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레이 美사모펀드 블랙스톤 부동산부문 대표 | ‘美금리인상·中경기불안’은 새로운 투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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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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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7 16:32:19
총 운용자산(AUM) 406조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 사모펀드(Private Equity) 블랙스톤은 일찌감치 부동산 등 대체투자 부문으로 눈을 돌려 차별화하고 있다. 1991년부터 시작한 블랙스톤의 부동산 부문은 운용자산만 112조원 규모로 전 세계 사모 부동산펀드 중 가장 크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운용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져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5년간 연평균 수익률 17%를 기록한 덕분이다. 블랙스톤의 부동산사업을 일군 핵심 공신이 바로 존 그레이 글로벌 부동산 부분 대표(46)다.
▶연봉 2250억원 세계 부동산 투자 업계 큰손
그레이 대표가 세계 부동산 투자 업계 ‘큰손’으로 유명세를 떨친 지 오래지만, 지난해 그가 연봉 2250억원(약 2억500만달러)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월가에서 화제가 됐다. 블랙스톤 이사회 멤버인 그레이 대표는 창업자 스티븐 슈워츠만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지분이 많다. 슈워츠만 회장이 이미 2년여 전 후계자로 그를 낙점하며 후계 구도가 불투명한 다른 사모펀드와 또 차별화했다.
지난해 말 미국 금리인상 이후 최근 유가 하락과 중국 경제 성장률 하락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전용기로 한국을 전격 방문한 그레이 대표가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부동산시장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존 그레이 대표는 “미국 금리 상승과 중국 경기 불확실성이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특히 미국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최근 견조한 미국 경제와 부동산 수급 여건을 반영할 때 하락 가능성은 낮고 완만한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미국 금리상승 우려는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 새 국내 부동산 투자로는 적정 수익률 확보가 어려워지자 미국과 영국, 독일 등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발 빠르게 돌파구 마련에 나서 왔다.
그레이 대표는 “매월 들어오는 임대료와 수급에 따라 달라지는 현금흐름이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채권 투자와는 성격이 확실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그동안 미국 부동산 가치는 금리 인상보다는 거시경제에 따른 영향을 받아왔다”며 “1994년과 2004년 미국 정부가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한 시기에 미국 부동산 가격은 동반 상승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 등 시장 개선에 대한 확신을 반영하는 것인데 과거 미국 부동산시장을 보면 이 같은 방향성이 금리 상승에서 오는 비용 부담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부동산 가격 강세를 자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레이 대표는 부동산 자산가치를 전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거시경제 여건과 함께 수요와 공급 요인을 꼽았다. 글로벌 부동산시장을 총괄해 세계 전역 출장이 잦은 그가 바쁜 일정을 쪼개서 꼭 챙기는 일정은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크레인이 돌아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특히 영국 런던처럼 인재를 더 많이 끌어모으는 도시일수록 부동산 자산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런던에 살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지만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런던 시 자체가 웨스트엔드뿐 아니라 템스 강 남쪽, 킹스크로스 북쪽, 스트랫포드 동쪽 등으로 확장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美 재도시화 추세 주택투자 유망
그레이 대표는 오히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10~20년 기간을 두고 부동산에 투자하기 좋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등에서 금융위기 이후 건설 활동이 위축되며 공급이 부족하고 대출 제약도 있어 부동산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므로 투자가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대출이 증가세라고는 하지만 CMBS(상업용 모기지담보증권) 발행은 여전히 2007년의 절반에 불과하고, 건설 활동도 금융위기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구체적으로 그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도심으로 몰리는 ‘재도시화(re-urbanization)’ 추세에 맞춰 주택(residential) 부문 투자가 유망하다”고 말했다.
1인 가구는 물론 가족단위(single and multi-family) 주택 모두 투자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상업용 시설 투자에 비해 주택 투자는 경기 흐름을 덜 타는 안정적 투자로 간주된다.
