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우리·신한·하나 등 4대 금융지주 가운데 만년 4등이었던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함에 따라 금융지주사의 판도를 흔들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11년 9월 말 현재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자산을 단순히 합하면 290조 7349억원에 이르러, 다른 금융지주사와 덩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게 된다. KB금융을 11조원 가량 앞서고 신한금융에는 1조 5000억원 정도 뒤지는 수준이다. 자산 규모만 따지면 2등과 어깨를 겨루는 3등이라는 얘기다.
영업채널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하나은행 지점 659개에 381개의 외환은행 점포를 더하면 전체 점포수가 1040개로 업계 2위가 된다. 특히 글로벌 사업 부문은 4대 지주 가운데 하나금융이 가장 앞선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나금융이 인수키로 한 외환은행은 국내 은행 중 최다인 27개의 해외 영업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미국 동포 은행도 인수해 해외 영업 기반을 계속 확충할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취약했던 기업금융 부문에서도 날개를 달게 된다. 외환은행은 전통적으로 기업금융에서 강점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개인금융이 강한 하나은행과 기업·글로벌 부문에서 역량을 키운 외환은행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다른 은행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외환은행의 핵심 경쟁력인 글로벌 사업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윤용로 하나금융 글로벌 사업 부문장이 외환은행장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하면 외환은행의 글로벌 역량을 그룹 전체가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하나금융이 당분간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합병하지 않고 ‘더블 뱅크’ 체제로 간다고 해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금융은 계열사 간 기능을 묶어서 사업부문으로 운영하는 매트릭스 조직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며 “매트릭스 조직을 활용할 경우 외환과 하나은행이 별도 은행으로 존속하더라도 기능별 통합 운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외환의 화학적 결합이 관건
그러나 하나금융이 외환은행과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외환은행과 화학적 결합이 필수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에 대해 기득권을 요구할 경우 양측 직원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외환은행 직원들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확정된 이후 영업보다 인수 반대 활동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의 인수가 실제로 이뤄지면 총파업을 단행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돼 외환은행 영업망이 훼손되면 시너지 효과는 줄어들 게 뻔하다.
양측 간 임금 격차 해소도 중요한 갈등요인이다. 인수되는 외환은행의 급여가 하나금융보다 높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금융은 사업부문별로 성과에 따라 급여가 다르다”며 “외환은행도 성과만 높으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만 이해하면 큰 문제는 안 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금융권에서는 과거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합병한 선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신한·조흥은행의 합병 사례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케이스 스터디로 활용할 정도로 모범 사례도 꼽힌다. 인적 융합을 위해 신한·조흥은행 직원 간 스킨십을 끊임없이 유도했고 이를 위해 가동한 태스크포스팀만 900개가 넘었다.
카드·캐피털 등 중복사업 역할 조정도 필요하다. 외환은행과 하나금융 모두 카드 사업을 펼치고 있어, 기능 조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캐피털은 어느 정도 역할 분담의 큰 틀이 정해져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나금융의 캐피털 사업은 벤츠 등 고급 승용차 리스 사업 등 부자 개인 고객을 타깃으로 하고, 외환은행의 캐피털 사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업할 예정이다. 기능 분담을 통해 중복사업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KB·우리, 비은행 부문 강화 나서
하나금융의 도약에 따라 KB금융과 우리금융은 비상이다.
KB금융은 자산 규모에서 4위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으며, 자산규모 1위인 우리금융도 부실자산이 있어 안심할 처지는 전혀 아니다. 이와 관련해 KB금융과 우리금융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은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금융은 올해 3분기 그룹 전체 당기 순이익의 93%가 은행 부문에서 나왔을 정도다. KB금융은 자사주 매각 등으로 수조원 대의 현금을 확보하는 등 M&A를 위한 실탄도 마련했다. 그러나 시장에 매물로 나온 동양생명 등은 지나치게 가격이 높은 만큼 일단은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생보사 가격은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라며 “적당한 가격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우리금융은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승인한다면 동양생명 인수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생각이다. 계열사인 우리아비바생명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자산 건전성도 적극 개선할 계획이다. 다른 금융지주사들은 고정이하여신비율이 1%대에 그치고 있지만, 우리금융은 2%대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 비중이 높은데 부실기업 처리 과정에서 부실 여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새해에는 증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본금을 확충해 부실자산 비율을 떨어뜨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한금융, 리딩뱅크 수성
신한금융은 2010년 경영권 분쟁이 터져 나오기 전만 해도 ‘무결점 금융사’라는 시샘 어린 평가까지 받았다. 그만큼 경쟁력이 강했다는 뜻이다. 정권의 뜻에 따라 최고경영자가 교체되곤 했던 일부 금융지주사와 달리 외풍을 받지 않는 지배구조가 최대 강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0년 경영권 분쟁은 외풍이 아닌 ‘내풍’으로 조직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아직도 신한금융은 4대 지주사 가운데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하나금융이 외환과 합병해 시너지를 창출한다고 해도 당분간 신한금융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한금융은 은행 의존도가 높은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은행·카드·보험 등에서 모두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금융지주는 국내에서 신한금융이 유일하다. 신한은행은 수익 측면에서 리딩뱅크로 꼽히며, 신한카드는 업계 2위를 멀찍이 따돌리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한생명은 금융위기 이후 약진하며 생명보험업계 빅3(삼성·대한·교보)에 이어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신한금융에도 약점은 있다. 2010년 경영권 분쟁 이후 나타나고 있는 조직 불안과 파벌주의가 불안요인이다. 신한금융의 최대 선결 과제로 전문가들이 조직 융화를 꼽는 이유다. 신한금융에는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이 부족하다는 약점도 있다.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 때 진 빚이 아직도 5조 3000억원 정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