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둔화가 이어지면서 패션 트렌드의 세계적 중심인 유럽 패션 시장에도 의구심이 많이 일었다. 과연 유럽이, 특히 파리가 글로벌 패션 트렌드의 리더 역할을 계속할 것인가.
지난 2월 중순 파리에선 두 건의 중요한 전시회가 열렸다. 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세계 디자이너나 원단업체가 관심을 쏟는 ‘Premiere Vision’이 열렸고 17일부터 20일까지는 봄가을 두 차례 개최되는 세계 직물 트레이드 쇼 ‘Texworld’가 열렸다. ‘Premiere Vision’은 뉴욕이나 상하이 상파울로에서도 열리나 올해도 파리의 위상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그만큼 많은 전문가들이 찾았다. 2월 25일부터는 3월 5일까지 열리는 파리 패션 위크의 열기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6000만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성공을 찾아 이곳에 온다. 지금 유럽만이 아니라 미국 역시 완전한 활황은 아니다. 이 때문에 패션 리더들은 어떻게 해야 소비자의 관심을 살 수 있을지 더 노심초사한다. 차별성 있으면서 동시에 대중성까지 표현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향미 한세실업 R&D 본부장(상무)은 “유럽의 패션 트렌드는 아직도 패션 리더로서 많은 이노베이션을 제공하고 있다”며 “수많은 명품 브랜드와 디자인이 많은 사랑과 동경을 받고 있다. 미국시장에 비해 다양한, 그리고 좀 더 트렌디한 디자인이 전 세계의 대중적 유행으로 자리 잡기 전에 먼저 유럽시장에 선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또 “많은 디자이너와 원단업체 등이 Premiere Vision이나 Texworld 등 원단 전시회에 참석해 앞서가는 트렌드를 읽고 유럽 각 나라에 선보인 차별화된 디자인 트렌드를 참고하려고 한다. 매 시즌 유럽마켓이 세계 각 나라에서 온 디자이너들로 붐비는 이유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트렌드 집합장 유럽
유럽 패션 트렌드의 특징은 미국이나 아시아에 비해 다양한 소재와 새로운 시도의 디자인을 먼저 선보이며 동시에 각 나라별로 특색이 있다는 점. 이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스토어에 좀 더 빠르게 선보임으로써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유럽 대표 브랜드이자 세계적인 SPA로 성공한 ZARA나 H&M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 패션은 매우 빠르게 전환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환이 빠르다는 것은 남과는 다른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을 소비자에게 부각시켰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소량 다품종의 패션 스타일 오더를 늘려가는 게 요즘 의류업계 성공전략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Forever 21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유럽 패션을 관찰하면서 주시할 점은 유럽시장에 먼저 등장했을 때는 파격적이기도 한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이 몇 시즌 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대중적 유행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유행전파 속도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글로벌 불경기 속에서도 여전히 세계 패션을 리드하는 유럽은 올해 어떤 내용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까.
볼륨감과 글로시함 살린 원단
우선 레이디스 원단의 트렌드는 크게 볼륨감을 살린 ‘3D 텍스처’를 비롯해 반짝일 정도로 윤이 나는 글로시 서페이스, 이중 직조나 접합처리를 통해 표면과 안이 다르게 한 ‘더블 페이스’, 여성스러운 장식이나 레이스를 표현한 ‘오픈 웍스’ 등으로 요약된다.
3D 텍스처의 경우 양면조직으로 솟아 오른 볼륨감과 입체감을 더하는 블리스터 자가드나 퀼트로도 업데이트가 되었다. 다양한 변형 조직을 사용한 3D 텍스처나 팝콘사나 부클사를 사용하여 독특한 입체감을 부여한 원단도 있었다.
글로시 서페이스 부류로는 호일 프린트나 친츠(평직 면포에 작은 무늬를 화려하게 나염해 커튼 등으로 많이 쓰임) 가공을 해 다양한 소재에 글로시하고 반짝이는 효과를 낸 원단도 다수 나왔다. PU(폴리우레탄)코팅을 해 포장지 같은 색상과 광택을 반영한 메탈릭 패브릭도 등장했다.
더블페이스 직물 중엔 이중직조와 접합처리를 통해 이면과 표면이 다른 더블 니트 자가드 같은 리버서블 아이템과 두 가지 원단을 접착해 다소 딱딱한 느낌의 아우터로 주로 사용하는 양면 소재도 보였다. 오픈 웍스 소재 중엔 여성스러운 모티브가 가미된 섬세한 레이스와 다양한 모티브로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여성스러운 레이스와 메쉬류 원단도 볼 수 있었다.
멘스 원단은 더블 레이어링이나 텍스처드 니트, 데님 룩, 합성피혁이나 스웨디드 피혁 등이 주조를 이뤘다. 더블 레이어링은 표면과 이면에 다른 조직이나 패턴을 적용해 앞뒤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새로운 원단. 또 얇지만 누비 기법으로 부피감과 포근한 터치감을 준 소재도 등장했다.