실제로 블랙스톤은 1만1200가구 규모의 임대형 공공주택 전환 단지인 뉴욕 이스트빌리지 스타이브샌트타운을 작년 말 캐나다 연기금과 함께 6조원에 인수해 주목받았다. 그곳은 대규모 주택단지로 금융위기 때 큰 손실을 입었던 사례로 유명하다. 파산 관제인을 통해 이전 투자자가 2006년 매입한 가격보다 10억달러가량 낮게 매입했고 5000가구는 20년간 시장보다 낮은 임대가격을 유지하기로 입주민과 합의해 투자를 성사시켰다. 차가운 자본주의가 주택 복지 정책에 참여한 셈이다. 그레이 대표는 미국 외 지역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남유럽 지역 스페인 주택 부문과 범유럽 물류 시설 투자를 유망하게 보고, 아시아에서는 인도 오피스와 일본 아파트 투자에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은 장기 경제 성장 문제가, 중국은 단기 경제 성장에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바닥 국면으로 거론되는 브라질 부동산시장에서도 고수익을 잡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블랙스톤, 한국 호텔 쇼핑몰 관심
블랙스톤은 한국 부동산시장도 주시해 왔다. 그레이 대표가 1년에 1~2차례 방한할 때마다 투자 여건을 점검하고 주요 물건도 확인했다. 블랙스톤은 사모펀드 부문이 한국 부동산에 투자한 적은 있으나 부동산 부문이 투자한 적은 아직 없다.
그레이 대표는 “블랙스톤은 아시아 주요 시장으로서 한국 부동산시장을 주시하고 있고, 앞으로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준비한다”며 “특히 중국 관광객 유입으로 호텔과 쇼핑몰 등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전자상거래 시장 발전에 따라 수요가 늘어날 물류 시설 투자도 관심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기관들과 경쟁이 심하고 공실률이 높으면서, 대형 기관들을 대신해 투자하기엔 규모가 작은 편이라는 점 때문에 좀 더 신중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투자회사(REITs)가 활발해지면서 유동성을 창출하고 자본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부동산 시장 전반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긍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부동산 업계에서 블랙스톤은 막강한 자금력과 추진력으로 왕성한 식욕을 발휘해 ‘진공청소기’란 별칭까지 붙었다.
지난해 5월 25조원 규모 GE부동산 부문을 웰스파고와 공동 인수한 것도 금융위기 이후 최대 부동산 거래로 꼽힌다. 고급 부동산 물건을 대거 확보하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또 제약·바이오 생명과학기업과 연구소 부동산 임대에 특화된 부동산 신탁 업체 바이오메드 리얼티 트러스트(BioMed Realty Trust)를 약 9조원에 인수하는 계약도 올 1월 마무리 지었다.
블랙스톤은 고수익(opportunistic)·안정자산(core plus) 부동산과 중순위 대출(debt) 등 세 가지 전략에 기반한 부동산펀드 15개를 출시·운용해 왔다. ‘Buy it, Fix it & Sell it(사고, 고쳐, 판다)’라는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하고 적극 관리해 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전형적인 사모펀드 방식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블랙스톤은 힐튼월드와이드 등 호텔 체인을 비롯해 대형 오피스, 리테일, 물류창고 등에 투자해 왔고, 미국에서 가장 큰 429만㎡ 이상의 오피스와 1100만㎡ 이상의 상업용 부동산을 보유했다. 최근 글로벌 호텔그룹의 대형 인수합병(M&A)과 에어비앤비(AirBnB)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 등 역동적 여건에 대해서도 그는 여전히 호텔업에 낙관적이었다.
그레이 대표는 “호텔업은 다양한 고객에게 다양한 가격대로 봉사하는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한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에어비앤비 고객은 주로 레저 취향이 강하고 파리처럼 호텔 비용이 비싼 지역에서 성공하는 편으로 분석된다. 일부 타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풀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고객들이 있는 한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블랙스톤의 성장을 위해 기술과 인프라스트럭처, 신흥시장(emerging markets) 분야로 확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적극 뛰어들지는 않았다. 존 그레이 대표는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 우등생 친목 단체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에도 뽑혔다. 1992년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블랙스톤에 입사해 지난 24년간 부동산 부문을 비롯한 대체투자 영역을 키웠다. 블랙스톤이 투자한 힐튼월드와이드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힐튼월드와이드는 힐튼호텔은 물론 월도프 아스토리아, 콘래드 등 호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레이 대표는 “우리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누려왔던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책무”라며 다양한 기부활동을 벌이고 있다. 뉴욕의 할렘빌리지아카데미 이사회 의장으로서 저소득층 교육 문제 해결에 적극적일 뿐 아니라 대학 동창인 부인 마인디 그레이와 함께 300억원을 기부해 모교 의대에 희귀암 연구를 위한 연구소(Basser Center for BRCA)를 설립했다. 처형이 난소암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거액을 기부한 것이다.
바쁜 출장 일정 중간에도 딸들을 위한 약속도 빼먹지 않는 ‘딸바보’기도 하다.
[이한나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사진 이승환 매일경제 사진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6호(2016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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