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이 출범했다. 작년 2월 정권이 출범한 후 1년 4개월이 지나서다.
청와대 비서실은 절반 이상이 바뀌었고, 내각도 7명이나 새로 교체됐다. 새 진용을 보면 최경환 경제부총리, 조윤선 정무수석, 안종범 경제수석 등 무게감 있는 측근들이 좌우에 포진해 일체감을 주긴 한다. 월드컵이 한창이니 축구팀에 비유하자면, 여기저기서 선수를 스카우트해 용병으로 꾸렸던 1기 내각에 비해 2기 내각은 예전부터 한솥밥 먹던 선수들을 불러들여 다시 뭉친 ‘끈끈한’ 느낌이 든다. 일단 적어도 색깔은 분명하고 안정감을 주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런데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떠오르는 말이 있다.
‘든사람은 몰라도 난사람은 안다’는 우리 속담이다.
‘나간 자리’에서 가장 공백이 커 보이는 곳은 역시 청와대쪽이다. ‘대통령의 입’,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빈 자리는 커 보인다.
평일휴일 낮밤 가리지 않고 朴과 소통한 유일한 참모
청와대 내부에선 ‘왕(王) 수석’으로 불렸던 이 전 수석의 빈자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 나온다. 단순히 홍보수석 업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수석은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청와대 홍보수석은 물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과 정무적인 조언자, 심지어는 외부 민심(民心)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일까지 도맡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대화 중 대통령에게 ‘그런데요 대통령님’하며 말머리를 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사였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이 수석과 박 대통령의 대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홍보수석 시절 브리핑 도중 벨소리가 울리면 갑자기 전화기를 들고 춘추관(기자동) 밖으로 뛰어나가 승용차에 올라타 문을 쾅 닫아버리곤 했다. 브리핑을 듣던 기자들은 ‘대통령에게서 또 전화가 왔구먼’하고 알아차리곤 했다. 식사 중에도 마찬가지다. 한창 대화 도중 익숙한 그 벨소리가 울리면 두 손으로 전화기를 감싸고 ‘잠깐만요’ 한마디를 남긴 후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깥으로 뛰어나가기도 했다.
이 수석과 같은 교회를 다니는 한 지인의 전언.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수석은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데 대통령 전화가 올까봐 매번 맨 뒷자리 문 앞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교인들 사이에선 ‘매일 구석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니 사람 참 겸손하다’는 오해(?)도 나왔다. 그러던 중 하루는 헌금위원을 맡아서 어쩔 수 없이 목사님이 설교하는 맞은편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수석은 결국 전화를 받아 모기 목소리로 ‘예배 중입니다’고 하고 끊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대통령이 “예배시간인지 몰랐다. 앞으로 그 시간엔 전화하지 않겠다”고 미안해했다는 일화가 있다. 정리하자면 한마디로 평일과 휴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는 보기 드문 참모였다.
靑 갈등조정까지 맡아 ‘빈자리’ 걱정하는 소리 벌써 나와
다른 수석비서관이 전한 얘기. “박 대통령은 참모진에게 주로 전화로 지시하는데 아무래도 전화다 보니 용건만 얘기하고 끊는 게 대부분이다. 전화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이것저것 얘기하긴 힘들다. 단지 이정현 전 수석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전화를 받으니 가끔씩은 ‘그런데요 대통령님 요건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하고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 그게 바로 대통령과의 거리 아니겠느냐.”
이는 1기 청와대 참모진의 절반 이상이 관료 출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속을 터놓고 정무적인 결정에 대해 논의할 만한 사람이 김기춘 실장이나 이 전 수석 외엔 없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대통령은 이만큼 가깝고 믿었던 이 수석이 떠난 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결국 조윤선 정무수석 등 측근 정치인들에게서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조윤선 수석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집중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전 수석은 당 수석부대변인, 공보특보, 공보단장, 대통령당선인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홍보수석까지 10년간 밑바닥부터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데 비해 조 신임 수석은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젊은 정치인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진과의 소통방식은 좋든 나쁘든 이전과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내부에서 ‘빈자리’를 걱정하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복잡한 권력관계로 이뤄진 청와대 내부의 속성상 항상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수석이 박 대통령과의 메신저 역할을 전담하면서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도 상당부분 수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실장이 알기 힘든 수석들이나 비서관들 사이의 갈등도 이 수석은 웬만큼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