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팅 기업도, 소셜미디어 기업도, 플랫폼 기업도,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 기업도 모두 ‘메타버스’ 물결에 올라타려고 하고 있다.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는 생활공간이 3차원 가상세계에서 이뤄지는 세계를 뜻한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이나 모바일 게임상의 세계도 모두 메타버스다. 일부는 줌(Zoom)과 같은 공간도 현실이 아닌 메타버스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메타버스는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SF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에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사용했던 개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3년 린든랩이 개발한 세컨드 라이프라는 게임은 전형적인 메타버스 게임이었다. 사용자들에게 입체 물건을 제작하는 도구를 주었으며 건물, 의상 등을 제작하고 판매도 한다. 미국에서는 일부 기관들이 교육 목적으로 세컨드 라이프를 쓰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를 설립한 필립 로즈데일은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PC에서 모바일로 전환하던 단계에 태동했던 세컨드 라이프는 메타버스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오늘날 불고 있는 메타버스의 열풍은 컴퓨팅·소셜미디어·VR·AR라는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언택트 시대를 맞아 가상현실에 익숙해진 습관이 한몫을 하고 있다. 미래의 메타버스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살펴봤다.
▶메타 “메타버스 중심에 서겠다”
MS “엔터프라이즈 메타버스의 진수”
메타버스에 기업 사활을 건 회사는 옛 페이스북인 메타다. 옛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변경할 정도로 기업의 명운을 걸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앞서 연례 콘퍼런스인 ‘커넥트’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우리는 메타버스를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라고 생각한다”면서 “메타버스가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다음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메타버스는 회사 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모두가 기여해야 하는 더 넓은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이날 메타는 ▲차세대 가상현실(VR) 기기 ‘프로젝트 캠브리아’ 개발 ▲게임사와 협업 사례 ▲가상의 집인 ‘호라이즌 홈’ ▲1억5000만달러 규모 교육 프로그램 ▲증강현실(AR) 플랫폼 스파크AR 등을 줄줄이 발표했다.
구글과 애플이 독점하는 모바일 앱 시장에서 옛 페이스북은 서드파티 앱에 머물렀다. 아무리 사용자가 많더라도 앱의 주류는 구글과 애플이었기 때문이다. 메타가 노리는 것은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할 때, 빅테크의 주류로 메타가 부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메타는 메타버스의 중심에 서고자 가상 회의실인 ‘호라이즌 워크룸’, 가상 집인 ‘호라이즌 홈’, 가상 광장인 ‘호라이즌 월드’를 잇달아 론칭했다. 이날 소개한 영상은 영화와 흡사했다. 가상세계용 안경을 착용하면 홀로그램이 등장하고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휘저으면 동료에게 전화를 걸고 동료가 눈앞에 등장하는 식이다. 페이스북이 모바일 시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면, 호라이즌 시리즈를 메타버스 시대의 SNS로 자리매김시키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와 아바타
또 사용자 확대를 위해 각종 게임을 메타버스로 구현할 계획도 밝혔다.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인 ‘GTA: 산 안드레아스’를 VR용으로 리메이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또 메타는 메타버스의 생태계의 중심에 서고자 한다. 앞서 메타버스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고 유럽에서만 1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리얼리티랩 교육 프로그램에 AR를 추가하기로 했다.
메타의 메타버스 총괄 임원 비샬 샤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의 미래를 낙관했다. 그는 “1000만 대 이상의 가상현실 헤드셋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메타버스의 급격한 성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플랫폼이 어떤 숫자 이상의 사용자들을 갖게 되면 급격하게 콘텐츠 생산자들의 생태계가 늘어나는 순간이 온다”며 “보통 그 매직넘버는 1000만이고, 가상현실의 경우에도 그 숫자 이상이 되면 콘텐츠와 가격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그는 “앞으로 10년 뒤에 10억 명의 사람이 메타버스를 이용하고, 수천만 명의 크리에이터가 메타버스 속에서 수천억달러 규모의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모든 것을 메타버스로 만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엔터프라이즈를 위한 메타버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달 열린 자사 이벤트 ‘이그나이트(Ignite)’에서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바라보고 있는 네 가지 중요한 변화 흐름을 강조했다.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비즈니스가 예전보다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모든 비즈니스가 디지털화될 것이라고 내다보며, 이에 따라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같은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기업 고객들로 하여금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메타의 증강현실 도구 스파크AR
특히 나델라는 “모든 기업이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서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 세상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들을 지원해 주는 영상회의, 협업도구, 클라우드 서비스 등과 같은 차원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협력사인 액센츄어 직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3차원 렌더링 소프트웨어인 메시(Mesh)가 적용된 영상회의 도구인 팀스(Teams)를 활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두 회사는 수년간 ‘알트스페이스VR’라는 3차원 서비스를 활용해 ‘N층(Nth Floor)’이라는 가상공간을 만들어 왔다. 이 공간에서 직원들이 파티를 열고 프리젠테이션 등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액센츄어는 매년 10만 명 이상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의 직무교육에 이 ‘N층’이라는 제품을 사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주요 고객인 전 세계 기업이 메타버스 솔루션을 활용해 생산성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2차원, 3차원 아바타를 활용해 영상회의를 할 수 있는 ‘메시 포 팀스(Mesh for Teams)’ 제품을 내년 상반기에 내놓는다. 또 업무용 캔버스 제품인 루프를 새롭게 출시한다. 웹 브라우저상에 있는 빈 공간인 캔버스에 글, 그림, 그래프, 데이터 등을 채워 협업도구와 퍼블리싱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강력한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 모델인 오픈AI의 GPT-3를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에 연동하기로 했다. GPT-3는 1750억 개의 변수를 학습한 상태이며, 각종 언어 번역뿐만 아니라 스스로 소설을 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서비스의 이름은 ‘애저(Azure) 오픈AI’다.
