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시작해 여행, 엔터테인먼트까지 마케팅과 관련된 것이라면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지난 10월 8일 역삼동에서 만난 정재훈 ITL (Imperial Tobacco Limited)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 그는 1990년 거산정치문화연구소에서 입사한 후 국회의원 선거와 메이크업학원, 극장, 식당, 연기학원, 의류판매업, 유학대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군을 소화했다. 이처럼 여러 직종의 일을 하면서도 그는 ‘마케팅’이라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고객과 만나 일을 하다 보니 발을 들였던 분야가 많았던 것뿐이지, 언제나 하는 일은 마케팅이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정재훈 대표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00년대 초 반일 감정으로 어려움을 겪던 JTI ‘마일드세븐’이 그의 손을 거쳐 성장가도를 달렸고, 수입담배 1위인 ‘던힐’ 역시 그를 통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지만 ‘마케팅’에만 집중하며 굴지의 다국적 기업의 한국 대표까지 오른 정재훈 대표. 언제나 열정적인 그는 도전적인 삶을 꿈꾼다.
마케팅에 집중하다
“1990년에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곧바로 한 의류업체에 입사지원을 했죠. 합격은 했지만, 출근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학시절 알게 됐던 지인들을 통해 선거업체인 ‘거삼정치문화연구소’로 출근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근 6개월 만에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창업에 나섰습니다.”
국내 수입담배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정 대표는 사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82년 성균관대에 입학한 후 2년 만에 유학을 떠나 뉴저지의 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어 버지니아 주의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공공정책에 대한 행정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학창시절만 놓고 보면 담배회사 대표인 게 어색할 정도다.
정치에 관심이 많다보니 사회 초년생일 무렵에는 정치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다. 첫 직장이었던 거산정치문화연구소가 폐업을 한 후에 창업한 회사 역시 선거대행 업체였다. 당시 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자신이 맡은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선거 후 대금 회수에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자금압박이 심해지면서 그는 다양한 업종으로 눈을 돌렸다. 앞서 밝힌 메이크업학원부터, 연기학원과 의류판매업, 이벤트 등 정치와 관련 없는 일들을 이때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마케팅 활동을 대행하던 중 1995년 담배회사와 인연이 닿았다. 바로 국내 시장에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BTI의 ‘켄트’란 담배였다. 이 담배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활동을 하면서 2000년에 담배회사에 입사했다.
“담배회사와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래도 제가 맡은 브랜드가 성장하는 걸 보면 보람을 느껴서 열심히 일했었죠. 본사에서도 그런 점을 인정받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담배와의 인연이 시작된 겁니다.”
수입담배업계 ‘미다스의 손’
켄트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수입담배업종에 종사하게 된 그는 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면서 승승장구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담당하는 브랜드마다 판매량이 올랐습니다. 담배는 기호품인 관계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점유율이 늘어나는 것은 상당한 어려운데, 묘하게도 제가 맡았던 마일드세븐과 던힐 등이 때마침 점유율이 늘어난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JTI의 마일드세븐이다. 2005년 그는 BTI를 떠나 JTI로 회사를 옮겼는데, 이곳에서 마일드세븐의 마케팅 담당을 맡았다. 당시 마일드세븐은 반일감정으로 인해 점유율(약 2.8%)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초기에 호텔-레스토랑-카페의 소비자프로모션을 담당했던 그는 1년 뒤 영업 및 마케팅 기획을 맡으면서 ‘블루마케팅’을 선보였다.
마일드세븐이 일본제품임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공법이었다. 그 결과 2010년 JTI를 그만둘 무렵, 마일드세븐의 점유율은 7.9%까지 늘어났다. “모든 소비자들이 마일드세븐이 일본제품이란 걸 알고 있는데, 당시 회사는 ‘일본담배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곳에 역량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일본제품임을 당당히 밝히고, 고급화에 집중했습니다. 좋은 제품이란 점을 알리면 소비자들은 반드시 그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JTI에서 활약을 눈여겨봤던 ITL는 곧바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세계 4위의 담배회사인 ITL는 당시 KT&G를 통해 국내에 ‘다비도프’란 담배를 내놨는데, 낮은 점유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다비도프는 독일에서는 굉장히 좋고 럭셔리한 브랜드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건 당연했죠. 하지만 최근 케이스 교체를 비롯해 다양한 에디션 등을 내놓으면서 판매량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국내 담배소비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고급담배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다비도프의 장점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다비도프는 현재 국내 담배시장에서 약 0.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어려운 일은 하는 과정이 즐겁다
“지나온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남들이 어려워하고 안 된다고 하는 일을 주로 해온 것 같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맡아 가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마케팅에 집중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재 맡고 있는 다비도프에 대해서도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불안 요소 때문에 일이 더욱 재미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안 될 것 같은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불가능의 매력이 바로 마케팅의 힘이란 설명이다.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30대 중반 이후의 고객들은 쉽게 제품을 바꾸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KT&G와의 협력을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단 3년 안에 1% 점유율을 내는 게 저희의 1차 목표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어려움을 극복하며 내공을 쌓아온 정재훈 대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그의 열정이 국내 담배업계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정재훈 ITL 대표
1964년생인 그는 1982년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에 입학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뉴저지 페어레이디킨슨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 버지니아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석사를 받은 후 국내에 돌아왔다. 1991년 선거대행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던 중 2000년 BTI 마케팅 매니저로 입사했고, 여행업체인 굿모닝컨벡스를 거쳐 2005년 JTI의 마일드세븐 마케팅 담당자가 됐다. 이후 JTI 마케팅 총괄을 거쳐 2011년 ITL 마케팅 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초 대표이사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