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월 19일 밤 당선이 확정된 뒤 광화문 광장에서 가진 첫 번째 기자회견을 통해 “민생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대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돼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3년 취임 후 박 당선인이 만나게 될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세계 경제가 2012년에 비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작지 않은데 이명박 정부는 국가 경제의 폭탄과도 같은 골칫거리인 가계부채를 전혀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넘길 태세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 그에게 등을 돌린 유권자가 48%나 된다. 태생적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언론도 적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은 중앙공약만 해도 398쪽이나 될 만큼 어마어마한 약속을 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제시했지만 국민들은 공약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국정을 제대로 꾸려나가려면 그 외에도 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이 많은 약속을 한꺼번에 모두 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매일경제는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차기 대통령이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사안’을 조사했다. 전국 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대부분이 ‘경제위기 극복’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두 번째로 시급한 사안이라고 꼽은 것은 사회 양극화와 분열 해소다. 다음으로 시급한 이슈로는 부패 척결 등 정치개혁을 꼽았다. 박 당선인은 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의 약속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민생의 핵심은 가계부채 해결
박 당선인은 지난 11월 30일 부산 유세에서 “노무현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고 이명박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다. 나는 과거 정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정부를 만들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또 12월 18일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민생이 박 당선인의 첫 번째 약속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연금 등 복지를 먼저 의식하지만 사실 박 당선인은 그 실마리를 가계부채 해결에서 찾는다. 10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면 가계가 파탄에 이르고 금융권이 부실화되며, 국가가 재정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박 당선인은 “집권하면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당선인은 가계부채가 경기 침체나 부동산 가격 하락, 일자리 감소, 교육비 증가 등에 의해서도 커졌지만 금융권 책임도 작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통 받는 서민을 위해 금융권의 고통 분담, 선제적 대응, 채무 불이행자의 자활 의지 제고 등 세 원칙에 따라 가계부채를 풀어나가되 고금리를 저금리로 돌려주고, 불법추심을 금지하며, 대학생 학자금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도 그래서다. 의지가 강한 만큼 가계부채 문제는 인수위 단계부터 풀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키로 한 것도 그래서다.
성장 잠재력 확보는 교육·과학기술 투자로
하인봉 경북대 교수는 “복지는 당연히 챙겨야 할 시대적 요청이지만 거기에 덧붙여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라고 밝혔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2% 수준으로 추락한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당선인 역시 지난 12월 18일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이명박 정부보다 ‘긴 호흡’을 강조하고 있는 게 박 당선인의 차별화 포인트다. 인위적 단기 부양을 하기보다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투자와 재해·재난에 대비한 도시 안전 인프라, 교육시설 첨단화 등을 통해 경기를 서서히 끌어올릴 구상이다.
과학기술 투자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과감히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 R&D를 201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분리 신설될 ‘미래창조과학부’가 성장잠재력 확보를 위한 기초연구와 응용기술 개발에 막대한 R&D 예산을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더불어 종자나 생명산업 등 농축수산업 분야도 박 당선인이 투자를 약속한 부문이다.
부동산 시장 숨통 틔워줄 가능성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은 “하우스 푸어 급증으로 건설·부동산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선 새 대통령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기 정부는 부동산 거래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세제를 적극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부자감세’라며 강력하게 저항했던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 문제를 내년 상반기에 조속히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르면 올 연말까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인 취득세 감면 관련 세법 개정안을 연장할 수도 있다.
박 당선인은 “경제성장을 위해 중장기 계획도 필요하지만 워낙 경제위기로 어려움이 많아서 단기적인 부동산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철도 부지 위에 인공 대지를 조성해 주변 시세의 절반 값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도 대규모로 들어설 전망이다. 2013년 하반기 착공해 임기 내 서울 및 수도권 50곳에 대학생용 저가 기숙사 2만4000가구 등 20만가구의 행복주택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복지의 핵심은 분배
박 당선인은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노인기초연금으로 재편하고 4대 중증질환 치료비를 국가가 100% 책임지도록 한다는 맞춤형 복지 구상을 밝힌 바 있다. 2014년께 기초연금이 시행되면 현재 월 9만4000원 정도인 기초노령연금은 20만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복지는 출발점의 형평을 제고하는 분배 정책으로 풀어갈 방침이다.
우선 반값등록금은 2014년까지 소득수준별로 차등 지원할 계획이다. 하위 20%에 속하는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하위 40%까지는 등록금의 75%를 감면해준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시행되는 ‘셋째 자녀 대학비용 전액 국가부담’ 정책도 2014년 예산에 반영할 방침이다. 저소득층엔 조제분유·기저귀 등을 제공하는데 약 15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 대책
쌍용차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한 지역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대책이 추진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안정적 생계 보장을 위해 정년을 임금피크제와 연계해 60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청년 해외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해외취업장려금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대통합
박 당선인은 지난 12월 5일 호남 유세 현장에서 “호남의 상처와 눈물을 짊어지고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부마 민주항쟁 진상 규명 및 관련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 보상·예우를 위해 부마민주주의재단 설립을 약속했다. 긴급조치 피해자도 구제할 방침이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선 지자체가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지방분권화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던 지방 산업정책을 앞으로는 중앙정부는 장기적·광역적 관점에서 미래 성장동력산업에 주력하고 지자체가 지역 산업, 지역 인재, 지역 과학기술을 육성하는 투트랙으로 전환할 구상이다. 또 8대 핵심 정책으로 동서통합지대 조성, 스마트한 지방도시 재생사업, 지방거점도시(10+α)의 지역중추도시권 육성, 평화지대 프로젝트, 신공항 건설, 사통팔달 전국 교통망, 낙후지역 휴양·관광벨트 구축, 지역 발전 정책 추진체계 개편을 시행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