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7) 이하경 롯데손해보험 대체투자부문장| 국제 통화질서에 모순 쌓이며 달러화 위기 도래
김유진 기자
입력 : 2019.12.03 11:17:57
수정 : 2019.12.03 11:18:59
국제 통화질서에 모순 쌓이며 달러화 위기 도래
묻지마 투자보단 ‘지정학적 리스크’ 먼저 살펴야
약력
이화여대 정치외교/경영학
MIT Sloan 경영대학원 MBA
대우증권, 현대투자신탁증권(현 한화증권), 삼성자산운용 등
<달러 없는 세계>.
20여 년간 금융 투자 업계에 몸담아온 현직 여성 임원인 이하경 롯데손해보험 대체투자부문장이 최근 출간한 책이다. 제목과 저자의 이력만 얼핏 들으면 최근 시중에서 많이 다루는 달러의 운명 혹은 투자 지침서 관련 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달러 없는 세계>는 기존에 시중에 나왔던 비슷한 책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기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대목이기도 하다. 바로 지정학적 관점에서 돈의 흐름을 분석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부제는 ‘21세기 지정학으로 본 화폐경제’다.
책은 글로벌 금융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고, 현 상황은 어떤지, 또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세계 각지의 주요 정치·경제적 사건을 따라가며 분석 전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돈이 지정학적 요충지를 따라 밀접하게 연관돼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책이 나온 현 시점 세계의 지정학적 요충지들이 다 불안한 모습에 빠져 있다. 이들이 흔들리면 돈의 흐름도 달라지게 된다. 실제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인 홍콩이 내전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이 계속 발을 빼려는 중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탈석유를 기치로 국가를 변모시키려 하는 것도 글로벌 돈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동북아의 지정학 요충지 한반도, 세계 주요 무역 항로인 남중국해 등은 군사적 긴장감이 가시지 않으면서 군비경쟁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를 더 긴장시키는 것은 국제 통화질서의 근간인 달러 위기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부문장은 “지정학적 변동성이 커진 것과 맞물려 현재 달러 중심의 화폐 경제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른 징후가 곳곳에서 관찰된다”면서 “브렌트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신용화폐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립한 이후로 견고하게만 여겨졌던 화폐경제 질서가 바뀌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지정학적 변동성과 달러의 위기가 별 상관없어 보일 수 있지만 세계사 속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때 큰 위기가 닥쳐왔다”면서 “달러의 위기 때마다 전쟁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현재는 물리적 충돌은 아니지만 미중 간 통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해법인데, 이 부문장은 “솔직히 세계가 격랑 속에 빠진 후 달러를 구출해낼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지 그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면서 “이는 정책 결정자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섣부른 예측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항상 세계는 위기 때마다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해왔고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달러의 모순이 쌓인 것은 신용(대출, 빚)을 바탕으로 한 경제 시스템 속에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국가 간, 세대 간에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새 해법을 찾는 기류가 이미 나타나고 있고, 이를 투자 측면에서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책 제목 ‘달러 없는 세계’가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달러는 현 세계 경제 체제의 근간입니다. 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주도한 미국이 개도국들을 이 시스템에 참여하도록 설득한 논리는 ‘규칙에 근거한 세계질서’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먼저 그 규칙을 흔들고 있습니다. ‘달러 없는 세계’란 좁게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통화 질서가, 더 넓게는 규칙에 근거한 세계 질서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실제 그런 조짐이 있나요?
▷국제 통화 질서의 측면에서 보자면, 책에도 썼지만 현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체제는 모순이 많이 쌓여있는 상태입니다. 언제까지 달러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체제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용화폐 달러가 기축통화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87년 하루 만에 미 증시가 22% 추락했던 블랙먼데이 이후입니다. 이 일로 휘청거리던 세계경제는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이 유동성 공급을 천명한 후 거짓말처럼 안정됐습니다. 시장이 신용화폐 달러의 국제적 가치를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달러가 많이 풀려도 금값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금값이 요동쳤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달러 표시 국제 금 시세는 1980년대 이후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안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경제 위기설이 불거지고 달러와 금값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왜 상황이 이렇게 변했습니까?
▷달러 경제시스템은 신용에 기반을 둔 경제 질서입니다. 신용은 빚, 즉 부채입니다. 이전까지는 실물이라는 금에 기반해 화폐를 발행하는 질서였는데 현 시스템 하에서는 부채에 기반해서 화폐를 발행한다는 얘기입니다. 신용이 창출된다는 것은 채무자가 생김과 동시에 채권자도 생기게 되는 겁니다. 처음 시스템이 돌아갈 때는 선진국이 채권자고 개도국이 채무자였습니다. 이 같은 구조를 짠 미국, 서유럽 등 선진국들의 생각대로 신용이 창출되고 전파되고 또 이익으로 회수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개도국들이 성장을 지속할 때까지는 선진국들은 투자에 대한 이익을 얻고 개도국은 채무를 갚으면서 소비도 할 수 있는 윈-윈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신용의 분배 문제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 세대는 채권자, 다음 세대는 채무자인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을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국제 채무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국별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는 달러 경제 시스템이 추구했던 목표가 달성됐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돈이 지정학을 쫓아다니는 것입니까?
