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와 함께 분석한 대한민국 명문고]②·한성과학고, 수능 만점형 인재 원하지 않는다
입력 : 2013.04.08 15:13:06
수정 : 2013.04.26 09:26:03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김 여사는 무심코 지나던 길에 집 앞의 일반고등학교에 걸려 있는 플랜카드에 눈길이 갔다. ‘김철수 서울대 OO학과 입학, 박근자 서울대 OO학과 입학.’
“오! 서울대 2명이나 합격했네? 괜찮은데? 이사 가지 말아야겠군.”
학군 좋은 동네에 산다는 생각에 기분 좋아진 김 여사는 시장을 본 후 집에 돌아와 무심코 신문을 펼쳤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문구는 바로 ‘2012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수 서울과학영재학교 93명, 한성과학고등학교 50명’이라는 것이었다. 신문에 나온 숫자가 잘못된 게 아닌지 눈을 몇 번이고 비비고 살펴봤지만 같은 숫자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허탈함과 집 앞에 있는 고등학교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만이 가득했고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과학고 입시전형을 찾기 시작했다.
위 일화는 우리 주변에서 초·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3학년도 서울대 합격생을 20명 이상 배출해낸 고교 22개를 살펴보면 과학고(영재고 포함)와 자율형사립고가 각각 6개 학교로 가장 많았고 외고(5), 예고(3) 순이었다. 22개 고교 가운데 영재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를 제외하면 공주한일고만 남는다. 그러나 공주한일고도 전국단위로 선발하는 비평준화 지역의 자율학교이니 일반고등학교는 단 한 곳도 없는 셈이다.
특히 한 해 졸업자 수가 140명 남짓에 불과한 과학고등학교들이 재수생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한 해에 서울대를 40~80명씩 합격시키며 졸업생 대부분이 명문대에 진학하다보니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자녀들이 일단 과학고에 입성하는 순간 명문대 진학의 보증수표를 받는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명문대 진학비율이 높은 특수목적고등학교, 그중에서도 과학고등학교 진학에 부모들의 관심이 높은 현상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국내 여러 과학고 가운데 매년 높은 명문대 진학률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학교는 단연 한성과학고다. 지난 호에 분석한 서울과학영재학교와 달리 영재학교로 전환되지 않고 특수목적고등학교로 남아 있는 한성과학고는 서울지역 학생들에게만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김득호 한성과학고 교장은 “영재학교와 달리 본교는 (서울)지역학생들이 입학하는데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며 “학생들 간에 적은 지역적 편차로 이질감이 적은 편이라 빨리 잘 어울리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한성과학고는 매년 4:1 정도의 입학경쟁률을 보이고 있으며 교사는 교과부 추천을 받아 선발한다. 현재 교장·교감 포함 정원 55명으로 학생 수와 교사의 비율이 6:1을 넘지 않는다. 교과과정은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과학고의 특성상 영재학교와 달리 교과부 지침에 따라 지정된 교과서를 사용한다. 단 일반고와는 다르게 검증도서가 아닌 인정도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수준은 높은 편이다.
김 교장은 이에 대해 “특히 수학·과학 같은 경우에는 특수 과목도 많아 일반고와 다른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일반고등학교보다는 전문적인 교과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학상황을 살펴보면 높은 조기졸업 비중이 눈에 띈다. 현재 한성과학고 졸업생들은 80%가량이 2학년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가장 많이 진학하는 대학은 카이스트와 서울대이고 이어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등 순이다. GIST와 UNIST에도 꾸준히 일부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대다수 이공계분야로 진학하지만 의대나 치대로 방향을 선회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장은 “일부 학생들이 의대·치대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전체 과학고 졸업생의 4%로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공계 대학에 들어가고 있고 진학상담에도 순수과학 분야로의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부터는 조기졸업 비중이 줄어들 예정이어서 대학 진학 판도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김 교장은 “전인교육 강화와 인문사회 교육의 중요성 등을 이유로 교과부에서 조기졸업 비중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예상치지만 조기졸업생이 최대 30%가량 정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현재 한성과학고 학생들은 대다수 2학년을 마치고 조기입학이 가능한 카이스트, 포스텍 등을 선택하고 있지만 조기졸업이 어려워질 경우 서울과학영재고와 마찬가지로 서울대 진학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과학영재들의 서울대학교 진학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지만 과학분야 특성화대학 진학 비율이 줄어든다라는 측면에서 조기졸업자 비율 축소가 과연 과학영재 조기 발굴과 육성이라는 목적에 들어맞는 정책인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한성과학고 명문대 진학비중 늘어나는 이유
한성과학고의 명문대 진학률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에는 몇 가지 비밀이 숨어있다. 첫째, 수시 비중 확대에 기인한다. 전국 4년제 대학 수시모집 비중은 2007년도 51.5%였지만 2013학년도에는 62.9%까지 상승했다. 주목할 점은 서울대, 연대, 고대의 수시 비중은 전국 대학교 평균 대비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대의 경우 올해 고3이 입학하는 2014학년도 전형에서 수시 비중을 82.6%로 전년 대비 더욱 확대했다.
