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임기 동안 3년여에 걸쳐 추진해온 회계 개혁이 시장에 안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내놓은 일성이다. 2016년 한국공인회계사회장에 취임한 그는 신외감법을 통과시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용어 설명 참조)와 표준감사시간제 등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혁에 매진해왔다.
최중경 회장은 회계 개혁에 대해 “우리 국가 사회의 회계 정보를 보다 정확하고 투명하게 함으로써 이해관계인을 보호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도의 성공여부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6월 임기가 만료되는 최 회장을 매경LUXMEN에서 만났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분식 회계 사태가 터지고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그동안 신외감법 시행 등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내셨습니다.
▷회계 정보라는 게 개별 기업 차원에선 미시적인 내용이지만 이게 다 더해지면 거시 경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정보가 됩니다.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은 회계 정보를 보고 각종 투자 결정을 내리죠. 결국 자원 배분 나침반 역할을 회계 정보가 하는 셈인데, 그동안 국내 기업의 회계 정보의 질이 낮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한 조사에서 대상국가 63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고, 지금도 끝에서 두 번째예요. 회계 투명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회계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받는 회사가 ‘갑’의 입장에서 회계 법인을 셀프 선임하다보니 투명성이 낮고 감사를 제대로 못해 왔던 게 현실입니다. 이런 일들이 40년 가까이 쌓이다 보니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거죠. 결국 회계 정보 질이 떨어진 결과로 이어졌는데 신외감법을 통해 기업들의 인식을 높이고, 회계사들이 제대로 일할 여건은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이는 회계 투명성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 선진국에서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제도 등을 호평하고 있습니다. 잘 정착되면 회계 투명성이 높아지고 국가 경제 차원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높아질 겁니다. 결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겠죠.
평소 최 회장은 회계 투명성만 높아도 국내 성장률 2%P는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논리는 이렇다. 중국이 6% 정도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미국도 2%인데 한국이 2% 성장에 머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4% 성장은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수치인데, 회계 투명성 확보가 일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처음으로 시행됐고, 직권 지정제도 확대됐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주신다면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한국 지배구조 현실에 필요한 제도입니다. 한국은 대주주가 이사회를 지배하면서 CEO를 맡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일반 주주를 위해 독립적으로 회계 감독을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제3자가 지정하는 감사인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당연히 감사인들이 회사 눈치를 덜 보게 돼 독립성 확보의 의미가 큽니다. 재무상태가 나쁘다든지, 계속 적자를 기록했거나, 분식 회계 등 문제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직권지정제 사유도 늘렸습니다. 취약한 기업 감사엔 독립성이 더 필요하죠.
▶기업들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나 표준감사시간제도 등 회계 개혁을 부담스러워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동안 소수의 불투명한 기업 때문에 전반적인 회계 투명성이 낮게 평가됐던 게 사실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감사시간이 늘어날 수 있지만, 회계가 투명해졌을 때 오는 효용이 더 클 수 있습니다. 회계 투명성이 높아지면 기업도 좋아지고, 비즈니스 기회가 커집니다. 회계가 불투명한 기업이 개혁 과정을 거쳐 투명해지면 기업에도, 투자자에게도, 국가에도 이익이 됩니다.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해외에서 홀대받는 일도 줄어들죠. 크게 생각하면 비용이 올라가는 것보다 효용이 더 커요. 비용이 아닌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투자인 셈입니다.
▶일각에선 일부 대형 회계 법인들만 혜택을 본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감사인이 바뀌면 전문성 부족으로 감사 품질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는데요.
▷회계 법인의 규모나 상황에 따라 개혁의 효과를 체감하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당장 중소 규모 이하의 회계 감사인들은 비상장 기업을 상대하다 보니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에 있는 회계사들도 신외감법으로 인해 기업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제도가 바뀌면서 기업들도 정책 의도를 살피고 회계 감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거죠. 다행스럽게도 비상장 법인들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중소법인들은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형 회계 법인들은 비상장 법인 감사를 줄여 나가야 할 거예요. 결국 중소법인들의 일감이 늘어날 것인데,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죠. 단계적 낙수효과로 대형은 상장, 중형이 하는 비상장 기업을 감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나갈 겁니다.
최 회장은 회계 제도 개혁으로 젊은 회계사들에게 기회가 늘어났다고 자평한다. 젊은 회계사들에 대한 처우가 좋아지면서 회계 법인에 남는 경우가 늘어나고, 전문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회계사 이직률이 낮아졌다고 최 회장은 설명한다.
