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국내 자동차 시장은 ‘내수 시장 규모와 국산차 판매량은 줄고 수입차 판매량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2021년 자동차산업 수정 전망 및 시사점’을 살펴보면 올 내수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3.5% 감소한 184만 대,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보다 4.4% 증가한 366만 대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내수 시장 판매량 중 수입차는 전년 대비 9.1% 증가한 33만 대, 국산차는 전년 대비 5.8% 감소한 151만 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만기 KAMA 회장은 “국내 자동차산업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반도체 수급 불안 등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가고 있다”며 “정부도 국산차와 수입차 간 개별소비세 부과 시점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매매업 진입과 관련해 수입차와의 역차별을 개선하는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수입차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우디 그랜드스피어 콘셉트
사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이러한 움직임은 올 상반기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국내 시장에 등록된 신차(국산+수입)는 총 92만4493대.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2.6% 줄었다. 국산차는 총 76만3972대가 새롭게 등록되며 전년 동기 대비 6.4% 감소했다. 반면 수입차는 16만521대가 등록되며 전년 동기 대비 20.5% 성장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데믹 상황에 지난해 동기 대비 역기저 효과도 있지만 비대면과 차박 등 새로운 트렌드가 차량 구매 패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수입차 브랜드 딜러는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대신 수입차를 구매하는, 이른바 보복소비가 수입차 상승세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맞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며 “국산차의 성능과 품질이 높아지며 덩달아 가격도 상승해 소비자의 수입차 구매 심리를 부추긴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자동차 시장을 관통한 트렌드는 무엇일까. ‘전기차’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세 가지 시선을 분석했다. 현재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전기차는 친환경차 분야에서 따로 분리해 짚어봤다.
Check Ⅰ
첫 1만 대 클럽 탄생, 전기차 인기 UP
올 상반기 국내 시장에 판매된 차량의 연료별 비율은 휘발유 차량이 49.8%, 경유 26.2%, 하이브리드 12.3%, LPG 6.0%, 전기 4.3%, 기타연료가 1.4%를 차지했다.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에 비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미미한 수준.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3만9302대가 판매된 전기차는 전년 동기(2만2080대) 대비 78%나 상승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1년 8월 자동차산업 월간 동향(잠정)’을 살펴보면 국산 전기차는 8월 한 달간 국내에서 8396대나 판매되며 역대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자동차 내수·수출 판매물량의 4대 중 1대는 친환경차로 집계됐다. 자연스럽게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모델별로 살펴보면 현대차그룹의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적용된 ‘아이오닉5’의 인기가 도드라졌다. 공식 출시된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집계된 누적 판매량은 1만2484대. 전기차로는 처음으로 1만 대 클럽의 주인공이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이오닉5에 적용된 혁신적인 신기술들이 고객의 요구와 기대감에 부응하며 판매 호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에 출시된 기아의 ‘EV6’도 사전 예약 첫날에만 2만 대를 넘기며 순수 전기차에 대한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기아 신형 스포티지
수입 전기차 중에는 포르쉐의 고성능 모델 ‘타이칸’의 선전이 도드라진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판매량이 1033대로 집계됐다. 타이칸은 전기차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 럭셔리카로 가격이 1억4560만~2억3360만원에 이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 전기차도 높은 성능과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벤츠, 아우디, BMW 등 독일 프리미엄 3사도 이미 전기차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2030년까지 신차 기준 탄소배출량을 2021년(95g/㎞) 대비 65% 감축하고 2035년부터 제로화하겠다는 EU의 자동차 배출규제 강화도 이러한 방향 전환의 이유 중 하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도 EU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2030년 유럽의 전기차 비중을 70% 이상으로, 2033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계획을 발표했다. 르노도 2030년 90%의 전기차 판매 비중을 계획하고 있다. 포드는 2030년까지 전 차종을 전기차화할 계획이다. 스텔란티스도 2030년 유럽 전기차 판매 비중을 70%로 제시했다.
