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넷플릭스는 3분기 실적 발표 후 경영진이 참석한 설명회 영상을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렸다. 설명회 현장에는 넷플릭스 창업자이자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스펜서 왕 IR 담당 부사장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이들이 입고 있던 의상이다. 모두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입었던 녹색 트레이닝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영상은 처음부터 <오징어 게임>으로 시작해 <오징어 게임>으로 마무리된다.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최고의 콘텐츠를 위한 경쟁은 늘 치열했다”며 “전 세계 제작자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오징어 게임>처럼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 등장인물(정호연)의 SNS 팔로어가 5일 만에 40만 명에서 1500만 명으로 늘었다”며 “넷플릭스는 이렇게 창작자들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민영 아시아 태평양 콘텐츠(인도 제외) 총괄 VP(Vice President)가 이끄는 한국 콘텐츠 팀이 이 드라마를 발굴했다”며 “글로벌 흥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뒤를 잇는 흥행작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넷플릭스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지난 9월 중순 <오징어 게임> 출시 이후 28일간 최소 2분 이상 시청한 가입자가 1억4200만 명에 달한다고 공개했다. 3분기 매출은 74억8300만달러로 시장 기대치(74억8000만달러)에 부합했고, 3분기 주당 영업이익은 3.19달러로 예상치인 2.56달러를 상회했다. <오징어 게임> 효과가 반영된 3분기 유료 회원 증가폭은 440만 명으로 당초 예상치인 350만 명보다 25.7% 많았다. 총 유료 가입자 수는 2억1360만 명으로 늘었다. <오징어 게임> 관련 실적이 본격 반영되는 4분기엔 매출과 순이익이 훨씬 더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4분기 가입자 수 순증감폭을 850만 명으로 예상했다. <오징어 게임>이 견인하고 기존 인기작인 <기묘한 이야기>와 <타이거 킹>의 새로운 시즌이 뒷받침할 거란 자신감이 반영된 기대치다.
로이터통신은 넷플릭스의 실적에 대해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예상보다 많은 신규 고객을 끌어들였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월가의 예상치를 뛰어넘은 가입자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국내 OTT업계 관계자는 “사실 넷플릭스는 지난해엔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누렸지만 백신 접종이 본격화된 올 상반기부터 가입자 증가세가 답보 상태였다”며 “디즈니+와 HBO맥스 등 경쟁자들이 스트리밍 사업을 강화한 것도 가입자 정체의 원인이었는데 그 모든 걸림돌을 <오징어 게임>이 말끔히 해소하며 다시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줬다”고 분석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굿즈 등을 생산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 관련 캐릭터 인형 등을 전 세계 마트에서 판매한다는 방안이다. 최근 월마트와 <오징어 게임> 티셔츠, <기묘한 이야기> 블루투스 플레이어 등을 판매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체육복을 입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
▶한국 상륙하는 디즈니+ 신무기는 역시 한국 콘텐츠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흥행 성공에 국내 OTT 시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시기에 자타공인 넷플릭스의 경쟁자로 손꼽히는 디즈니+가 오는 11월 12일 국내 시장에 공식 진출한다. 업계에선 과연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대항마이자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느냐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디즈니+는 ‘디즈니(Disney)’ ‘픽사(Pixar)’ ‘마블(Marvel)’ ‘스타워즈(Star Wars)’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스타(Star)’ 등 디즈니의 6개 핵심 브랜드가 선보이는 영화와 TV 프로그램 콘텐츠를 제공한다.
지난 10월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콘텐츠 쇼케이스에서 오상호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표는 “디즈니는 지난 30년간 국내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펼치며 한국 소비자에게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전달하고 독창적인 스토리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며 “이번 디즈니+ 출시로 한국 파트너사와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국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이 트리니다드 아태지역 DTC(Direct-to-Consumer) 사업 총괄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주요 비즈니스 전략으로 파트너십과 지역 콘텐츠, 창의성을 위한 목표를 꼽았다. 그는 “한국은 뛰어난 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글로벌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업계를 휩쓸고 있다”며 “디즈니+ 한국 출시를 통해 국내 소비자에겐 최고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를 소개하고, 동시에 한국의 창의적 우수성을 전 세계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즈니+에는 총 1만6000회차 이상의 영화와 TV프로그램이 마련될 예정이다. 스타 브랜드에는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는 물론 ABC, 20세기 텔레비전, 20세기 스튜디오, 서치라이트 픽처스 등이 제작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구독료는 월 9900원 또는 연간 9만9000원으로 책정됐다. 모바일과 태블릿 기기, 스마트 TV 등 다양한 기기로 시청할 수 있고, LG유플러스 IPTV와 모바일, LG 헬로비전 케이블 TV, KT 모바일을 통해서도 즐길 수 있다. 디즈니+는 최대 4개 기기에서 동시 접속이 가능하고 최대 10개의 모바일 기기에서 다운로드를 지원한다.