시니어 회계사들의 입장에서도 젊은 회계사들이 전문성이 쌓이면서 전체적인 감사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효과를 본다고 말한다. 최 회장은 “젊은 회계사들이 긍지를 가지고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면서 “국가적으로도 회계 역량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회계 투명성 지원센터’를 새로 오픈하셨습니다. 그 취지와 기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인다고 하지만 중소 회계 법인이나 중소기업들은 제도 개혁을 쫓아가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미국도 회계 투명성 재단이 있어요. 과거 엔론의 분식 회계 사태 이후 생겨났는데 회계사협회와는 독립된 재단으로 운영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는 재정 문제가 있어서 회계사회에서 운영하지만 독립된 재단으로 가야할 걸로 봅니다. 그래야 회계 산업이 균질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대형 법인들의 업무 역량은 빨리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소형 법인들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지요.
▶갑질 회계사를 영구 퇴출하겠다는 지침을 내놓으셨는데요. 지나치게 강경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회계사는 일종의 비즈니스 닥터라고 생각합니다. 서비스 제공자가 갑질을 하면 안 되죠. 제가 볼 때는 전문자격사로서 자질이 없는 것입니다. 퇴출시켜야 99% 선량한 회계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어요. 감사를 받는 기업들을 위해서 필요한 제도입니다. 회계 감사인들이 존중을 받아야 하지만 갑질을 하면 안 되죠.
▶평소 공공부문의 회계 투명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정부투자기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공익법인, 대학뿐 아니라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정부 기관, 지방자치단체까지 공익성이 있는 분야는 훨씬 공정하고 투명하게 자금을 써야 하고 더 독립적인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3자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감사공영제’가 도입돼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받는 자가 감사인을 선임하는 ‘셀프 선임’은 감사를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엉터리 감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계부정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서서히 인식도 바뀌고 있어요. 상속·증여세 법의 규제를 받는 공익법인은 지정제도에 들어와 있어요. 3000㎡ 이상의 매장들도 대상이에요. 공공 부분에 회계 투명성이 높아질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산자부 장관을 역임하셨습니다. 현 정부 경제정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신다면요.
▷시장에 충실해야 합니다. 현재는 시장을 통제하려는 규제에 의존하고 있어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죠. 주52시간제만 해도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노사 간 합의를 통해 더 이상 일할 수 있는 길은 열어줘야죠.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하고 정당한 보상이 전제된다면 인정해줘야 합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초시장적 규제도 문제입니다. 솔직히 수요-공급이 미스 매치되는 상황에서 시장을 억누르려고만 하니 가격은 더 오르게 되죠. 강남 아파트들은 판매자가 우위에 있는 ‘셀러 마켓’입니다. 강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지위의 지표가 돼버린 상황에서 공급만 줄이니 가격으로 전가되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초시장적 규제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복지정책입니다. 복지정책을 늘려나가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비례해야죠. 재정건전성을 무시한 복지 증가는 국가 부채만 늘려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복지 정책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한 때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거기에 맞게 생활수준이 올라가야하고, 거기에 미달하는 사람들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일은 국가의 기본 책무예요. 하지만 재정건전성이라는 전제 조건을 늘 염두에 둬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경제는 경제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현 정부나 청와대에 진정한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최상의 전문가를 찾아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소주성’은 마차가 말 앞에 서 있는 정책입니다. 경제 흐름을 몰라서 나오는 주장이죠. 이 세 개만 잘하면 국민들이 편안해집니다.
▶이제 임기가 5달 정도 남으셨습니다.
▷앞으로는 경제보다는 국가의 지적 인프라를 넓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기업 재무담당 임원(CFO)을 아웃소싱하는 제도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CFO는 기업에 꼭 필요하지만 풀타임으로 고용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죠. 이를 기업 사정에 밝은 회계사들이 아웃소싱한다면 어떨까요. 회계가들은 본업이 있고 기업을 잘 알아요. 이들이 기업의 현금흐름을 살펴주고, 자본 조달 등 주요한 업무가 있을 때 도와준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기업입장에선 비용을 줄이고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고문과 달리 법적 책임도 지는 거죠.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일하시는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신외감법이 공포될 때 국회 본회의장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회계 투명성 확보에 큰 획을 긋는 개혁이라고 자부합니다. 회계 투명성이 높아지면 자원배분의 효율성 높아집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을 수도 있게 되죠.
회계 정보가 정확해지면 국가 전체의 거시경제 정보도 명확해지고, 자원배분 효율성도 좋아집니다. 궁극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라는 캐치프레이이즈도 이 같은 의미에서 늘 강조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