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입니다.”
올봄 ‘스위스바젤시계보석박람회’에서 만난 파트릭 P. 호프만 율리스 나르덴 CEO는 한국시장의 중요성을 진중하게 설명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시장의 성장곡선이 꺾이지 않는 곳”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9월 홍콩에서 열린 시계박람회 ‘워치앤원더스’에 참가한 각 브랜드 임원들도 아시아, 특히 중국시장이 타깃인 ‘차이나 마케팅’을 언급하며 한국시장을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자사 브랜드의 한국 내 판매율 상승이 꾸준하다는 방증이다. 국내 수입시계시장은 약 1조7000억원대로 추산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길고 긴 경기침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난히 빠른 속도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주요 시계 그룹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분위기가 좀 더 확연하다. 브레게, 블랑팡, 글라슈테 오리지날, 오메가 등 14개 브랜드를 유통하는 스와치그룹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2722억2121만원(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으로 전년 대비 26% 성장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7%, 51% 늘어 347억원과 260억원으로 집계됐다. 스와치그룹과 함께 글로벌 시계산업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리치몬트코리아(2012년 4월 1일~2013년 3월 31일·바쉐론 콘스탄틴, 로저드뷔, 예거르쿨트르, 피아제, 파네라이 등 명품 브랜드 보유)는 지난해 4139억502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23.2%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34.8% 늘어 207억8547만원. 당기순이익은 16.5% 늘어 143억2543만원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롤렉스는 어떨까.
국내 유통사인 한국로렉스의 지난해 매출은 859억4874만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이처럼 수입명품시계의 선전은 여타 명품브랜드의 실적과는 상반된 결과다.(표 참조) 한 수입업체 임원은 “예전엔 40~50대가 주 고객층이었지만 지금은 30대 초반까지 고객의 연령층이 낮아졌다”며 “개성을 표현하는 이들의 관심과 지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재테크나 증여수단으로 구입하는 젊은 부유층도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30~40대 남성이 주 고객
실제로 세계 4대 브랜드로 꼽히는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브레게 등의 시계는 모델과 한정생산 등 제작방식에 따라 구매 후 가치가 유지되거나 껑충 오르기도 한다.
한국 시장에서 롤렉스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환금성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본점의 시계 매장에 근무하는 한 매니저는 “최근 3500만원대 시계를 문의한 30대 전문직 고객은 첫아이의 돌 선물로 간직하고 싶다고 백케이스에 인그레이빙(Engraving·각인) 서비스를 묻고 돌아갔다”며 “백화점 VVIP 고객 중 서비스 전담 직원인 PSR(Professional Service Representative)을 통해 문의하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백화점의 VVIP는 연간 3000만원 이상을 쇼핑하는 매출 상위 1%의 고객이다. 연간 2만여 개의 시계만을 생산하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관계자는 “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접 매장을 찾는 30대 VVIP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전체적으로 엔트리 급의 가격대도 높아져 우리 브랜드 중 1500만원대 제품의 판매량이 늘었다”고 전했다.
시장의 성장곡선이 가파르고 VIP고객이 직접 발품을 팔아 방문하니 백화점의 명품 시계 브랜드 유치 경쟁도 후끈 달아올랐다. 우선 23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은 2층 전체를 명품시계 특화층으로 구성했다.
지난해에만 바쉐론 콘스탄틴, 브레게, 블랑팡, IWC 등이 부티크를 새로 냈다. 최근엔 추신수 시계로 유명세를 탄 로저드뷔 부티크가 새롭게 입점했다. 이곳 시계상품군의 지난해 매출은 매장당 월평균 3억5000만원이나 됐다. 전년 동기 대비 25% 성장한 수치다.
7월 중순 이후 오픈 예정인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월드타워점(지하 1층~지상 6층)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명품시계·주얼리 매장(지상 2층)이 조성된다. 스와치그룹과 리치몬트그룹 등 명품브랜드들의 매장 인테리어가 한창이라는 후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초 부산 센텀시티점에 해리윈스턴, 위블로, 제니스 매장을 새롭게 오픈했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무역센터점 해외패션관을 리뉴얼하면서 명품시계군의 영업면적을 기존 264㎡에서 891㎡로 늘렸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서울 압구정동 명품관(동관) 지하 1층의 ‘하이주얼리&워치’존에 바쉐론 콘스탄틴 매장을 유치했다. 백화점 업계에선 최초로 파텍필립, 브레게, 오데마피게 등 세계 4대 명품 시계 브랜드를 한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관광객도 매출 상승에 한몫
수입시계 브랜드의 매출 성장에는 중국 관광객의 쇼핑도 한몫 단단히 했다. 일례로 지난 4월 말 중국 노동절 연휴(4월 30일∼5월 4일) 동안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증가로 국내 백화점 매출이 2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신세계 백화점의 중국인 매출 동향을 보면 지난해보다 128.2% 증가했다. 주얼리·시계 분야 매출은 303.6%나 상승했다. 롯데백화점은 전년 대비 123.1%나 늘었다.
명품 시계브랜드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을 위한 마케팅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게 사실”이라며 “시계의 경우 고가제품에 대한 종류와 안전성, 세금 환급 등을 고려해 일부러 한국을 찾는 고객도 있다. 이들은 매장에 들러 쇼핑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모델명을 말하고 제품을 확인한 후 현금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