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율촌은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법률회사다. 우창록 대표가 1997년 6명의 변호사와 함께 출발한 율촌은 18년이 지난 지금 변호사 및 전문가를 포함 600여 명을 거느린 굴지의 대형 로펌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경쟁사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늘린 데 반해 율촌은 자체 성장만으로 커 왔다는 점이 괄목할 만하다. 최근 율촌은 우수한 인재를 통한 최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말고도 사회 공헌에 앞장서는 기업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체계적인 사회 공헌을 위해 설립한 공익사단법인 온율은 출범 1년을 맞이했고, 올해 율촌은 장애인고용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사회 공헌을 통해 로펌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 우창록 대표를 만났다.
최근 율촌은 서울대와 손잡고 신흥국의 엘리트 육성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율촌의 공익사단법인인 온율과 서울대 국제대학원이 공동 설립한 ‘율촌-GSIS 센터’가 그것이다. 로펌과 대학이 함께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능력 있는 젊은 인재를 돕기에 나섰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러한 시도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의 일환이다. 즉, 종전의 CSR은 기업의 사회 공헌을 이익 창출과 무관한 활동으로 보는 데 반해 CSV는 사회 공헌을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로 보는 관점이다. 율촌이 신흥국 학생들과 같이 협력해 그들을 지역 전문가로 키우면 결국 로펌과 신흥국이 동반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우창록 대표는 “우리나라 원로 경제 관료들이 공동집필한 <코리아 미러클2:도전과 비상> 책을 보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나오게 된 데는 선진국에서 배우고 온 유학파 젊은이들의 열정이 있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이 경제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 우리도 작은 나라 후진국이라는 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동남아·아프리카·중남미 등 국가들을 도울 때가 됐습니다. 그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면 우리를 미국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결국 한국 국가 위상이 높아져 큰 틀에서 나라 발전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에 전도유망한 신흥국 엘리트를 지원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겁니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 대표는 세계 국가 간 경쟁 구도에서 한국 위상을 높여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그는 “언젠가 베트남에서 장학금을 받아 한국으로 법률교육과정을 배우기 위해 온 학생을 인턴으로 고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장학금 받아 한국까지 왔으니 너는 베트남에서 일류이지 않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자기는 삼류라는 겁니다. 일류는 미국으로 가고, 이류는 일본으로, 삼류는 한국으로 온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현실을 인식했고 우리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각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일류급 인재들을 한국에 오고 싶게 만들고 그들을 지한파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이번 GSIS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욱 확대돼 한국 위상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고 전했다.
출범 때부터 공익활동 실천
우창록 대표는 1997년 율촌을 설립할 때부터 공익활동을 통해 사회환원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지금껏 실천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좋은 학교를 나와 변호사가 되고 회사를 20년 넘게 이끌어오면서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제가 받은 것들을 어려운 이웃에게 되돌려주고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고 우 대표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생계를 위해 공장에 들어가는 게 고작 꿈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서 농촌으로 교환근무를 온 선생님을 5학년 때 담임으로 만났다. 공부를 잘하는 어린 우창록을 유심히 살펴보던 담임은 그에게 중학교 갈 것을 권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에게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졸업생 중 5명도 채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던 학교였으나, 우창록과 친구들이 졸업하는 해엔 30명도 넘게 중학교에 들어갔다.
우 대표는 “한 사람의 리더십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비전을 바꿀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율촌을 만들 때 좋은 일에 에너지 20%를 쓰자고 생각한 겁니다”고 했다. 이를 실천하려면 파트너 변호사들의 공감이 필요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공감이 필요한 일이지 강요할 성질은 아니었다. 저마다 공익활동에 대한 생각과 방향, 희망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금전이 아니더라도 재능이나 시간 등으로 각자 희망하는 영역에서 기부토록 한 것. 그는 “사회공헌은 각자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걸 가지고 하면 됩니다. 다만 사진을 찍고 주변에 홍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변호사들은 가진 재능 중 남들보다 잘하는 게 법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니 그걸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눠주면 좋겠지요. 남을 돕는 데 동참한다는 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겁니다”고 말했다.
공익사단법인 온율은 그동안 율촌에서 해온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율촌이 법률가들 집단이니 그들이 가진 재능으로 우리 사회 제도개선에 기여하자는 게 취지다.
