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와 함께 분석한 대한민국 명문고] ①·서울과학고등학교…무학년 학점제에 조기졸업 허용 안 해
입력 : 2013.03.07 10:41:33
수정 : 2013.03.26 14:36:47
‘명문고등학교 이제 안 보내도 그만?’
수시입학제도 등 대학입시에 있어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이전과 다르게 ‘명문고’ 진학에 대한 절대적인 수요는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학률이 높은 명문고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선호는 높다. 특히 대학입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교시절부터 교과과정이 차별화된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자녀가 특별한 인재로 성장하기 바라는 부모들의 바람은 지속적으로 과학영재고를 비롯해 과학고, 외고 등 특수고등학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우수한 진학률을 자랑하는 자립형 사립고와 명문사립고에 대한 학부모들의 ‘무한애정’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경쟁하며 면학 분위기나 사회에 진출한 이후 선후배·동창들과의 교류 등을 감안하면 명문고 진학은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실상 강남 학원가에 떠도는 명문고교 진학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은 학부모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다는 것이라면 하나라도 더 시키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이 ‘장사 속’에 이용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러한 현실에 착안해 기자는 국내 굴지의 명문고등학교를 탐방하고 각 고교의 경쟁력과 장단점을 분석했다.
본 기획에는 교육 분야 스페셜리스트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와 함께 한다.
서울대 진학률 1위 ‘서울과학고등학교’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영재 육성을 목표로 설립된 과학영재고등학교는 현재 전국에 4개교가 운영 중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2005년 일찌감치 부산과학고등학교에서 교명 전환한 KAIST부설의 한국과학영재고교와 2009년 서울과학고교가 전환한 서울과학영재고등학교, 2010년 경기과학고교가 전환한 경기과학영재고, 2011년 대구과학고가 전환한 대구과학영재고등학교 등으로 모두 기존의 과학고가 전환한 형태다.
기존 학교명에 들어간 ‘영재’라는 두 글자는 이전 특수목적고 시절과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먼저 초중등교육법에서 벗어나 영재교육진흥법에 의해 규율을 받게 되었고 지역 배분 없이 전국단위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됐다. 진학에 있어서는 수능과 내신 성적에 관계없이 서울대학교 KAIST와 포항공대 등 국내 우수대학과의 협약에 의해 특별전형으로 진학이 가능해졌다. 교육과정은 학교자율로 정해져 교과부 지정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교재를 만들어 사용해도 무관하다.
단 이전과 다르게 조기졸업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원칙적으로 대학교와 같이 학점제를 도입해 필요 학점을 채우면 가능하지만 빡빡한 커리큘럼상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한편 이러한 4개의 과학영재고 가운데 최근 부쩍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학교는 서울과학영재고교다.
이유는 2013학년도 서울대 입시 결과 81명의 합격생을 배출해 전국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영재학교 진학 위한 사교육 ‘쓸데없어’
“영재고 전환과 함께 학생들의 수준은 한층 높아졌다. 단편적으로 신입생들의 IQ검사 결과 평균 150에 이르고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하는 한국대표 중 50%는 서울과학영재고 학생이다. 특히 2012년에는 수학의 경우 참가한 5명 모두 금메달을 수상해 처음으로 종합 1위를 달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최병수 서울영재 과학교 교장은 전국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며 이전보다 우수한 영재들이 서울과학영재고에 진학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입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아직까지 서울과 지방이 7:3정도로 서울권 학생비율이 월등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율은 10:1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지는데 현재 1학년은 총 132명 가운데 여학생은 11명 2학년은 121명 가운데 4명, 3학년은 120명 가운데 9명에 불과하다. 이같이 성비가 벌어지는 까닭에 대해 최 교장은 “일단 2000개가 넘는 입학원서 가운데 여학생은 300~400장 남짓밖에 안되는 이유가 크다”라며 “과학, 수학분야에 있어 남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있지만 우수한 여학생이 지원을 많이 안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2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학생들과 유사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학교자체적으로 제작하거나 대학에서 보는 교재들을 사용하며 ‘무학년 졸업학점제’에 의해 자율적으로 제한 없이 시간표를 짜서 수업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공강’ 시간도 생기고 일반고 같으면 1, 2, 3학년생이 같이 수업을 듣게 되는 상황도 벌어진다. 또한 AP제도를 운용해 고교에서 대학과정을 미리 이수 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 교장은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등과 연계해 AP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며 “많은 학생들이 이 제도를 통해 대학조기졸업 후 일찌감치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단 서울대는 AP제도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현재 서울과학영재고 졸업생들은 거의 100% 국내 대학에 진학하고 90% 이상 속칭 SKY와 카이스트 포스텍에 진학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영재학교 전환 이후 AP제도가 인정되지 않는 서울대 진학 비중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연세대·고려대 의대에 진학비율이 높아진 반면 카이스트나 포스텍 진학률은 줄어들었다. 이는 과학고 시절과 달리 조기졸업이 불가능해진 탓이 크다.
최 교장은 이에 대해 “조기졸업이 어렵게 바뀐 교과과정은 전인교육을 위해 긍정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공부만 하다 보니 사회성이나 인격이 형성될 시간이 부족해 실패한 천재들이 상당히 많았다. 3년간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인격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서울대 진학비율이 높아진 것에 대해 “이공계 전문화 대학인 카이스트나 포스텍만큼 서울대의 경쟁력 역시 높다는 학부모들의 선택”이라 답했다.
한편 최 교장은 과학영재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사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영재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재가 아닌 아이를 영재교육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켜 올림피아드 대회에 내보낸다고 해도 (과학영재고등학교) 진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학교 1학 년 때 입학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러한 케이스는 사교육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영재는 ‘타고나는 것’이라며 잘못된 영재교육은 ‘자녀를 괴롭히고 망칠 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