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INTERVIEW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 `조기 영어 교육은 헛된 기대일 뿐`
입력 : 2013.04.08 15:12:37
수정 : 2013.04.26 09:25:56
한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조기 영어교육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병민 교수는 “영어 수업시간 외에 우리말로만 소통하는 나라에서 그건 코끼리 비스킷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조기 영어교육의 ‘조기(早期)’는 과연 얼마나 빠른 시기를 말하는 걸까.
이 교수는 “흔히 언어를 습득하는 결정적 시기를 이야기하지만 가설에 불과할 뿐 명확하게 검증된 바 없다”며 “인간의 언어능력과 그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환경이 만나야 효율적인 언어습득이 이뤄질 수 있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한다고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의 입학이 마무리됐다.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학문적인 소신을 갖고 말하자면 찬성이나 반대를 떠나 조기 영어교육은 한국적 맥락에선 100% 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카가 이민을 갔거나 친척 중 누군가 아이를 데리고 유학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릴 때 영어를 배우면 빨리 배운다고 일반화시킨다. 그런 현상이 있는 건 분명한 데, 그 현상 자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실제 학문적으로도 조기교육이 좋다, 나쁘다란 연구들이 있다. 특히 영어를 쓰는 현지에서 성장하면 조기 영어교육이 효과적이란 연구가 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미국적인 맥락이지. 영어가 일상이 될 수 없는 한국에선 효과가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조기 영어교육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연구나 어떤 효과가 나타났다는 실증적 검증은 거의 없다.
조기 영어교육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어떤 점이 선행돼야 하나
생각처럼 언어를 배운다는 게 단순하지 않다. 영유아 때 시작한다? 미국 나이로 따지만 4~6세들인데, 지금 이 아이들이 뭔가를 배우고 있다. 원래 아이들은 말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모국어를 익힐 수 있는 조건이자 능력이지. 이처럼 모국어를 배울 때와 같은 조건이 만들어져야 언어 습득에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말 배우는 조건을 생각해보자. 엄마가 곁에서 하루 종일 놀아주고 떠들어준다. 그런 자연스런 일상 속에서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밟아간다. 우리 모두 그렇게 말을 배우고 익혔다. 그런데 이 상황에 영어를 대입해보자. 우선 모국어를 익힐 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없다.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니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조기 영어교육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말을 가르쳐주는 상황이다. 유치원도 보내고 학원도 보내면서 의식적으로 교육한다. 어릴 때 조기 영어교육을 하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나을 순 있지만 부모들의 일반적인 기대보다 효과는 낮다. 왜냐하면 영유아는 지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이해는 못해도 발음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영유아영어학원에선 원어민 수준의 발음 습득을 강점으로 꼽던데
대학원 학생 중에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4년간 지낸 제자가 있다. 이 집 형제가 세 자매인데, 모두 4년간 미국에서 지냈지. 그 자매들의 발음이 지금은 어떨까. 그 학생은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한다. 너무 어려서 남아있는 기억이 얼마 없던지, 아예 없는 것이지. 영어유치원, 좋다. 초등학교에 가면 어찌해야 하나. 영어로 말하고 쓰고 생각하게 하려면 또 가르쳐야지. 사교육 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안했다? 그럼 유치원 때 익혔던 영어는 싹 다 날아간다.
사교육이 사교육을 낳는 과정이다
그렇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평생 사교육해야 나름 원어민스러운 영어 실력을 가질 수 있다. 조기 영어교육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그건 어린 시절, 유치원 때 잠깐 한 것 뿐이다.
아이가 성숙했을 때 집중하는 게 낫다그럼 몇 살에 조기 영어교육을 시작해야 적절한가
우리나라의 조기 영어교육은 학습의 형태다. 그러니 인지적으로 무엇인가를 구별할 수 있는 나이, 선생님이 가르치는 걸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나이, 해오라는 숙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이에 시작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쉽게 말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4세와 10세를 놓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10세다.
영유아영어학원의 커리큘럼은 어떤가
내겐 공개하지 않던데.(웃음) 관인 유치원의 영어수업은 참관해본 적이 있다. 유치원 평가위원을 한 적이 있어서 시범강의를 본 적이 있는데, 관인 유치원이니 영어를 매일하는 게 아니다. 정규과정이 끝나면 특별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데 1주일에 3일, 하루 1시간 씩 한국인 강사들이 진행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누리과정에 영어가 포함돼 있으니 원래는 못하게 돼 있는 수업이지. 그런데 학부모들이 원하니 어쩔 수 없다더라고. 이마저도 안 하면 영어유치원에 원생을 빼앗길 판이니.
조기 영어교육과 함께 조기유학이나 언어연수도 하나의 트렌드가 됐는데, 학원과 연수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
두 가지만 놓고 본다면 언어습득의 환경이 갖춰진 연수가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런 환경이 일시적이어선 안 된다. 계속 이어져야겠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고 지금 인도네시아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를 한다는 건 평생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건가
원어민처럼 하는 건 불가능하지.(웃음) 그러려면 아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 살아야겠지. 간혹 엄마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우리 아이가 오바마처럼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목표가 너무 높기만 하다.
유치원 때부터 그 목표를 위해 투자한다면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다. 상위 5%라면 가능한 일일까? 모든 이들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건 고비용 저효율 구조다. 원어민 수준이 목표가 아니라 세계인과 소통을 목표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통이 중요하지 발음이 중요한가?
