에 가는 날엔 턱시도 위에 입어도 된다. 전통적으로 낙타털로 만든 브라운 색상이 일반적이었지만 코트를 새로 마련한다면 네이비 색상이 가장 유용할 것이다.
네이비를 이미 갖고 있다면 블랙이나 회색 코트가 차선이고, 글렌체크 무늬도 좋은 선택이겠다. 블랙은 엄숙한 장례식이나 이브닝 파티용에도 어울리는 포멀 코트가 된다.
특히 캐시미어 코트는 워낙 비싸지만 일단 마련하기만 한다면 두고두고 입을 수 있다. 캐시미어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캐시미어와 울이 섞인 가볍고 부드러운 코트를 장만하면 된다. 단 코트 길이는 적어도 무릎까지 오면 좋겠다.
남훈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제일모직 ‘란스미어’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현재 패션전략컨설팅회사 ‘더 알란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종로 GS타워몰에 액세서리 편집숍 ‘알란스(ALAN’S)’를 운영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