▷과거에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돈이 따라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산업화와 세계화 이후 경제규모가 커진 상황에서는 양상이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돈이 지정학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정학적 목표인 중국의 패권 추구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중국 자본과 시장을 중심에 두고 돈이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중국의 지정학적 목표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책에서 QUAD(4자 안보대화)와 상하이협력기구을 주목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세계가 지정학적 고려에 따라 움직이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해서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QUAD는 일본, 인도, 호주, 미국이 참여한 4자 안보대화인데 기본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구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는 구소련 붕괴로 촉발된 국경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결성된 것인데,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5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인도, 파키스탄까지 참여해 있습니다. QUAD와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죠. 인도의 경우 두 곳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데, 인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슈화되고 있진 않지만 곧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돈의 흐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아무래도 중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중국으로 들어가려는 대기 자금 수요가 매우 많습니다.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결정될 거라 보입니다. 저희도 아직 중국에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는데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아세안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세계의 시선이 아세안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장성도 좋고 중국에 비해 투자 환경도 유연하고 지정학적으로도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은 자신들이 능동적으로 지정학적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아세안은 그럴 힘이 부족합니다.
▶채권 금리 역전 현상 등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시기는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 쌓인 부실이 한 번은 터질 것으로 봅니다. 기본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고 이로 인한 거품이 심하게 쌓여 있습니다. 금값이 치솟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자금 상당수가 해외 부동산 등에 많이 투자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솔직히 걱정스럽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자금들이 대체투자로 많이 쏠리고 있고, 묻지마 투자 조짐도 보입니다. 개인들은 이 기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트레이더들은 이럴 때 포지션이 없는 것도 포지션이라는 말을 하는데, 투자를 위한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채권금리 역전 현상을 금융위기의 바로미터로 보는 것에는 견해를 달리합니다. 달러의 과잉 공급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연기금 보험사가 넘쳐나고 이들이 굴리는 퇴직연금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장기 채권에 투자를 합니다. 국내법상 저희도 장기채권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전과 다른 점입니다.
▶책에서 잠깐 비트코인을 언급하셨는데.
▷투자측면에서 볼 때 달러의 대안으로 금이 계속 부각되듯이 비트코인도 그런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기존 금융시스템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가 달러의 신용창출 시스템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위원회라는 중앙은행이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용은 중앙은행이 발권을 하면 은행, 금융기관, 고객의 순서로 전파되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중앙은행이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중앙화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습니다. 만일 성공을 한다면 진정한 패러다임의 변화인 셈이죠.
▶지금이 두 자산에 투자할 적기인가요?
▷연초 회사 투자 포트폴리오에 금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달러의 과잉 유동성에 대한 대안으로도 괜찮았지만 기술적으로도 투자하기에 좋은 시점에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경우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주변부에 속해 항상 힘든 것 같습니다.
미국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를 종종 린치핀이라고 부릅니다. 수레바퀴를 중심축에 고정하는 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작지만 중요한 부품이란 뜻인데,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주변부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지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구한말 이래로 강대국들에게 끼어 있어 선택을 강요받는 수동적 입장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지정학적 가치를 능동적인 입장에서 활용해야 새로운 국제질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보입니다. 최근의 정세만 놓고 보면 북한이 이 점을 더 잘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국력을 감안할 때 린치핀에 맞는 외교적 역량은 충분히 있다고 보는데 좀 안타깝습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둘러싼 우리의 모습을 보면 린치핀이란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는지 의문입니다.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QUAD와 상하이협력기구의 경쟁 구도만 보더라도 우리의 스탠스에 따라 우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뛸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보이니까요. 이제 우리나라의 국력이 구한말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비트코인이 자유무역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무역의 단계에서 중개인을 두는 이유는 거래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하에서는 이 같은 중개인이 필요 없으니 자유무역이 더 활성화될 여지가 충분할 것입니다. 국경 장벽이 사라지고, 환 헤지도 필요 없고, 송금도 빠르고, 장부에 바로 기입이 되는 블록체인의 활용은 여러모로 글로벌 무역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품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문제는 블록체인과 상관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부문은 방안을 도출해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만의 투자 철학이 있으신가요?
▷손실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으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철칙입니다.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리스크에 따른 손실을 먼저 예측하고, 시나리오별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파악해야 투자를 실행할 조건이 갖춰진 셈입니다. 때로는 리스크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는 투자를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