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벤츠가 아니고 에쿠스네.”
지난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퍼레이드카에 탑승한 박근혜 대통령의 차량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인 에쿠스 리무진이 선택됐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의전행사에는 대부분 수입차들이 사용됐다. 대통령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첨단의 기술력과 안전성이 보장된 방탄차량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실제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이용되던 차량들은 메르세데스-벤츠의 S600 풀만 가드와 BMW 760Li 하이 시큐리티, 캐딜락 방탄차 등이었다.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이들 브랜드와 겨뤄현대차의 에쿠스가 대통령의 방탄차로 낙점을 받은 것이다.
‘절대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의 의전차량.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선택한 현대차의 에쿠스 초장축 방탄차에 대해 알아봤다.
해외 개조 vs 국내 생산
대통령을 위한 방탄차를 직접 생산하는 나라는 의외로 적다. 대통령에 대한 테러 위협에서 탑승자의 안전을 무조건 책임져야 하는 만큼 높은 기술력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국 브랜드가 생산한 자동차를 타고 의전행사를 하는 대통령은 의외로 적다. 캐딜락을 타는 미국의 오마바 대통령과 아우디를 타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 정도가 대표적이다.
세계 톱5의 자동차 생산국이 된 우리나라지만 방탄차가 개발된 것은 불과 4년 전인 2009년 현대차의 에쿠스가 처음이다. 이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박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공식 외부 일정을 소화할 때에는 벤츠 방탄차를 탔다.
현대차는 2009년 9월 에쿠스 리무진 방탄차 3대를 대통령실 경호처에 기증했다. 이후에도 현대차는 정부에 에쿠스 방탄차를 추가로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쿠스 방탄차의 방탄 성능은 수입 방탄차와 견줘 손색이 없고 타우엔진을 일부 변경해 강력한 동력성능을 갖췄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방탄차는 국가 정상이나 국빈이 타는 것이기 때문에 제공 이후의 개조 여부나 상세한 제원을 공개하기 어렵다”며 “에쿠스 방탄차는 최근 유럽에도 5대 수출됐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구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 해외 판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과거 자료를 찾아 현대차의 에쿠스 초장축 방탄차에 대해 알아봤다. 일단 현대차의 에쿠스 방탄차는 국내에서 제작되지 않은 모델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생산된 에쿠스를 독일로 보내 방탄차 전문업체인 스투프(Stoof)社에서 방탄 개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박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사용된 에쿠스 초장축 방탄차가 지난해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선보인 에쿠스 방탄차를 기반으로 일부 사양을 보완한 모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의 한 방산업체가 이번 현대차의 에쿠스 개조를 책임졌다는 의견도 있다. 해당 방산업체는 현재 장갑차 관련 제작업체로 방탄차에 필요한 노하우와 제작기술을 상당수 습득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인 캐딜락 원의 원형인 Cadillac DTS
BMW 760 하이 시큐리티 방탄차는 다양한 비상버튼으로 안전성을 높였다
테러와 화생방 공격에도 안전
대통령을 위한 에쿠스 방탄차의 기능과 제원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앞서 밝힌 것처럼 현대차가 밝힐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선보였던 방탄차의 사양을 살펴봤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에쿠스 방탄차가 이보다 더 많은 기능과 더 높은 안전사양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스투프에서 개조했던 에쿠스 방탄차는 최대 430마력을 내는 5.0L 8기통 타우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VR7 등급의 방탄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많은 안전장치들이 배치돼 있다. 기어노브 앞에는 보조 배터리, 적외선 라이트 등을 작동할 수 있는 스위치가 추가로 장착되며 붉은 색의 소화기 버튼을 누르면 차량 화재에 대비할 수 있다. 또 붉은 색의 동그란 ‘알람 온’ 버튼이 중앙에 위치해 위기상황에 대비했다. 트렁크 중앙에는 공기정화장치 등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기계 장치가 장착됐다.
에쿠스의 방탄등급인 ‘VR7’은 일반적인 권총은 물론 M16A2 혹은 M60과 같은 자동 소총의 공격에도 안전하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VR8’이나 ‘VR9’ 레벨의 방탄차는 AK47 소총이나 M61-AP와 같은 경기관총의 공격으로부터도 승객의 안전을 보장한다. 이 외에도 옵션으로 비상 탈출용 해치, 지뢰 공격에 끄떡없는 하체, 터보차저 엔진, 스테나그2 나토 레벨 방탄유리 등을 추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투프는 방탄차 제작과정에서 차량의 앞뒤 문 사이의 기둥을 300mm 늘려 공간을 확보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탑승한 에쿠스 초장축 방탄차의 경우 거의 1m 이상 늘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늘어난 공간에는 추가로 좌석이 들어서거나 랩톱 컴퓨터, 통신시설, 편의시설 등이 장착된다.
