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은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당시 결승전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를 만나 10 대 14로 패색이 짙었던 상황에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되뇌임 끝에 기적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불가능을 즐겨라’라는 이번 Y포럼 주제와 일치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인대 파열 딛고 국가대표 재기
“올림픽 뛰기 1년 전이었어요. 제가 세계랭킹 3위, 최연소 펜싱 국가대표였고, 각종 대회서 우승해 좋은 기량을 가졌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입었어요. 제가 처음 맞이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의사들은 다 ‘올림픽 힘들다. 선수 생명 보장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세상 다 잃은 느낌이었죠.”
박상영은 펜싱밖에 몰랐다. 그런데 펜싱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물밖에 안 났다.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박상영 이제 끝났다. 복귀해도 힘들다”였다고 한다. 당시 박상영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밥도 먹기 싫고, 사람도 만나기 싫고, 재활도 하기 싫었단다. 그런데 그렇게 울면서 폐인 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걱정거리로 살다가, 펜싱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면 꿈에서 펜싱이 나왔다. 그는 그 펜싱하는 꿈속에서 또 1등을 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일어나 보면 걷지도 못하고, 깁스를 하고 있었던 거다. 박상영은 “현실과 꿈이 너무 다르니까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제가 리우에 도전하게 된 것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준비를 했죠. 재활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고, 그랬더니 1년 6개월짜리 부상이 7개월로 단축됐어요.”
박상영은 복귀전에서는 예선 탈락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인 올림픽에 한발 나아갔다는 생각에 이미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능력이 올라가고, 각종 시합에서 메달을 따며 다시 리우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선발되기 전까진 선발되면 모든 걱정이 끝난 줄 알았다. 정작 걱정은 선발된 후 시작됐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메달이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면 어떡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박상영은 “잠을 잘 때도 그 생각 때문에 2~3시간밖에 못 잤고, 운동할 때도 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상영아, 좋은 결과가 있으려면 좋은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너는 좋은 과정을 걷지 못하고 있어.” 박상영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서 하는 생각들이 막상 좋은 결과를 거두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순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잘 땐 잠자고, 운동할 땐 운동하고. 박상영은 “단순하게 생각하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생각만큼 경기력이 나왔고, 올림픽이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즐거웠던 거다.
▶‘할 수 있다’로 13 대 9 뒤집은 기적의 승리
그는 올림픽에 나가 32강을 이겼다. 16강, 8강, 4강에서도 이겼다. 그러다 결승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헝가리의 게자 임레라는 선수인데 선수랭킹 3위에, 박상영이 두 살 때 올림픽 메달을 땄던 전설적인 선수였다. 최연소 선수 대 최고령 선수의 대결이기도 했다. 박상영은 당시 경기 초반 13 대 9로 지고 있었다. 그러다 펜싱 도중 ‘이겨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림픽 은메달이면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지자는 생각이요.” 그런데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박상영은 여유 있어졌고, 상대방은 서두르게 됐다. 결국 14:14가 됐다. 그러자 상대편이 헤드를 벗었는데,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였고 박상영은 기회를 붙잡아 다시 맞서 싸웠다.
박상영은 펜싱을 할 말한 가정 환경이 아니었다. 펜싱은 이른바 부자들이 하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상영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시작한 펜싱에 재미를 붙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냉담하셨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가면 힘들어 파김치가 됐는데, 그 힘든 걸 왜 하냐는 식의 눈빛을 보내셨다고 한다. 그냥 공부나 하라는 뜻이었지만 박상영은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어김없이 학교 훈련장으로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상영아, 네가 그렇게 원하면 펜싱해라. 대신 우리집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지원해 주기는 힘드니 이해해 달라”고 미안해하셨다. 그때 지원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냥 펜싱을 하게 해주기만 하면 됐다. 결국 박상영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분야에 도전해 역경을 딛고 1인자가 됐다. 비결은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과정을 즐기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