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중반의 노신사가 느릿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다. 꼿꼿한 걸음걸이에 똑 부러진 발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품이 적어도 10년은 젊어보였다. 반질반질한 피부에 주름이 없어 실례를 무릅쓰고 비결을 물었더니 “그저 화내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동문서답 같은 정답을 내놨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이시형 박사(86)를 만났다. 서울 은평구 한옥마을에 자리한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에서 원장으로 근무하며 매일 건강을 연구하고 명상을 즐기던 그는 지난해 말 연구원을 서울 논현동으로 옮기고 다시금 도심으로 둥지를 옮겼다.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야 건강과 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이사의 이유였다.
그런가하면 최근 출간된 <면역혁명>을 통해선 “방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면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연구원에서의 활동과 책을 통해 전하는 일관된 건강법은 ‘면역(免疫)’. 과연 코로나19 시대에 면역은 어떤 의미일까. 이시형 박사는 “면역력은 인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 여러 기관이 함께 만들어낸 힘”이라고 전제한 뒤, “당신의 면역력은 몇 살이냐”며 생활습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시형 원장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193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다.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 과정,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이자 ‘힐리언스선마을’ 촌장으로 국민건강, 자기계발 분야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밤 11시 전 취침, 새벽 5시 기상, 그게 정상
▶피부가 참 고우십니다. 건강관리는 여전하신지요.
▷특별한 관리가 있나요. 요즘처럼 편한 세상에선 일상생활이 얼마나 편하고 좋습니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40분 동안 운동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40년간 해온 버릇이라 특별히 힘들 건 없어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신데, 이런 생활이 실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겁니까.
▷개개인에 따라 다르니 다 그렇다고 말하긴 힘들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조상 때부터 새벽 5시쯤이면 농사일을 위해 일어나야 했어요. 생리적으로 보면 새벽 5시쯤이 되면 소위 활동성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그건 자고 있어도 시작되는 거예요. 오히려 더 자려고 누워있는 게 스트레스지요. 밤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정상입니다. 인류의 발달역사가 그렇습니다.
▶말씀처럼 일찍 자는 게 쉽지 않은, 좋은 세상인데요.
▷세상에 재미난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긴 한데, 일단 전 술을 먹지 않으니 그런 일이 많진 않습니다. 본래 술이 맞지 않아요. 주종 가리지 않고 딱 1잔입니다. 그 이상이 되면 혈관이 늘어나면서 피부가 간지럽거든요. 못 견디죠. 담배도 젊었을 땐 골초였는데 1966년에 아예 딱 끊었습니다.
▶최근 <면역혁명>을 통해 결국 건강의 척도는 면역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요. 코로나 시대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괴질은 이후에도 닥쳐올 겁니다. 대비를 해야죠.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병도 면역력이 튼튼하면 이겨내기 쉽거든요. 사실 요즘 돌아보면 전부 방역에만 방점을 찍고 있어요. 중요한 건 면역이에요. 면역력만 튼튼하면 방역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면역이 워낙 광범위하니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면역력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해야 합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첫걸음은 섭생
▶방역은 바로 시작할 수 있는데, 면역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늘 신경을 써야죠. 한국 사람들은 예방에 대한 개념에 취약합니다. 이번 팬데믹으로 경제적인 면을 비롯해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한 가지 위안은 예방에 대한 개념, 면역력에 대한 개념이 확실해졌다는 것이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더 넓어지고 있는데, 그렇더라도 잘 극복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국격이 올라간 것도 중요한 사실이지요. 면역력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 환자와 같이 있었어도 어떤 이는 양성이었고 어떤 이는 음성이었어요. 양성 반응을 보인 이 중엔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이도 있고 유명을 달리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면역력 차이예요. 가장 중요한 면역법은 물론 백신이지요. 하지만 백신이 나오기 전까진 생활습관을 통해 면역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면역체계의 70%는 장에서 만들고 30%는 뇌에서 만들거든요. 그러니까 정신건강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라면.
▷가장 중요한 건 먹을거리입니다. 먹어야 하는 것과 피해야 하는 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 걸 행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거죠. 또 하나는 정신건강입니다.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야죠. 당뇨나 고혈압 같은 생활습관병에 걸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면역혁명>에 따로 ‘10가지 생활지침’을 서술한 이유이기도 합니다.(BOX 참조)
▶면역력을 따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겁니까.
▷면역력이란 건 워낙 광범위해서 생체반응의 대부분이 관계가 있습니다. 자고 먹고 운동하는 모든 게 관련이 있어요. 그렇더라도 결과적으로 백혈구가 면역의 주역입니다. 가장 중요할 역할을 하죠. 백혈구 분획검사를 하면 전체적인 윤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일 간단하고 중요한 검사죠. 당연히 피를 맑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연의학의 치유력도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사실 친숙한 분야는 아닙니다.
▷자연의학은 쉽게 말하면 전통의학입니다. 한의학을 자연의학이라고 하기엔 적확하진 않지만 서양의학에 비하면 자연의학에 가깝죠. 인간에겐 자연치유력이 있습니다. 이게 약해지면 병에 걸리는 겁니다. 면역도 자연면역력이 있어요. 엄마에게서 타고날 때 얻게 되는 유전적인 것이지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야 스트레스 해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의학이라면.