예를 들어 성년후견제도 절차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나이가 많은 성인인데 정신장애가 있어 자기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다. 씨드스쿨도 율촌에서 오래전부터 진행하다가 온율이 맡아서 하고 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중학생들에게 대학생 멘토를 붙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대학생들과 멘토를 맺은 학생들에게 인생을 포기할 게 아니라 너희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많고 너희들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실제 자살을 시도하려던 학생이 씨드스쿨 선생님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꾼 사례도 있습니다”고 전했다.
성공비결은 협력 바탕의 아메바식 경영
율촌은 2년 후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자체 성장만으로 국내 굴지의 5대 로펌으로 성장했다. 그 성공 비결에 대해 우 대표는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열심히 해온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답했다. 서울대 법대와 사법시험 합격, 김앤장 변호사라는 엘리트코스를 밟던 그는 독립을 결심하면서 아내에게 “여섯 달은 생활비 못 가져다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기분은 눈보라 치는 광야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그때 “잘못되면 서울역에서 리어카를 끌어도 둘이 끌면 되니 괜찮다”는 아내의 말이 천군만마와 같았다. 처음에는 우창록 법률사무소로 혼자 시작했지만 마음에 맞는 후배와 동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율촌법무법인으로 다시 출발했다. 우 대표는 조세법이라는 확실한 전문분야가 있었고 함께한 윤세리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초창기 율촌이 기둥을 세우는 데 조세·공정거래법 분야는 톡톡히 한몫했다.
1997년 당시는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의 틀이 완전히 바뀌는 시점이었다. 법률 수요도 그 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라 전체로는 위기였지만 신생 로펌에게는 기회였다.
그는 “역사가 길고 짧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법률회사나 모두가 처음 해보는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누가 열심히 창의적으로 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라지는 때였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나라가 어려운 상황이니 기업들이 축소지향적 계획을 세웠는데 실제 당해보니 반대로 확대지향형으로 해야 한 거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회사를 열고 얼마 안 됐을 때 미국 최대 금융회사인 골드만 삭스에서 연락이 왔다. 워낙 일이 많아 기존 로펌만으로는 안 되니까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던 것. 처음 맡았던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계속해서 일감이 쏟아졌고 다른 금융기관들도 율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회사가 다른 로펌과 차별화되는 건 협업이 잘된다는 점입니다. 칸막이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 전문분야들이 이합집산하면서 자유자재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아메바식 경영이라고들 하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율촌의 장점은 “변호사들이 일을 할 때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분위기를 이끌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법률시장은 대형 로펌들 변호사 수가 적정 규모를 넘어서면서 수임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한 때다. 우 대표는 “우리 변호사들에게 고객이 프레임을 짜놓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경쟁입찰이지만 그보다는 미리 선행적으로 고객이 어떤 니즈가 있는지 파악해서 경쟁입찰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분야를 찾자고 강조합니다”고 전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는 고령화 사회로 인한 보건의료 분야와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산업 분야다.
해외 진출로 신시장 개척 나서
율촌은 올해 3월 다섯 번째 해외사무소를 러시아 모스크바에 열었다. 현재 율촌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 관련 법률업무 중 4분의 3을 전담하고 있으면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에서 피해를 입은 한국 기업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다수의 현지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회사가 해외 진출로 신시장 개척에 나선 건 2008년 베트남이 시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당시 베트남의 법사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몇 명이 한국 경제발전을 시찰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그들을 환영하는 기관이 많지 않았고 지인 부탁으로 율촌 우 대표가 그들을 만나게 됐다. 법률이 경제발전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브리핑과 함께 식사를 대접했다. 일행 중에 속해 있던 전직 베트남 법무장관이 그에게 베트남 진출을 권유했다. 그때를 계기로 베트남에 진출했고 이후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해외 시장업무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후 러시아를 비롯 중앙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이어가고 있다. 우 대표는 “앞으로 율촌이 가야 할 길은 ‘한국에 거점을 둔 글로벌 로펌’입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키워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길을 닦고 궁극적으로 선진국까지 진출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고 한다. 그는 이어 “성공한 글로벌 로펌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재를 확보하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시켜야겠지요. 아직까지는 공부할 영역도 많고 검증할 영역이 많습니다”고 덧붙였다.
우창록 대표는 골프 마니아다.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골프를 치다보면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거나 순수 스포츠로만 보는 시각이 안타까워 지난해부터 한국골프산업연합회 회장직도 수락해 맡고 있다. 그는 “미국 LPGA를 보면 한국 여자 골퍼들이 상위권을 제패하고 있는데도 우리 선수들 재능으로 돈 버는 건 외국이라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골프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벤트 산업이면서 부수적으로 제조업까지 따라붙는 중요한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