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는 최근 몇 년간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정부의 끈질긴 외고 억제 정책이 빛을 봤고 대거 등장한 자율형 사립고의 등장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빼앗겼다. 2013년도 서울지역 6개 외고 일반전형 경쟁률을 살펴보면 1.53:1를 기록해 3년 연속 2대 1에 못 미쳤다. 불과 10년 전만 7: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한 것에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이에 더해 지난 5년간 대학입시전형에서 내신성적의 반영 비율이 높아지면서 일반고에 진학하는 것이 대학진학에 더 유리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방외고 일반고 보다 뒤져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경기권에 소재한 외고는 여전히 입시에 있어서 강자이나 여타 지역의 외고는 안가니 만 못하다.
2013학년도 서울대 합격생을 20명 이상 낸 고교 22곳을 살펴보면 과학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가 1위를 차지했고, 예술학교라는 특성을 지닌 서울예술고에 이어 3위는 대원외고의 차지였다. 경기과학고 삼산고등에 이어 자사고로 전환한 용인외고(2010년 자사고로 전환)가 7위이며, 9위가 대일외고, 10위가 명덕외고다. 여전히 외고가 명문고 진학에 강자임을 증명하는 수치다.
그러나 지방외고의 경쟁력은 암울한 수준이다. SKY 합격 비중이 높은 상위 10개 외고는 전부 서울·경기권 소재 외고의 차지였다. 반면, 지방 외고는 SKY 합격 비중이 평균 15%대에 불과해 명문고교에도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전체 외고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제주외고의 경우 지난 2007년 제1회 졸업생 1명이 서울대에 진학한 이후 5년째 수시와 정시를 통틀어 합격자가 없다. 제주시의 평준화지역 일반계 고교에서 연간 10명 가까운 학생들을 서울대에 진학시키는 것에 비교하면 가히 외고의 굴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성적이다.
물론 외고 선발은 전국단위가 아닌 지원 학생의 소재를 기준으로 시·도 단위로 선발하기 때문에 학력 수준이 높은 서울·경기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서울·경기권 외고의 진학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향후 이러한 제도에 변화가 없을 경우 명성을 먹고사는 학교의 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9년 용인외고는 자사고로 전환했다. 전환하기 전에도 용인외고는 서울권의 몇몇 극소수의 외고를 제외하면 전국 최고 수준의 진학률을 자랑하고 있던 터라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사고 전환 이후 용인외고는 전국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며 서울지역은 물론 타지역 우수학생들을 유치하는 효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의대 진학이 가능한 이과를 신설해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지방외고는 용인외고를 벤치마킹해 자사고 전환을 돌파구로 생각해볼 만하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자사고 전환은 쉽지 않다. 정영우 용인외고 교감은 “많은 외고들이 자사고 전환을 원하고 있을 것이나 재정적인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용인외고의 경우 모재단의 도움으로 가능했으나 전국의 외고들 중 자사고 전환을 위한 납입금 대비 재단전입금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경기지역 외고 SKY 진학 강세
지난해 대원외고는 82%라는 놀라운 비중의 졸업생을 SKY에 진학시켰다. 비단 대원외고뿐 아니라 서울소재 외고들은 모두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수시 비중 확대에 기인한다.
전국 4년제 대학 수시모집 비중은 지속적으로 확대 중이다. 2007년도 51.5%에 불과했던 수시모집 비중은 2013학년도 62.9%까지 상승했다. 중요한 점은 서울대, 연대, 고대의 수시 비중이 전국 대학교 평균 대비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서울대는 올해 고3 학생이 입학하는 2014학년도 전형에서 수시 비중을 82.6%로 전년 대비 더욱 확대했다.
둘째, 수시전형 중에서도 외고 학생에게 유리한 ‘특별한’ 수시전형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2014학년도 서울대 전형을 살펴보면 전체 입학 정원 중 58%에 해당하는 ‘수시 일반전형’에서 수능성적이 배제된다. 그렇다면 그 58%의 학생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발할까? 바로 면접 및 구술고사이다.
서울대는 1단계 서류평가에서 1.5~3배수를 선정하고 2단계에서 면접 및 구술고사를 실시하는데, 1단계 서류평가에서부터 명문외고 학생들이 유리하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학생부(=내신) 성적이 불리하기에 1단계 서류평가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1단계 서류평가에 학생부 비중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평가서류가 학교생활기록부, 추천서, 자기소개서, 학교소개 자료, 기타 증빙서류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겉으로 보면 ‘입시학원’일 것만 같은 대원외고의 실제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고2때 학술동아리를 통해 매년 가을에 논문을 발표하는 ‘우수논문 발표대회’를 진행하고, 광진구 영어캠프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진행한다. 이처럼 명문외고일수록 1단계 서류심사에서 일반고 대비 불리한 학생부 성적을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통해 충분히 상쇄할 수 있게 된다.