텍스처드 니트류에선 슬럽 효과를 이용해 원단 표면의 텍스처와 조직감을 강조한 저지 원단이나 테리 원단, 스웨터처럼 두툼한 조직의 컷앤소 니트, 저지나 2가지 이상의 컬러 방적사(얀)를 혼방해 복합적인 컬러감과 텍스처를 살린 원단도 다수 나왔다.
데님 룩 소재로는 데님 컬러의 방적사를 사용해 데님 원단을 흉내 낸 소재나 니트 조직의 데님 룩 원단으로 신축성을 높여 착용감이 좋게 한 원단, 데님이나 데님룩 원단을 사용한 옷을 가먼트워싱해 빈티지한 느낌을 부여하기도 했다.
합성피혁이나 스웨디드 피혁류 원단으로는 원단에 코팅을 하거나 본딩 기법을 통해 가죽 같은 효과를 부여하고 실제 가죽보다 신축성을 높여 착용감을 높였으며 강한 기모 가공 등으로 감촉을 살린 원단도 다수 나왔다.
넝마 & 밀리터리 룩
유럽 멘즈 스타일 트렌드는 넝마주이 같은 패션의 그런지 룩, 프린팅한 티셔츠, 컬러 블록 등이 대세였다. 상의는 90년대 풍의 그런지 룩으로 빈티지 느낌이고 워싱된 효과를 낸 제품이나 로우 에찌 등의 디테일을 살린 게 유행할 전망이다.
티셔츠는 다양한 모티브의 프린트 티나 기하학적 무늬와 플라워 패턴, 컨버세이셔널 프린트 등이 유행할 전망이다. 경제 상황과 관련해 컬러 블록의 강세도 예상되는데 절개 라인을 조금 더 과감하게 파고, 원단을 믹스해 다양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도 강조되고 있다.
하의는 젊은 스타일의 배기팬츠나 스윗팬츠, 전투복 유형의 카모플라주 등의 유행이 예상된다. 주요 패션업체들은 탱크 탑이나 카고 팬츠, 셔츠, 재킷 등 다양한 아이템에 카모플라주 프린트를 제시했다.
멘즈 아우터로는 카모 재킷이나 데님 재킷, 프린티드 재킷 등의 유행이 예상된다. 이미 H&M이나 ZARA, 노드스트롬의 TOPMAN 등이 카모 재킷이나 데님 재킷을 준비하고 있다. 기하학적 무늬의 재킷이나 어두운 계통의 꽃무늬를 수놓은 재킷 등도 바람을 탈 것으로 보인다.
레이디스 패션의 상의 스타일 키워드는 모던 어반과 페플럼(블라우스·재킷 등의 허리 아랫부분에 부착된 짧은 스커트)이다.
모던 어반 기조의 디자인들은 오랜 불경기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베이직 라인과 뉴트럴 패턴으로 모던한 미학을 연출한 트루 블랙이나 옵티컬 화이트를 제시하고 있다. 페플럼 기조에선 다양한 소재나 패턴 트림을 통해 슬림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여유 있는 느낌까지 주는 페플럼 디자인을 내고 있다.
하의 스타일의 키워드도 경기변화를 반영한 듯 서클 스커트와 스트라이프 인 버텀, 슬림 조거다. 서클 스커트는 아래로 갈수록 폭이 넓어져 한 바퀴 돌면 원을 만들 정도로 여유가 있으면서 약간의 노출을 곁들여 살짝 관능미를 뽐내는 스커트. 이미 오래 전부터 유행의 바람을 타고 있는데 보다 화사해진 게 특징이다.
스트라이프는 클래식에서 캐주얼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빠질 수 없는 트렌드인데 팬츠나 스커트 모두 유행할 전망이다. 위는 넉넉하지만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슬림한 실루엣으로 업데이트된 스포티룩의 니트 팬츠 역시 긴 유행을 타고 있다.
레이디스 드레스도 보다 밝은 색조를 띨 전망. 키워드는 모던 어반 룩과 핏&플레어,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다. ZARA나 톱숍 등은 모두 깔끔한 라인과 뉴트럴 패턴을 매칭해 모던한 느낌을 주는 드레스를 준비해고 있다. 트루 블랙이나 옵티컬 화이트는 필수 아이템이다.
슬림한 체형을 돋보이게 하는 절제된 핏&플레어 룩의 스커트나 드레스도 계속 이어지는 아이템이다. 발랄함을 강조해 고전적 느낌 속에 약간의 섹시함마저 느끼게 한다.
역시 슬림한 체형을 강조하면서 젊은 느낌을 주는 스트라이프 패턴은 니트나 우븐 드레스 전체에 다양하게 반영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