이날 쇼케이스에선 국내에 선보이는 콘텐츠 라인업도 공개됐다. 20개 이상의 아태지역 신규 콘텐츠 중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가 7개나 돼 K콘텐츠에 대한 인기와 신뢰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특히 SBS의 인기 예능 <런닝맨>의 공식 스핀오프(파생작)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을 비롯해 배우 정해인과 블랙핑크 지수가 호흡을 맞춘 JTBC 멜로 드라마 <설강화>, 블랙핑크의 데뷔 5주년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핑크: 더 무비> 등이 주목받았다.
오리지널 콘텐츠로는 K팝 스타 강다니엘의 드라마 데뷔작인 <너와 나의 경찰수업>, 드라마 <비밀의 숲> 시나리오 작가 이수연의 신작 <그리드>, 키스하면 미래가 보이는 초능력자의 로맨스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 강풀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액션 히어로 스릴러 <무빙>이 공개될 예정이다.
디즈니는 이날 공개된 18개 오리지널 콘텐츠를 포함해 2023년까지 50개 이상의 오리지널 라인업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제시카 캠 엔글 디즈니 아태지역 콘텐츠·개발 총괄은 “디즈니의 콘텐츠 전략은 브랜드 파워, 규모, 우수한 창의성에 대한 목표를 기반으로 아태지역 최고의 스토리텔러들과 협력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아태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사회상을 반영한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전 세계 관객들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너와 나의 경찰수업>,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
▶K콘텐츠 흥행에 디즈니+ 상륙까지
NEW·초록뱀 등 콘텐츠주 강세
국내 콘텐츠 업계는 쇼케이스 내내 디즈니가 강조한 ‘콘텐츠’와 ‘투자’에 집중했다. 지인해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디즈니의 키맨들이 다른 OTT와의 차별점으로 언급한 건 방대한 콘텐츠였다”며 “2019년 11월 공식 론칭한 디즈니+가 단기간에 2억 명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는 버팀목은 콘텐츠 활용”이라고 전했다. 그는 “구체적인 투자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아낌 없는 콘텐츠 투자가 창의성, 독창성, 가성비 등을 겸비한 한국 시장에서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며 콘텐츠 업종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했다. 국내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선 단순히 판매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징어 게임> 이후 흥행력을 인정받은 K콘텐츠에 대한 제작비와 국내 제작사에 보장하는 마진율이 플랫폼 간 경쟁으로 높아질 거란 분석이다. 글로벌 OTT(넷플릭스)가 국내 제작사에 대해 보장하는 마진율은 지금껏 15~20% 수준이었다.
증권사 전문가들이 꼽은 수혜주로는 디즈니+와 이미 두 편의 드라마 제작을 계약해 촬영 중인 NEW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스트에 여러 번 이름을 올린 제이콘텐트리가 있다. 실제로 10월 20일 현재 영화제작사 NEW는 전 거래일보다 15.03% 오른 1만76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중 한때 1만86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NEW는 자회사 스튜디오앤뉴가 제작 중인 드라마 <무빙>과 <너와 나의 경찰수업>이 디즈니+로 방영될 예정이다. 이 외에 쇼박스는 11.71% 오른 7440원, 초록뱀컴퍼니는 12.65% 오른 1425원, 제이콘텐트리는 5.43% 오른 6만7900원에 거래 중이다. 제이콘텐트리는 이날 장중 6만89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그리드>, <블랙핑크: 더 무비>
토종 OTT도 해외 시장 공략 선언
그런가 하면 토종 OTT 티빙도 독립법인 출범 1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양지을·이명한 티빙 공동대표는 지난 10월 18일 온라인으로 ‘티빙 커넥트 2021’ 행사를 열고 오리지널 K콘텐츠를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CJ ENM에서 분할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티빙은 앞으로 일본과 대만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뒤 미국과 유럽 등 10개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명한 대표는 “내년부터 OTT 경쟁이 격화되는 골든타임”이라며 “추가 재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총알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을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기업공개(IPO)가 연말까지 가시적 성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마련된 실탄으로 글로벌 투자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티빙은 해외 시장 진출 전략으로 현재 230여 개 국가에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라인과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1만6000여 개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티빙은 최근 <유미의 세포들> <미드나이트> 등 25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다. 2023년까지 국내에 800만 명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