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첫 국내산 경주마 경매에서 사상 최고 경매가인 2억9000만원에 팔린 2살짜리 수말
1961년 토론토 근처의 윈드필드 목장. 목장 주인이자 인근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던 테일러(E.P Taylor)는 왜소한 체구의 말 한마리가 태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높이가 160cm밖에 되지 않았던 이 말에게는 꼬마(Runt)라는 별명이 붙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초라한 말이었다. 테일러는 팔려고 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았던 이 말을 하는 수없이 경주마로 훈련시켰다.
바로 이 말이 ‘정액 한 방울이 다이아몬드 1캐럿과 맞먹는다’라고 불렸던 노던댄서(Northern Dancer)였다. 1963~1964년 동안 18전 14승을 거두며 58만달러를 벌어들였던 숨겨진 명마였다. 스포츠기자협회는 노던댄서를 그해 최우수 선수로 선발했다.
그러나 뒷다리에 고질적 문제가 있어 경주마로서의 활약은 1965년에 접게 된다. 이후 그는 씨수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는 트리플크라운(미국의 3대 레이스인 켄터키 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를 모두 우승하는 것을 의미)을 기록한 니진스키(Nijinsky)를 비롯해 댄지그(Danzig), 스톰버드(Storm Bird), 더 민스트렐(The Minstrel) 등 총 635두의 명마들의 아버지다. 그중 511두가 경주마가 됐고, 410두가 우승마였으며 146두가 메이저 대회 우승마였다. 또한 그의 자손들 역시 일류 씨수말로 대성했다. 노던댄서는 1990년 11월 16일 태어난 목장에 잠들었다.
해외의 말 산업은 그 역사와 전통뿐만 아니라 규모에 있어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수한 말은 교배를 시키는 데만 수천만 달러 이상의 돈이 투입된다.
이는 스포츠 수요자(관중)들이 밀어주는 힘이다. 유럽의 경우 모두 600만두의 경주마들이 레이싱을 펼치며 관중들을 즐겁게 하는데, 여기서 창출되는 경제적 효과는 1000억유로(약 146조원)에 이른다고 유럽 말 산업 협회는 밝혔다. 40만명이 말 산업 때문에 일자리를 얻고 있으며, 600만 헥타르(약 181억평)의 녹초지가 말 산업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유럽의 말 산업이 매년 5%(승마자 수 기준)씩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승마강국인 독일의 경우도 승마 인구가 170만명, 승마장 수가 7600여개 수준이다.
미국은 단일 국가로서는 세계 최대 국가다. 모두 920만두의 말이 미국에 있으며 (이 중 경주마는 84만두), 경제적 규모는 390억달러(약 44조원)에 달한다. 14만명이 경주마 산업 덕분에 일자리를 얻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에서는 레크레이션 차원에서도 경마가 활성화돼 있어 약 13만명 규모의 일자리가 추가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말이 3만두 정도(2009년 농림부 가축통계) 있는데 매년 1300두 정도가 생산되고 있고, 실제로 소모되는 것은 850~900두 정도다. 마사회의 경마매출이 8조원가량이니 미국의 18% 정도 되는 셈이다. 말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로 마사회는 총 2조8000억원(경마 2조81억원, 말 생산 391억원, 승마 142억원 등)을 추산하고 있다. 일자리는 2만개 정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말 산업을 차세대 국가 기간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2022년까지 현재 3만두의 말 두수를 10만두 규모로 키우고, 농가 수도 1900호에서 5000호로 늘리는 말 산업 육성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점차 경주마 생산으로 높은 매출을 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한국마사회 제주경마본부 주최로 열린 국내산 2세마 경매에서 제주 명마목장에서 생산한 수말이 2억9000만원에 낙찰돼 우리나라에서는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말은 ‘미스터파크’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마와 아버지가 같다. 그런데 이번 기록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마사회가 소유한 말이 아니라 민간 목장 소유의 씨수말이 낳은 새끼가 최고가를 기록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말 농장도 큰돈을 벌 수 있는 계기가 열린 셈이다.
이전 기록이었던 2억6000만원을 달성한 주인공도 특이한 사람이다. 이광림(37) 첼린저팜 대표는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기계 수리공으로 일해 왔다. 15세부터 말 생산에 50여 년을 바친 1세대 경주마 생산자인 아버지 덕에 그는 경주마 목장 운영에 들어갔다. 16만 5289㎡(5만평) 규모의 소규모 목장에서 시작한 그는 거친 토지개간을 통해 현재 5배가 넘는 82만6446㎡(25만평)의 대규모 경주마 목장으로 성장시켰다. 이씨가 생산한 경주마는 114두. 이들은 통산 1792전 205승을 거두며 무려 90억원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경주마 한 두당 평균 상금은 7500여 만원. 평균적으로 말들이 벌어들이는 상금(3300만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2013년 3월을 기준으로 수송아지의 평균 거래가격은 173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2세 경주마의 평균 거래가격은 4000만원이고 뛰어난 혈통과 체형을 갖춘 1세 마는 1억원 이상에 쉽게 거래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 소나 돼지 생산 농가는 점차 감소 추세지만 경주마 생산 농가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00년 98개에 불과했던 농가가 작년 말에는 220곳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산 말들의 자급률이 초기에는 2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78% 수준을 웃돌고 있다. 이에 말 수출도 늘리고 있다. 마사회는 2020년까지 연간 50두 규모의 수출을 목표로 중국, 필리핀, 마카오 등을 대상으로 해외 바이어들을 초청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이 아직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만의 말 농장 갖기… 쉬운 일은 아니다
말 농장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준비를 하지 않으면 경주마 생산은 실패할 공산이 크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경주마를 생산하는 것을 소나 돼지처럼 가축 생산의 개념에서 시작하면 무조건 실패한다”고 조언했다. 무턱대고 경주마 생산에 뛰어든 이들 중 상당수가 몇 년 뒤 빈털터리가 돼 폐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젊거나 경력이 짧은 생산자들이 배출한 경주마들은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마주들이 많다. 이들은 판매에 어려움도 겪을 수 있는 셈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자신만의 경주마 생산 노하우와 경마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확실히 갖고 시작해야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초 자본금이 많이 든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광림 씨의 경우 대부분의 수익을 초지 임대와 씨암말 구매에 투입하고 있다. 그나마 1세대 생산자인 부모님의 땅과 생산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다. 이 때문에 기반이 없는 젊은 세대에겐 경주마 생산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광림 씨는 “외국에서는 흔히 말 생산은 3대를 거쳐야 안정화 단계에 돌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수한 경주마 생산을 위해서는 할아버지 대에서 목장을 개간하고, 아버지 대에서 말을 육성시키며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 아들 대에 이르러서야 훌륭한 초지와 경주마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0여 개의 경주마 생산농가 중 부모의 대를 이어 경주마 생산에 종사하는 형태가 제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