GPT-3는 운동 경기 해설자의 코멘트를 받아 적은 다음, 그 중요도를 체크한 뒤 요약 정리해서 블로그 형태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엔비디아·유니티 “기술 인프라를 확대하라”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에 집중한다면, 엔비디아는 하드웨어와 인공지능을 통해 메타버스 세상을 펼치려 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달 개발자대회인 GTC에 맞춰 글로벌 기자간담회를 열고 메타버스 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소셜 플랫폼으로 메타버스를 하려는 기업도 있지만, 우리는 기술 인프라 비즈니스를 통해 이를 이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엔비디아가 선보인 기술은 ▲3차원 가상현실을 만들 수 있는 옴니버스 ▲자연 재해와 같은 대규모 물리세계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엔비디아 모듈러스 ▲3차원 아바타 ‘토이-미’ ▲대규모 언어신경망 인공지능 모델 메가트론 등이다.
특히 이날 주목받은 메타버스 기술은 일반 기업들이 손쉽게 메타버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옴니버스’다. 옴니버스는 현실을 컴퓨터 속으로 복제한 3차원 디지털 트윈을 만드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도구인데, 연간 9000달러에 구독할 수 있다. 현재 유럽의 통신장비회사인 에릭슨은 옴니버스를 활용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5세대(5G) 네트워크 중계기 설치를 위한 최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메타버스 확산을 위해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옴니버스 제품은 무료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황 CEO는 “메타버스가 많은 것을 뜻하겠지만 우리가 개발한 옴니버스는 즉시에 사용이 가능하다”면서 “공장, 로봇, 자동차, 창고 등을 디지털 트윈할 수 있고 가상세계를 시뮬레이션하고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엔비디아는 지구와 같은 대규모 세상을 메타버스로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폭풍, 화재, 태풍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 등을 실시간 분석하려면 거대 인공지능이 필요하고, 과학자들이 손쉽게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엔비디아의 모듈러스를 활용하면 과학자들은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같은 물리 법칙을 구현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 아바타
3차원 아바타도 주목을 끌었다. 엔비디아는 이날 젠슨 황 CEO의 모습을 빼닮은 ‘토이-미(Toy-Me)’라는 아바타를 선보였다. 사회자가 ‘단백질은 우리 몸에 어떤 역할을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자동으로 응답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 음성을 30분만 들려주면 그대로 사람의 목소리를 성대모사할 수 있는 인공지능 도구인 ‘리바’도 공개했다. 리바를 기반으로 고객들과 실시간 대화할 수 있는 매장 내 로봇인 프로젝트 ‘토키오’를 추진하고, 기업들은 이를 활용해 드라이브스루나 매장 내 픽업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시간 3D 그래픽 엔진을 만드는 유니티는 메타버스 진입을 위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영화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 등을 만든 세계적 스튜디오 웨타디지털을 16억2500만달러(약 1조9110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유니티는 “이번 인수는 궁극적으로 웨타디지털 고유의 섬세한 시각효과 도구들을 유니티 플랫폼에 통합시켜서 전 세계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들이 차세대 실시간 3D 기술을 통해 보다 창의적으로 메타버스의 미래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웨타디지털은 특수 효과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는데 현재 약 1만5000명 이상이 사용 중이다. 유니티의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인 존 리키텔로는 “유니티와 웨타디지털이 함께 <아바타> <반지의 제왕> <원더우먼> 같이 상징적인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장면을 만들어낸 툴과 기술을 차세대 크리에이터에게 전수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굉장한 실시간 3D 콘텐츠를 제작, 변환, 배포할 수 있는 힘이 되겠다”고 말했다.
로블록스에서 열리는 트웬티원파일럿 콘서트
▶메타버스와 NFT가 결합해 창출하는 디지털 자산
게임업체들은 메타버스와 NFT를 적극 접목하고 있다. 메타버스 시대의 총아로 꼽히는 로블록스로 최근 개발자 콘퍼런스를 통해서 NFT와 연결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로블록스는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서 이 내부에서 아이템을 제작해 팔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수익을 로블록스와 크리에이터가 나눠갖게 된다. 올해 6월에는 로블록스 내에 블록체인 게임 회사 플레이댑의 ‘플레이댑 타운’이 만들어졌는데 사용자가 타 게임에서 획득한 NFT를 이 플레이댑 타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NFT를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가 로블록스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일부 게임 업체들은 처음부터 NFT 접목을 고려해 메타버스를 창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더샌드박스다. 더샌드박스 자체는 마인크래프트와 비슷한 소위 ‘샌드박스’ 게임이다. 특별히 정해진 규칙 없이 플레이어가 자유도를 가지고 게임을 진행해나간다. 다만 게임상에서 팔리는 아이템과 토지 등이 NFT로 발행되고 거래된다.
이러한 메타버스 내 NFT 거래는 디지털 자산을 형성한다. 자산 가치 상승과 하락으로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는 것이다. 아울러 더샌드박스의 경우 메타버스 내 화폐인 샌드를 스테이킹(코인의 유동성을 묶어두는 대신 이자를 받는 행위)할 경우 각종 보상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