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와 함께 분석한 대한민국 명문고] ①· 대치동 엄마들…과학영재고에 집착하는 이유
입력 : 2013.03.07 10:43:54
수정 : 2013.03.13 09:59:18
서울과학고가 2009년 서울과학고에서 서울과학영재고로 전환된 이후의 변화된 진학성적을 보면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고 시절이었던 2008년만 해도 KAIST 진학생이 연간 54명에 달했다. 허나 2009년에 영재학교로 전환된 이후 카이스트 진학생 수는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2011년은 5명, 2012년은 1명, 2013년은 6명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대 진학생 수는 점차 증가해 2008년 59명에서 2013년 80명으로 급증했다. 물론 과학영재가 서울대 이공계에 진학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KAIST라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고자 설립된 과학기술대학에 과학영재가 한 해 10명도 안 되는 숫자가 입학한다는 실정은 아이러니하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영재학교는 서울대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일반과학고는 KAIST 진학률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2학년도 과학고, 과학영재학교의 서울대 합격자 수를 살펴보면 과학고 대비 영재학교의 진학률이 월등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과학영재를 육성한다는 설립취지를 통해 보면 과학영재고를 과학고보다 더 상위개념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영재들은 KAIST보다 서울대와 연세대(의대 중심) 등 소위 SKY대학을 더 선호하고 실제로 더 많은 학생이 진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최병수 서울과학영재학교 교장은 “아이들이 과학영재학교를 나와서 과학계나 공학계에 진출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KAIST만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뛰어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향후 대학 진학에 있어서도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어느 특정학교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힘들어진 조기졸업 서울대로 방향 전환
자 여기까지 보면 왜 대치동 엄마들이 과학영재고를 더 선호하는지 대충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정원의 80%가 조기졸업하는 과학고와 고교 시절 3년을 대부분 다 채우고 졸업하는 과학영재고의 교육 과정의 차이에 기인한다. 두 학교의 교육 과정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과학영재고는 영재교육진흥법에 의거해 운용되는 반면 과학고는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에 과학영재고등학교는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자율권이 확보되어 있어 무학년 졸업학점제(학년 구분 없이 학생이 희망하는 교과목 이수 후 필요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로 필요 학점을 전부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를 실시하고 있으며, 조기졸업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수업 커리큘럼상 졸업에 필요한 필요 학점(170학점)을 이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에 대부분 고등학교 3년 기간을 채우고 졸업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입학전형 자체도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13학년도 KAIST 입학정원 900명 중 총 720명을 선발하며 정원 중 80%를 차지하는 일반전형의 경우 지원자격에 ‘2013년 2월 고교 (조기)졸업예정자와 기 졸업자(검정고시, 외국 소재 고교 포함)’ 또는 ‘2013년 2월 국내 고등학교 2년 수료예정자로서 본교의 과학영재선발위원회로부터 지원자격을 인정받은 자’로 기재하고 있다. 전형방법 역시 원서+창의인성면접 및 심층면접으로 수능성적은 배제되어 있다. 이는 졸업생의 80%가 조기졸업하는 과학고에 유리한 전형인 반면, 학점이수제로 사실상 3년을 채우고 졸업하는 과학영재고는 다소 불리하다.
반면 같은 영재학교 내에서도 서울과학영재고와 한국과학영재고의 진학 실적은 매우 상이하게 나오고 있다. 한국과학영재고등학교는 2009년 3월 KAIST 부설이 되었으며 이에 KAIST와의 교육 연계가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KAIST 지원 자격 중 ‘본교의 과학영재선발위원회로부터 지원 자격을 인정받은 자’라는 조건에 서울과학영재학교 대비 KAIST부설인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사실상 유리할 수밖에 없어 한국과학영재학교의 KAIST 진학률은 독보적이다.