둘째, 수시전형에서도 과학고 학생에게 유리한 수시전형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2014학년도 서울대 전형을 살펴보면 전체 입학정원 중 58%에 해당하는 ‘수시 일반전형’에서 수능 성적이 배제된다. 그 58% 학생들은 면접과 구술고사에 의해 선발된다. 학부모들은 흔히 ‘구술고사라고 하면 웅변학원을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여기서 구술고사라 함은 지정과목과 선택과목 각각 1과목씩을 선택해 시험을 보는 방식을 의미한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경우 과별로 지정과목이 정해져 있고 선택과목은 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과학고 출신들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내내 이들 과목들에 대한 개념, 논리, 원리에 대한 꾸준한 학습과 실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이해도가 일반고 학생들에 비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당연히 수능점수가 반영되지 않는 면접 및 구술고사에 과학고 학생들이 강점을 가지게 된다.
셋째, 과학고 졸업생들이 대부분 진학하는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수시 100%로 선발하며 수능반영 비율은 0%다. 카이스트의 경우 전체 입학전형 중 80%를 서류와 면접을 통해 선발하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과학고 재학생 중 조기졸업자 뿐만 아니라 카이스트의 과학영재선발위원회로부터 지원자격을 인정받은 자 또한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과학고 재학 시절 이들 위원회로부터 자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과학고 재학생이 유리하다. 선발 과정도 서울대의 구술면접과 유사하게 개인면접과 단체토의를 통해 뽑기 때문에 과학고 출신들이 당연히 카이스트 진학에 앞서 있다.
과학고 입시 100% 자기주도형 학습전형
2013학년도부터 전국 20개 과학고는 학생들을 100%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선발했다. 이에 따라 지원자는 학업계획서 대신 ‘자기개발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서류에는 지원동기와 진로계획, 성장과정과 환경, 봉사·체험·탐구활동, 독서와 인성요소 관련 활동 등을 기록하면 된다. 올림피아드와 같은 교외 경시대회 입상 실적, 영재학급이나 영재교육원 수료 여부, 수학·과학·영어 등 교과 관련 인증 또는 능력시험 점수를 자기개발계획서와 추천서에 기재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 또한 과학고와 과학영재고는 복수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학고를 준비한다면 과학영재학교의 서류준비 과정과 과학캠프 과정을 거쳐보는 것이 과학고 입시에 도움이 된다. 과학영재고의 영재성 입증자료로 제출한 실적을 과학고 자기주도학습전형의 입학사정관 면접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영재학교 입시전형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준비가 될 수 있다.
과학고 입시안을 보면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 등 객관적인 지표로 과학에 대한 적성과 재능을 보여주는 것을 처음부터 차단하기 때문에 학생으로서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해지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 추천서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김 교장 역시 1차적으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찰한 교사의 추천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고 입학전형에서는 실제로 학생이 제출한 서류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이 중학교에 방문해서 지원자도 만나고 담임선생님, 수학·과학 선생님 등을 만나 직접 상담도 한다.
김 교장은 “한 입학사정관이 추천서를 작성한 담임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교사가 답변을 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더라”며 “대필 여부와 추천서의 진위를 가리고 학생의 자질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입학사정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서류심사 후 실시하는 소집면접에서는 한성과학고등학교 선생님이 직접 문제를 출제하며 공통문항뿐만 아니라 개별서류에 기반해 직접 지원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의 잠재역량을 파악한다.
즉, 과학고 입시에서도 더 이상 수학·과학 문제를 잘 푸는 암기형 인재가 아닌 창의력·사고력 인재를 뽑고 있다. 또한 이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국내 유명대학교 입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학고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부모들은 과학고가 수능 만점형 인재가 아닌 창의형 인재를 원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