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 경기 성남분당경찰서는 경기도 성남과 하남 등 수도권 일대 7곳에서 불법 인터넷 경마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운영실장 김 모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사설 경마사이트로 판매한 마권 규모는 288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일반주택으로 위장한 곳에서 컴퓨터 8대를 설치해 사설 경마장을 운영했고 인터넷 사이트 광고를 통해 가맹점과 손님을 끌어모아 단속을 피했다.
지난해 말에는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비디오카메라와 노트북을 이용해 경마 중계 실황을 인터넷사이트로 송출하던 일당이 한국마사회 단속반과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은 남녀 3명이 한 조가 되어 대담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서울경마공원 관람대 입구에 노트북에 연결된 비디오카메라로 실시간으로 경마 중계 실황을 녹화해 불법인터넷사이트에 송출했다. 송출된 실황 자료는 불법적인 사설경마 행위에 이용됐다. 불법 사설경마가 기승을 부리면서 합법적인 사행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4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2차 불법 도박 실태조사 용역결과에 따르면, 국내 불법도박 시장규모는 최대 95조6000억원에 달한다. 2008년 발표 수치(53조7000억원)보다 78%가량 늘어난 규모다. 불법 인터넷 도박이 26조7000억원(28%)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 하우스 도박(23조2000억원·24%), 불법 사행성 게임(20조2000억원·21%), 사설 경마·경륜·경정(11조원·12%) 등이 뒤를 이었다.
세금없고 무제한 베팅 불법 사설 경마
마사회 관계자는 “제3국에 서버를 둔 불법 사이트가 대다수로 대포통장으로 돈이 오가거나 오피스텔 같은 데서 불법으로 게임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며 “최근에는 노트북을 이용한 실시간 영상 송출과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한 사설경마가 급증해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수법도 날로 은밀해지고 있다. 검증된 지인들만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보안을 유지하고 차명계좌와 해외 운영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에 추적도 쉽지 않다. 한 운영자가 10개가 넘는 다량의 사이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불법 사설경마가 활개를 치면서 막대한 공익 기금과 세금이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7조8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마사회가 납부한 세금만 1조5000억원. 매출이 마사회의 25배를 웃도는 삼성전자의 법인세 규모의 4분의 3쯤 된다.
하지만 불법 사설경마가 범람하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불법 사설경마의 규모를 10조원으로 추산하면 불법 경마로 인해 탈루되는 금액이 연간 1조6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금탈루 연간 1조6000억원 달해
불법 사설경마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이른바 ‘한탕’이 가능한 불법 사설경마의 구조 때문이다. 마사회가 경주당 최대 베팅금액을 10만원으로 규제하는 반면, 불법 경마에는 베팅금액에 제한이 없다. 경마를 건전한 레저가 아니라 도박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무제한 베팅의 짜릿함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마권 구입과 배당금 수령이 손쉽게 이뤄진다는 점도 사람들이 불법 경마에 빠져드는 또 다른 이유다. 사설경마를 비롯한 불법 도박의 경우 마권은 전화 한 통으로 구입할 수 있고 배당금은 계좌로 바로 입금된다. 베팅 금액을 모두 잃었을 때도 20% 정도를 환불받을 수 있다. 과도한 세수와 합법시장에 대한 이중·삼중의 규제로 이용자들이 불법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요인이다.
경마를 위해 마권을 산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환급률은 우리나라 기준 73%다. 경마로 배당금을 받은 사람들이 가져가는 돈을 모두 합치면 마권을 산 사람들의 돈을 모두 합친 액수의 73%라는 얘기다. 나머지 27% 중 가장 많은 것이 세금(16%)이고, 운영비용(5%)과 마사회 수익금(4%), 경마 상금(2%)이 뒤를 잇는다.
4% 정도 되는 마사회 수익금 가운데 30%는 경마 등 말 산업 투자 재원으로, 70%는 축산발전기금·농어촌복지사업 재원으로 적립된다. 미국(2%)과 호주(4%), 일본(10%) 등 경마 선진국에 비해 이런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고 마사회는 지적한다.
여기에 구매한 마권이 적중돼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할 경우에는 별도로 22%에 해당하는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경마의 경우 적중금액 여부를 떠나 배당률이 100배를 초과할 경우 마사회가 의무적으로 기타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99배를 적중시킨 사람보다 101배를 적중시킨 사람이 손해를 보는 모순과 함께 이중과세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불법경마가 성행하면서 경마 매출이 감소하자 각종 경마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경마산업 선진국과 대조적인 상황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경마장 내 카지노(RA CINO) 설치와 관광위락시설 조성을 허가했다. 발매 세율도 인하했다.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은 발매액에 대한 원천과세를 없앴고, 시행체의 순매출액(고객 환급금을 제외한 매출액)에 과세하는 방식으로 징수체계를 변경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순매출액의 20%였던 과세를 4%로 감축했다. 마사회은 지난해 10월부터 불법 사설경마에 대한 신고포상금 최고액을 기준 1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제보 독려를 통해 날이 갈수록 지능화·다양화되는 사설경마 조직을 발본색원하기 위한 조치다. 불법 사설경마 신고는 마사회 휴무일인 월·화요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외한 날에 전화(080-8282-112)나 이메일(kra8282112@kra.co.kr)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