아이에게 조기 영어교육을 시작하려는 부모에게 조언한다면
첫째, 비용대비 큰 효과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평생 시켜야 한다. 셋째, 아이가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집중하는 게 투자대비 효과가 있다.
강남엄마 2인의 푸념 Talk “강남 엄마들이 걷고 뛰고 나는 이유 아세요?”
거주지가 한강 이남이라고 모두 강남엄마일 순 없다. 적어도 거주지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쯤 돼야 진정한 강남엄마다. 일례로 입학할 때 월 100만원 이상 돈을 내야 하는 전국 71개 사립유치원 중 20곳이 강남 3구(강남구 10곳, 서초구 5곳, 송파구 5곳)에 몰려 있다. 그중 5곳은 연간 소요 비용이 1000만원 이상이다. 강남에서 5년 이상 거주한 두 명의 강남엄마는 “그런 현실이 별반 새로울 것도 없다”며 한숨 반 걱정 반 말을 이어갔다. 전업주부인 철수네(가명)와 워킹맘인 영희네(가명) 모두 사진촬영은 극구 사양했다. 내세울 것도 없지만 자칫 아이들이 왕따 당할 지도 모른다며 농반진반 이유를 이야기했다.
철수네 우리 아인 5살이고 영어유치원에 다녀요. 원래는 유아영어학원이라 불러야 한다면서요? 혹시 뒤떨어지거나 우리 아이가 들러리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수업을 참관해보니 괜찮았어요.
영희네 우리 아인 4살인데, 지금 어린이집에 다녀요. 맞벌이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영어놀이학교도 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스트레스 줄 것 같아서… 내년에는 영어학원에 보내려는데 조언 좀 해주세요.
철수네 그 정보 얻으려는 엄마들 커뮤니티 끼기 힘든 거 아시죠. 운이 좋으시네요.(웃음)
영희네정부에서 3월부터 전면 무상 교육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우린 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더군요. 지원자가 넘쳐서 보육료(28만6000원) 지원이 안 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거든요. 지원해준다는데 못 받으니 얼마나 속이 쓰리던지.
철수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해당 기관이 아니라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니 다행이죠.
영희네 영어유치원은 다니는 것보다 고르는 게 더 힘들다고 하던데요.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정보를 알기도 힘들고.
철수네 맞벌이 부부들은 더 힘들걸요. 커뮤니티에 낄 시간이 없으니 더 하지 뭐. 그래서 엄마들 사이에선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기도 해요. 인터넷에 떠다닌다고 쓸모없는 정보가 아니에요. 내 경우는 산후조리원에서 알게 됐어요. 그곳에 같이 있던 엄마들이 어떤 유치원이 좋다, 어떤 사립초등학교가 좋다,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친구처럼 지내면서 조리원 동기들이 지금 아이 학원 학부모들이 됐어요.
영희네 10월부터 준비한다던데, 어떤 영어유치원이 좋아요?
철수네 우린 PSA, 랜퍼스, 밤비니 등등을 알아봤는데, 3월 초에 개원이고 12월부터 2월까지 입학설명회를 가져요. 1월에 유난히 붐비니 좀 서두르는 게 낫겠네요. 각국 문화원들이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여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가 대상이에요. 지역이 같으면 지원할 수 있는데 원비가 30%는 더 비싸더라고요.
영희네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다들 영어유치원에 간다니까 아이가 당연히 가는 곳인 줄 알고 있어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철수네 우리 아인 하루 4교시 수업 받고 집에 오는데 이젠 꽤 하더라고요. 앵무새처럼 좔좔 외우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뜻을 이해하는 것 같아서….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해요. 영어유치원에 넣는 순간 평생 영어교육 시켜야 한다잖아요. 가끔 보내면서 이걸 꼭 해야 하나 푸념하다가도 또래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 깜짝 놀라게 돼요. 어찌나 당연하게 영어, 영어 하는지.
영희네 그렇죠? 영어유치원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만만치 않다던데 어떠세요.
철수네 이건 제 친구의 경운데, 엄마들 참관수업이 있어서 가봤더니 주차장에 국산차가 없더래요. 아이한테 물어봤더니 가끔 애들끼리 엄마 차는 봤는데 아빠는 어떤 차를 몰고 다니냐고 묻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대놓고 넌 몇 평에 사냐고 묻는다더군요. 어이없지만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게 그러니 뭐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우리 아이 유치원도 대단해요. 아이 생일이면 엄마들이 음식이며 선물을 준비하는데, 아이를 위한 건지 보여주기 위한 건지 도대체 애들 선물에 왜 명품이 끼고 선생님들까지 선물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요. 경제적으로 빠듯한 엄마들은 아예 유치원을 옮기기도 해요.
영희네 가끔은 그래서 강남으로 이사 오길 잘한 건가 싶기도 해요. 아이가 보고 자라는 게 너무 물질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이 교육비로 너무 큰 지출이지 않나 싶거든요.
철수네 조리원에 있을 때 막둥이로 둘째를 출산한 한 언니가 그러더군요. 영어유치원 거쳐 사립초등학교에 국제중고등학교, 해외유학에 나서는 게 이상하면 이사 가면 그만이라고. 비슷한 환경과 수준의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걸 보면 왜 대치동 엄마, 강남 엄마들이 걷고 뛰고 날라 다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