국내 시장을 노린 새로운 전기차의 연내 출시도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우선 메르세데스-벤츠가 럭셔리 대형 전기 세단 ‘더 뉴 EQS’를 출시하며 전기차 라인업을 강화한다. EQS는 벤츠가 자체 개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모델이다. 107.8㎾h의 배터리가 탑재돼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최장 770㎞에 달한다. BMW는 플래그십 순수 전기차 ‘iX’를 올해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iX에는 최신 5세대 e드라이브 기술이 적용돼 500마력 이상의 최고출력과 600㎞ 이상의 주행거리를 제공한다. 제네시스가 선보인 ‘G80’ 전동화 모델도 인기몰이 중이다. 1억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지난 7월 출시 3주 만에 2000대 이상 계약됐다. 제네시스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적용된 첫 전기차 ‘GV60’의 출시도 앞두고 있다. 최근 한국 법인 설립을 마친 스웨덴의 신생 전기차 제조사 ‘폴스타’는 올 연말 브랜드 출범과 함께 ‘폴스타2’를 출시할 예정이다.
포르쉐 2022년형 타이칸
Check Ⅱ
친환경 하이브리드, ‘내연기관+전기차’의 장점만
전기차의 인기몰이는 하이브리드와 수소 등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매년 시장 규모와 판매량의 가파른 상승곡선이 이어지며 완성차 업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산 완성차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차량은 내연기관차에 비해 연비가 높고 전기차에 비해 충전 부담이 없어 매년 판매량이 높아지고 있다”며 “전기차로 갈아타기 전 최선의 선택이란 소비자 인식도 인기 상승의 한 요인”이라고 전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 1~8월 국내 시장에 판매된 친환경차는 총 21만9624대로 전년 동기 대비 72.6%나 껑충 뛰었다. 이 중 하이브리드 차량이 14만1413대를 기록하며 지난해 동기 대비 58.6%나 증가했다. 업계에선 “충전 부담이 없는 내연기관의 장점과 연비가 뛰어난 전기차의 장점을 한데 묶어 현재로선 가장 앞선 효율성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하이브리드 차량 구매자에게 개별소비세 최대 100만원(교육세·부가가치세 포함 시 최대 143만원), 취득세 40만원 등 총 183만원 상당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개소세 면제 적용 기한을 내년까지 연장하기로 한 점도 인기 상승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 하반기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하이브리드 대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현대차는 올해 ‘투싼 하이브리드’와 ‘싼타페 하이브리드’를 선보였다. 제네시스는 출시를 앞둔 ‘G90’ 풀체인지 라인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할 예정이다. 기아차도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를 출시하며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 중에는 스텔란티스가 오프로더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지프 랭글러’에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PHEV) ‘지프 랭글러 4xe’를 출시했다. 삼성SDI의 360V 리튬 이온 배터리가 장착돼 완충 시 순수 전기 주행으로만 최대 32㎞, 총 630㎞(주유+배터리 완충 시)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세단 ‘ES 300h’ 부분변경 모델도 눈에 띈다. 2012년 국내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수입차 하이브리드 부문 베스트셀링카에 선정된 렉서스 대표 전동화 모델이다. 이번 부분변경 모델에 적용된 스트롱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대용량 배터리와 2개의 모터가 적용돼 저속에선 모터만으로 주행할 수 있고, 주행과 동시에 충전도 가능하다.
현대차그룹 무인 운송 시스템 콘셉트 모빌리티 ‘트레일러 드론’
현대차그룹, 2040년 수소에너지 대중화 원년 선언
그런가하면 수소차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자동차 시장의 화두 중 하나다.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앞선 수소차 제조사로 손꼽히는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7일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 글로벌 온라인 행사를 열고 수소사업의 비전과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연료전지 및 수소 모빌리티 실체를 공개하며 오는 2040년을 수소에너지 대중화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기조 발표에 나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꿈꾸는 미래 수소사회 비전은 수소에너지를 ‘누구나, 모든 것에, 어디에나’ 쓰도록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런 수소사회를 2040년까지 달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수소사회 실현을 앞당길 수 있도록 앞으로 내놓을 모든 상용 신모델은 수소전기차 또는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28년까지 모든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적용하겠다”며 “이를 위해 가격과 부피는 낮추고 내구성과 출력을 크게 올린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하이드로젠 웨이브 발표행사에는 미래 장거리 물류를 위한 현대차그룹 무인 운송 시스템 콘셉트 모빌리티 ‘트레일러 드론’이 처음 공개됐다. 1회 충전으로 1000㎞ 이상 주행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인 트레일러 드론은 수소연료전지와 완전자율주행기술이 적용된 2대의 ‘이보기(e-Bogie)’ 위에 트레일러가 결합된 신개념 운동 모빌리티다. 보기(Bogie)는 열차 하단의 바퀴가 달린 차대를 의미한다. 정의선 회장은 “수소연료전지를 자동차 이외의 모빌리티 및 에너지 솔루션 분야에도 적용하는 등 미래 비즈니스 영역을 지속해서 확장하겠다”며 “트램, 기차, 선박,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다양한 이동수단뿐 아니라 주택, 빌딩, 공장, 발전소 등 일상과 산업 전반에 연료전지를 적용해 전 세계적인 수소사회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Check Ⅲ