반면 KAIST 와 대조적으로 서울대 일반전형의 경우 지원자격이 고등학교 졸업자(2013년 2월, 졸업예정자 포함),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자 (2012년 8월 31일 기준) 또는 법령에 의하여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인정된 자(외국 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 포함) 로서 모집단위 (계열)별로 정한 지원자격에 해당하는 자로 한정하고 있다. 즉 조기졸업을 통해 입학이 불가능하며 실제로 서울과학영재고 출신 중 조기 졸업을 통해 서울대에 진학하려던 학생의 경우 국가에서 입학을 불허한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원의 대부분이 조기 졸업을 하는 과학고의 경우 서울대보다는 KAIST 쪽으로 진학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부분이 ‘KAIST에만’ 진학하는 과학고보다는 KAIST 뿐만 아니라 서울대와 연세대 의대에도 진학할 수 있는 과학영재고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의 대학 선택권을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오로지 과학도의 길만 걸어야 될 가능성이 높은 과학고와는 달리 다양한 전공을 택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학부모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과학고, 과학영재고의 뒤를 따르나
이러한 현실 때문일까, 2014년부터 과학고들도 입학생 중 조기졸업 비율을 현재의 80% 수준에서 20% 정도로 대폭 낮추도록 교육청과 함께 교육 과정을 손질 중이라고 한다. 현재 과학고 자체가 3년 교육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조기졸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교과부는 전인교육이나 인문사회교육 쪽은 약화될 수밖에 없고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학생이 거쳐야 하기 때문에 수정을 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입시 현실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조기졸업 비율이 낮아지면 과학영재고의 진학형태를 따를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특수한 교육과정 속에서 그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과학도로서 역량을 갖추어 주고자 하는 교육 취지에 맞지 않게 오로지 대학 진학이라는 현실적 목표로 인해 두 학교 모두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고와 과학영재고의 입시안을 살펴보자.
과학고는 2013학년도부터 학생 선발이 자기주도학습전형 100%로 변경되어 1차인 서류전형부터 입학사정관이 담당하며 지원자 뿐만 아니라 담임 선생님, 수학/과학 선생님 등을 만나 철저하게 검증을 한다. 올림피아드 같은 학교 외 경시대회 입상과 영재교육 수료 등에 대해 서류에 기재할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되며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학생의 발전가능성 위주로 뽑기 위해 평소에 수학이나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왔는가를 살펴본다. 과학영재고의 경우에도 교육원이나 수상실적 기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1단계부터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창의성과 잠재력을 파악하고자 한다.
최병수 서울과학영재학교 교장과 김득호 한성과학고 교장은 입을 모아 과학영재고와 과학고를위해 준비할 것은 따로 없고, 오로지 ‘수학 과학’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독서 자기주도 학습을 강조한다. 특히 영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IQ 150 이상이 학생들이 들어오기에, 오히려 선행학습을 하면 영재들의 창의성을 망치는 결과가 초래하니 선행학습도 사교육도 필요 없으며, 수학 과학에 관한 다양한 책을 통해 꾸준한 관심과 본인 스스로 사고를 하는 자기주도 학습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론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면접고사 자체가 실질적으로 지필시험과 같은 문제를 면접 형태로 평가 받는 시험이 되다 보니 난이도나 출제된 문제의 유형이 집필시험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은 미리미리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천재가 아닌 이상 실전에서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수학 과학에 관해서는 영재교육원 등을 통해 심화학습을 하는 것이 필수”라는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방과 후 학급 중심으로 영재학급이 증가하고 있으며 창의성 검사와 관련해 사교육이 횡행하고 있는 등 현실적으로 문제가 잔존하고 있다.
자기 주도학습전형만큼 좋은 학습법이 있을까? 또한 선행학습도 수학 과학 경시대회 입상 실적도 필요치 않으며, 오로지 수학 과학에 꾸준한 관심과 자기주도학습을 통한 탁월한 영재성을 입학사정관이 면접을 통해 알아본다니 참으로 이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중학교 때 영재학급, 수학, 과학경시대회 입상 실적 등 이런 것이 없다면 학과 선생님 및 담임선생님의 추천서를 받아내기란 사실상 어렵다”며 이러한 준비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우리 자녀가 스티브잡스 같이 창의적이고 창조력이 뛰어난 아이라면 상관없다. 아이가 수학 과학에 관심은 많고 IQ가 130 이상은 되나 그렇다고 수학 과학에 영재성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여러 사교육을 통해 과학영재고와 과학고 입시를 준비시킬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김미연 애널리스트
2008년~2012년 까지 매경이코노미 교육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에 오른 교육분야 스페셜리스트. 지난해에는 다년간의 애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을 살려 2012년 ‘입시의 정석’을 출간해 객관적 시각으로 ‘입시전략’을 분석해 큰 화제를 모은바 있다.
1976년생으로 동양종합금융증권, 메리츠 증권을 거쳐 현재 유진투자증권으로 옮겨 교육, 제지, 유통, 화장품 분야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