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옥수수가 말라갑니다. 지역 곡물시장이 가격 급등으로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비(Rain)예요.”
지난 6월 20일 세계 최대 옥수수 재배지(콘벨트)인 미국 서부 위스콘신주 클린턴타운. 5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이곳을 덮쳤다. 클린턴타운 일대에서 100년간 가족 곡물회사를 운영한 보 드롱 드롱컴퍼니 부사장의 표정은 절박했다.
채 두 달이 가기 전에 드롱 부사장의 우려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상기후로 애그플레이션(곡물가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 충격이 전 세계에 엄습하고 있다.
지금 콘벨트에서는 두 개의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는 가뭄 전쟁이다. 세계 최대 식량공급 기지인 미국에 지독한 가뭄이 덮치며 옥수수 등 주요 곡물가격은 이미 2008년 애그플레이션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8월 9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옥수수 선물가격은 1부셸당 8달러18센트로 올 들어서만 26.6%가 급등했다. 대두와 밀은 16달러55센트, 9달러13센트로 각각 38.1%, 39.9%가 뛰었다. 2008년 곡물쇼크 당시 옥수수와 대두 최고가는 7달러54센트, 16달러58센트를 기록했다.
두 번째 전쟁은 이보다 더 미묘하다. 바로 곡물회사 인수·합병(M&A) 전쟁이다. 그 중심에 글로벌 곡물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곡물메이저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곡물가 급등으로 이미 현지 중소형 곡물회사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곡물 급등에 편승해 비싸게 차익을 남기려는 중소기업들을 곡물메이저가 공격적으로 담고 있다.
글로벌 곡물시장 지각 변동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곡물자급률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가운데 28위에 불과하다. 특히 옥수수와 밀은 자급률이 각각 0.8%에 그쳐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가뭄전쟁은 하반기 국내 물가의 문제지만 곡물메이저 M&A 전쟁은 식량 안보에 영향을 줄 중장기 문제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M&A에 발동 걸린 곡물메이저
지금 콘벨트에서는 곡물시장 활황에 중국 수요 기대감 등이 겹치며 카길(Cargill),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번기(Bunge), 루이스 드레퓌스(LDC) 등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곡물메이저가 중소형 회사들을 쇼핑하고 있다.
세계 최대 곡물공급 창구를 길목에서부터 틀어쥐려는 경쟁이 불붙고 있는 셈이다.
보 드롱 부사장은 “시장 활황이 계속되며 곡물회사 가격 조건이 좋아지자 콘벨트 지역 중소형 곡물사들이 메이저 업체에 잇따라 사업을 매각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