2단계 면접 및 구술고사에서는 외고 학생이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전공적성 및 학업 능력을 평가하고, 영어·한자 등이 혼용된 지문이 출제되는 등 보다 심층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세대, 고려대의 경우에는 서울대 대비 외고 학생들에 유리한 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의 경우 수능이 거의 유명무실하지만 연세대, 고려대 수시 일반전형(전체 전형 중 각각 33.8%, 32.8%)은 수능+논술전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능 최저학력등급이 대부분 3개 영역 1등급을 획득해야 우선선발에 통과할 수 있다. 따라서 수능시험에 유리한 외고 학생이 당연히 동 전형으로 입학하기 용이하다.
또한 수시 특별전형의 경우 고려대 국제전형(전체 전형의 7.3%)은 수능이 적용되지 않으며 대신 1단계 서류와 2단계 면접전형으로 구성되는데 세계를 선도할 역량을 갖추고 외국어(영/불/중/노/일/서어)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과 열정을 보인 자와 각 어학능력시험 점수에 가산점이 부여된다.
(위)2009년 자시고로 전환한 용인외고, (아래)원어민 교사와 수업 중인 외고학생들
바늘구멍 외고 진학 내신 80% 면접 20%
‘2010년 외고 입시 개선안’이 확정되면서 외고 입시에서 파란이 일어났다. 개선안 전에는 외고 입시에서 전 과목 내신성적과 듣기평가가 상존했고 이에 외고가 명문대 진학의 통로라는 공식이 성립했다.
그러나 외고 입시 개편안에서는 영어 말하기와 쓰기 시험이 없어졌고, 오로지 영어 내신성적과 입학사정관 면접으로 실시된다. 외고 입시에서 영어 말하기와 쓰기 시험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자식에게 영재교육원을 보내거나 경시대회를 보내는 어머니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외고 입학 후 영어 말하기가 부족한 자식이 적응할 리 만무하지만, 외고 입시의 합격여부는 ‘160점의 영어내신’과 ‘40점의 입학사정관 면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주도 학습전형은 1단계에서 영어 내신성적과 자기개발 계획서(자기주도 학습영역, 인성영역), 추천서, 학교생활기록부만으로 1.5~2배수를 뽑은 후, 2차에서 1차 서류를 바탕으로 진위를 확인하는 ‘입학사정관 면접’을 시행한다. 2차 면접에서는 시·도교육청 위촉 입학사정관이 면접에 참여해 인증시험 및 경시대회 성적, 영재교육원 수료 등 교과 활동 외 부가적 성적에 대한 언급을 할 경우 감점한다.
1차에서 입학원서 서류를 제외하고 사실상 영어내신성적만으로 면접 대상인원을 뽑기 때문에 영어 내신성적은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또한 영어 내신성적을 석차백분율에 의한 등급제로 반영하는데, 외고를 지원하는 학생들 대부분의 영어 성적이 1등급인 상위 4%에 포함되기 때문에 영어 내신성적은 사실상 1등급을 받아야 유리하다.
영어 내신(총 200점 만점에서 160점 차지) 역시 중학교 1학년 내신은 제외한 중학교 2학년 1·2학기, 중학교 3학년 1·2학기 총 4학기의 내신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외고 입학이 목적이라면 중학교 2, 3학년 영어내신 대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200점 만점에서 40점을 차지하는 입학사정관 면접에서는 자기주도학습 영역, 인성영역으로 구분된다.
특히 최근 입학사정관 면접 대비용 각종 ‘자기주도 학습전형 학습계획서’를 대필해 주는 사례가 나오면서 철저히 검증하고 있어 미리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5 내신 성취제·강남 등 입시경쟁 지역에 호재
‘2010년 외고 입시 개선안’ 이후 상대적으로 영어 내신성적 획득이 어려운 강남 등 입시 8학군에서는 불만을 표출했다. 실제로 이로 인해 외고 경쟁률이 하락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15학년부터 내신성적 산출에 있어 성취제 평가(=유사개념 절대내신제)가 실시되기에 강남 등 입시경쟁 지역의 불합리함은 다소 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현행 중학교 내신성적 산출 기준은 상대평가제다. 과목별 석차와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표기하는데, 성취제 평가에서는 과목별 석차를 삭제하고 ‘A-B-C-D-E-(F)’로 변경, 원점수/과목평균(표준편차)을 병기하게 된다. 현행 상대평가제는 상위 4%까지만 1등급을 받을 수 있고 총 등급은 9단계이다. 그러나 성취제 평가는 성취도 90점 이상을 취득 시 인원에 관계없이 전부 ‘A’등급을 받을 수 있다. 상대평가로 인해 내신에서 불리했던 입시경쟁 지역의 중학교 내신 불이익이 상당부분 해소되기에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자사고 선호도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