전체 무게는 4.8~5톤이다. 또 일반 에쿠스와 같은 배기량 5L급 8기통 엔진을 사용했지만 흡배기를 튜닝해 출력은 기존 400마력대보다 훨씬 높였을 것이란 추측이다. 만에 하나의 상황이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안전가옥으로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힘과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기능들을 추가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수류탄과 총알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해야 하는 만큼 철판의 두께가 두껍다. 그래서 일반차의 2~3배에 달하는 5톤의 무게가 나간다. 하지만 너무 무거우면 차량이 달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에쿠스 방탄차는 5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특수 쇽업쇼버(충격흡수장치)를 사용했다. 하지만 차량이 워낙 무거워 1년만 지나면 쇽업쇼버를 전부 갈아줘야 할 정도다. 유리 두께는 65~75㎜ 수준이며, 도어도 한 짝 당 100㎏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량 바닥과 내장 안쪽에 고강도 강판과 케블러·카본·세라믹 복합 특수 소재를 덧붙여 전 세계 방탄 기준으로 통용되는 독일연방범죄수사청 기준 ‘B6/B7’을 충족시켰다. 고성능 폭약 15㎏이 바로 옆에서 터지거나 AK47 수준의 소총 공격을 단시간에 막아낼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독가스 공격과 화재 발생에 대비한 산소 공급과 소화장치, 야간 운전 시 적(敵)의 시야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한 긴급 소등과 야간 운전용 적외선 투시 장치도 마련돼 있다. 타이어는 던롭사의 ‘스포츠 맥스 GT 런플랫(펑크방지)’ 타이어를 장착, 타이어 내부에 있는 특수 지지물로 바퀴 4개가 모두 터져도 시속 80㎞로 30분 이상 달릴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성능을 가진 에쿠스 방탄차의 가격은 대체 얼마일까. 독일에서 수작업으로 개조한 것과 주요 부품을 교체한 것 등을 감안하면 최소 20억원 이상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일반 에쿠스 최고급형보다 20배가량 비싼 셈이다. 박 대통령의 에쿠스 방탄차의 경우 대한민국 대통령의 차라는 특별함 때문에 더욱 높은 안전사양과 기능들이 추가돼 가격이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처럼 엄청난 가격의 에쿠스 방탄차를 탑승했던 이들은 박 대통령 외에도 있다. 지난해 말부터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한국 정부가 기증한 에쿠스 리무진 방탄차를 타고 있으며, ‘월드스타’ 싸이도 지난 2월 남미를 방문한 기간에 현대차가 제공한 이 방탄차를 탔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S600 풀만가드 방탄차량의 내부에는 2개의 시트가 추가되어 보안요원까지 탈수 있으며 최첨단의 통신시설을 갖추고 있다
BMW 760 하이 시큐리티의 육중한 뒷문
방탄차를 탄 최초의 국가원수는 ‘히틀러’
오직 대통령을 위한 차로 불리는 ‘의전용 방탄차’를 가장 먼저 이용한 국가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히틀러다. 자동차광으로 알려진 그는 실업자 구제와 경제난 해소를 위해 자동차산업을 적극 육성했고, 이 과정에서 폭스바겐그룹이 탄생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탔던 방탄차는 1933년 생산된 벤츠의 770 시리즈 중 출력을 높인 770K 모델이다. 40mm 두께의 방탄유리와 철판 덮개를 씌웠으며, 예비 타이어가 차량 측면에 달려 있다.
미국에서는 32대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처음으로 방탄차를 이용했다. 그는 1939년 12월 저격을 받은 후 방탄 처리된 링컨 컨버터블을 탔다. 24mm 두께의 방탄유리와 경기관총이 장착됐으며, 무게는 4톤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대통령의 전용 의전차량은 GM의 ‘캐딜락 원’이다. 육중한 외관으로 인해 ‘야수(Beast)’로 불리기도 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탄다고 ‘오바모빌’로 칭하기도 한다. 차체는 특수강·티탄·세라믹으로 구성됐으며, 통신장비를 갖춘 대시보드와 GPS장치 등이 장착됐다.
운전은 미 중앙정보국의 베테랑 요원이 맡으며, 대통령의 공간을 위해 전동유리가 장착돼 있다. 캐딜락 외에도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방탄차를 만들고 있다. 최고의 명차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방탄차를 생산했다. 1928년 ‘뉘르부 460’을 시작으로 대표 방탄차로 불리는 ‘S600 풀만 가드’까지 방탄차 사업부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BMW의 ‘시큐리티’ 시리즈는 최고 201km/h의 속도가 장점이다. 방탄성능은 GM과 벤츠가 비슷하다. 이밖에도 아우디 A8과 롤스로이스 아모드, 폴크스바겐 페이튼 W12, 재규어 올 뉴 XJ 센티넬, 일산의 닛산 로얄 등이 방탄차로 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