여전히 의문인 자율주행, 그러나…
지난 8월 26일 일본 도쿄의 패럴림픽 선수촌에서 운행 중이던 토요타의 자동운전버스가 일본 선수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이틀 뒤에는 미국의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테슬라의 ‘모델3’가 인근에 정차 중이던 경찰차와 승용차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당시 운전자는 오토파일럿 기능을 켠 상태였다. 중국에서도 운전보조기능인 ‘NOP(Navigate on Pilot)’를 작동 중이던 전기차 브랜드 니오의 차량이 화물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율주행 관련 사고가 잇따르자 자율주행차의 상용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선 최근 사고를 낸 차량은 완전자율주행차량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테슬라나 토요타의 사고 차량에 자율주행 레벨2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공학회(SAE) 기준 자율주행 레벨은 0~5로 구분된다. 레벨2까지는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레벨3은 운전자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레벨4부터 차량이 스스로 위험 상황에 대처한다. 현재 운전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오토 파일럿이나 크루즈 컨트롤은 자율주행 레벨2 수준이다.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의 ‘자율주행 차량의 국내외 개발 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 자율주행 차량은 2040년 약 3300만 대를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이 예상된다. 자율주행에 대한 완성차와 IT 업계의 관심이 여전한 이유다. 하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며 완성차업체는 완전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을 늦추고 있다. GM은 로보택시 상용화 시점을 2018년에서 2025년으로 미뤘다. 구글의 자율주행관련 계열사 웨이모는 2020년에 도입하겠다던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만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는 2019년 미국 모빌리티 전문기업 앱티브와 함께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5 기반의 로보택시를 차량 공유업체인 리프트에 공급해 2023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가 개발 중인 로보택시는 레벨4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혼다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레벨3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된 승용차 ‘레전드’를 출시했다. 레전드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시속 50㎞ 이하의 정체 구간에서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보거나 내비게이션을 조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 로보택시
포드는 최근 대형유통업체 월마트, 인공지능 AI 회사 아르고와 손잡고 자율주행 배송 실험에 나섰다. 월마트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텍사스주 오스틴, 워싱턴DC 등 3개 도시에서 이러한 자율주행차 배송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아르고의 AI 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한 포드의 이스케이프 하이브리드 차량이 투입되며 3개 도시 중 서비스가 가능한 특정 지역의 월마트 고객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자율주행차를 이용해 다음날까지 주문한 물품을 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월마트는 지난 2018년부터 포드와 합작으로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배송 서비스를 추진해왔다.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은 차량이 스스로 위험 상황과 주행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AI)이다. AI와 ‘라이다(LiDAR·빛으로 주변 물체와 거리를 감지하는 장치)’ 센서의 고도화가 자율주행차의 성능을 좌우한다. 자율주행차의 기술이 발전하며 자동차의 눈 역할을 하는 라이다도 주목받고 있다. 라이다는 레이더(Radar)에 빛(Light)을 더한 합성어다. 레이더가 전파를 쏴서 되돌아오는 속도를 통해 사물을 감지하는 반면, 라이다는 전파 대신 빛을 쏘기 때문에 레이더가 못 보는 사각지대까지 파악할 수 있다. 레이더는 파장이 수㎝로 커서 파악하지 못하는 물건이 있을 수 있지만, 라이다는 파장이 나노미터(㎚·10억 분의 1m) 수준으로 짧아 사물을 더 정교하게 인식한다. 현재 차량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에는 레이더와 카메라가 주로 장착돼 있지만 앞으로는 라이다를 통해 차량 주변 인식 제어 기술을 확보하려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자율주행 단계가 고도화될수록 레이더나 카메라보다 라이다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최근 사내 라이다 전문 개발 스타트업인 ‘오토엘’을 독립시켰다. 오토엘은 성능과 크기,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자율주행용 고해상도 라이다 센서를 개발 중이다. 볼보는 미래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내년부터 생산될 ‘XC90’ 전기차에 라이다 센서를 표준사양으로 탑재한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GM과 포드, 토요타 역시 자율주행과 전동화 차량 개발에 집중하며 라이다 도입과 자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