▷가령 서양의 사상은 체온관리예요. 36.5도부터 37.1도가 건강 체온입니다. 한국인 중엔 이걸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스트레스가 많거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관이 좁아지면서 혈액순환이 안됩니다. 저체온, 저산소증으로 이어지니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요즘 날도 추운데 아침 출근길에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는 이들이 있어요. 아주 못마땅합니다. 마트에서 물 한 병을 사려면 꼭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하지요. 따뜻한 장에 영하의 차가운 물을 부으면 탈이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체온이 1도 떨어지면 면역력은 30% 감소합니다. 손자들이 덥다고 이불 차내 깔고 자면 할머니들이 배는 꼭 덮어주지요.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전통의학의 슬기죠. 서양의학은 사상 자체가 우리와 다른 게 몸에 이상이 있으면 원인을 무조건 없애고 봅니다. 가령 열이 나면 당장 해열제를 쓰고 설사가 나면 지사제를 써서 없애지요. 서양사상은 대결사상이에요. 대치요법이라고도 합니다. 자연요법은 이열치열, 열을 열로 다스립니다. 열나면 뜨뜻한 방에서 뜨신 국물 마시고 한숨 자면 낫습니다. 이게 동치의학이지요. 같이 가는 거예요. 그런 면에선 동서양이 굉장히 다릅니다.
▶요즘은 분말로 된 유산균을 먹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그건 서양의 사상에 가까운 것 아닙니까.
▷장을 세균청이라고 하는데, 여러 세균이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몸에 이익이 되는 유익균, 유해균, 또 중간균이 있지요. 이 중간균은 유익균이 많으면 유익균이 되고 나쁜 균이 많으면 나쁜 균이 됩니다. 보통은 유익균이 20%, 유해균이 10%, 중간균이 70%를 차지하는데, 이게 가장 건강한 장의 상태죠. 찬 음식이 들어가거나 장에 이상이 생기면 유익균이 죽는데 이 유익균을 살리는 유산균을 먹는 건 나쁠 게 없어요.
▶스트레스 해소에 명상을 해법으로 제시하셨는데요.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후대상피질이란 곳이 있는데, 여긴 개인의 욕심센터예요. 이게 자극이 되면 욕심이 생깁니다. 그 아래 쾌락중추가 있는데 자극이 이 쾌락중추로 내려가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욕심센터가 자극돼서 욕심이 채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걸 도파민 상태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명상을 하면 정말 고맙게도 욕심센터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욕심이 줄어들지요. 그럼 이타적이 됩니다. 일례로 직장인이라면 옆자리 동료를 라이벌이 아니라 동료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의 잘나가는 회사들이 명상을 독려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명상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무념무상인가요.
▷아무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사람이 어떻게 생각이 없을 수 있겠어요. 다만 명상은 생각이 떠올라도 누르려 하지 말고 굳이 생각하려 하지도 말고 그저 강물이 흘러가듯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가만히 두면 탈감정화가 됩니다. 감정이 많이 붙은 기억일수록 쉽게 잊히지 않아요. 명상을 하는 이유는 그 기억의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개념이죠. 언젠가 씻겨 내려가야 합니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가장 큰 변화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비대면 상황이 크게 높아지겠지요. 집단성향이 강한 한국인에겐 적응하기 쉽지 않겠지만 반면 일련의 상황으로 국격이 높아진 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국격이란 건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또 방역과 함께 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로 방역과 함께 면역을 배우러 올지도 모를 일이지요.
▶버킷리스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홍천에 있는 힐리언스 선마을은 자연의학 개념으로 만든 예방센터예요. 앞으로 이곳을 면역증진센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충주에 있는 메디올가와 함께 유기농 식단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면역증진센터를 더 늘려 건강한 한국을 알리고 싶어요. 한국에 가면 즐거운 K팝과 영화, 엔터테인먼트, 미용과 의료, 건강과 젊음을 다 만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선마을에서 열흘이나 보름 동안 명상과 건강식을 경험하고 가면 부쩍 건강해진 몸을 느낄 수 있는, 세계 부호들을 상대하는 이른바 회춘센터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시형 박사의 ‘코로나 시대’ 10가지 면역 지침
당장 이것부터 바꿔라!
1. 벤나 면역력 주스 한 잔
·당근과 사과, 각 2개를 갈아 넣어 만든 주스
2. 절제된 식사
·한국 전통식 위주 식단·소식, 유기농 재료로 천천히·즐겁게 먹기, 면역성 식물 먹기
3. 건강한 장 만들기
·장내 유익균 늘리는 곡물류, 채소류, 콩류, 과일 섭취
·김치, 요거트, 청국장 등 발효식품 섭취
·방부제, 화학첨가물, 농약과 비료생산물 섭취 피하기
4. 건강 체온 36.5~37도 유지
·따뜻한 물로 수분 섭취, 취침 2시간 전 40도 물에 20분간 입욕, 지나친 냉방 자제
5. 숙면 취하기
·밤 11시 전 잠자리 들기·낮잠 또는 토막잠 즐기기·아침 6시 전 기상
6. 운동
·가볍게
·아침 햇빛 산책 20분
·서서 집안일 하기, 계단 이용하기 등 NEAT(비운동성 활동) 실천
7. 스트레스 관리
·긍정적 태도와 삶의 의미 찾기, 자율신경의 균형 위해 화내지 않기, 밝고 긍정적인 마음 갖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