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지만 악수를 나눌 땐 눈이 반짝였다. 마치 당신이 누군지 내가 꼭 기억하고 있겠다는 듯 인상이 강렬했다. 정작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굳은살 배긴 장인의 손은 온대간대 없었다. 대신 두툼하고 보드라운 손을 내민 은발의 노신사는 “봉주류 무슈”라며 첫 인사를 건넸다.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로저드뷔(RO GER DUBUIS)’의 설립자 로저드뷔가 방한했다. 1995년 자신의 이름과 동명의 워치메이커를 설립한 그는 20여 년이란 짧은 기간에 브랜드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100년 역사가 즐비한 스위스 시계업계에서 이례적인 성공 사례다. 그만큼 로저드뷔란 이름이 갖는 의미가 특별했다. 브랜드 설립 이전에 ‘파텍필립’에서 14년간 컴플리케이션 시계 개발을 이끌던 그는 당시에도 존경받는 마스터 워치메이커였다.
그런 그가 ‘프랭크 뮬러’로 유명세를 탄 디자이너 카를로스 디아스와 의기투합해 브랜드를 내놓자 한동안 업계의 화두는 당연히 ‘로저드뷔’였다. 특히 파격에 가까운 디자인과 최고급 시계제조 기술이 결합된 라 모네가스크(La Monegasque), 엑스칼리버(Excalibur), 펄션(Pulsion), 벨벳(Velvet) 등의 컬렉션은 빠른 시간에 컬렉터들의 머스트해브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야구선수 추신수의 시계로 유명세를 탄 로저드뷔의 컬렉션은 엔트리급이 2000만원대, 이번 호 본지 화보에 등장한 ‘엑스칼리버 45㎜ 스켈레톤 더블 플라잉 투르비옹’의 경우 무려 3억9000만원에 이르는 초고가 시계다.
“어떤 분들은 로저드뷔의 시계가 왜 그리 비싸냐고 묻습니다. 그럼 일단 공방에 와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딱 한 가지 부품만 직접 조립해보라고 권합니다. 그런 분들 중에 똑같은 질문을 하신 분들은 아직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우린 하나의 시계를 만들기 위해 짧게는 1000시간, 길게는 2000시간 이상 공을 들이거든요.”
내 성공의 열쇠는 애정, 열정, 엄격함, 탁월함
1938년 스위스 꼬르쉬에르(Corsier) 지역의 브베(Vevey)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엔 구두제조에 관심이 있었다.
“전 좀 몽상가 같은 소년이었는데, 마을에 통제조인 한 분, 대장장이 한 분, 구두 장인 두 분이 계셨어요. 그 중에 구두 장인 한 분에게 구두창 가는 법을 배웠는데, 어느 날 마을 교회에서 종치는 모습을 보곤 시계에 빠졌습니다. 교회 계단에서 시동장치가 작동해 ‘찰카닥’ 소리를 내던 그때를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뒤로 16세가 되던 해에 스위스의 시계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시계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시계와 인연을 맺은 후 수많은 우여곡절이 그의 인생을 채워갔다. 퍼페추얼 캘린더, 라트라팡트 크로노그래프, 미닛 리피터 등 이름도 생소한 기능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며 기술을 습득했다. 그의 이름이 업계에 각인될 무렵 파텍필립 경영진이 경매에 나설 역사적인 시계의 복원을 제안할 만큼 신뢰를 얻기도 했다.
“시계는 제 인생의 전부죠. 전 대부분의 시간을 시계 만드는 데 할애합니다. 제겐 이게 전부여서 절대 멈출 수가 없어요. 사실 나이가 들면서 손으로 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데, 요즘은 후배들에게 제 지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게 즐거움이죠.”
로저드뷔의 시계에 대한 열정은 브랜드 설립 당시 58세였던 그의 나이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남들은 은퇴를 고민할 시기에 40여 년 시계 인생을 건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커리어란 인생의 경험이 쌓여 완성되는 것이지요. 적지 않은 나이라 결정이 쉽진 않았지만 그동안 축적한 경험이라면 해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1995년 5월 19일에 회사를 정식 등록했는데, 그 날짜는 제 결혼기념일이기도 합니다.(웃음) 물론 운영의 원칙이 있었어요. 모든 무브먼트는 자체 제작하고 제네바 실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 원칙은 확신에 가까운 신념이었습니다. 저는 이 신념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원칙으로 내세운 제네바 실 인증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로저드뷔의 상징이 됐다. 전 세계에서 한 해 생산되는 시계는 총 12억 개, 스위스 내에서만 2300만 개가 생산되는데 제네바 실 인증을 받는 건 단 3만 개뿐이다. 그 3만 개 중 20%가 로저드뷔의 시계다.
“브랜드 초창기부터 전 제품에 100% 품질 인증을 받았습니다. 시계에 대한 애정, 열정, 엄격한 과정과 탁월한 기술이 로저드뷔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늘 선구자가 되고 싶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로저드뷔는 브랜드를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경영 구조가 필요했다. 2008년 시계, 보석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에 합류, 이듬해 한국에 진출하며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섰다.
“초창기부터 우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고자 했습니다. 고전적인 시계 제조 방식에 갇혀있기보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창조하고자 했지요. 우리만의 코드를 만들어서 새로운 상징이 되고자 했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방향을 논하며 로저드뷔는 스위스의 시계제조 전통을 설명했다. 전통보다 진보를 추구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자 지금까지 출시된 컬렉션을 예로 들며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전통적으로 훌륭한 시계 제조 방식을 존중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전통이 브랜드의 앞길을 방해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디자인 시계 분야에서 선구적인 제품이 된 심퍼티(Sympathie)나 머치모어(MuchMore) 컬렉션처럼 다소 미래주의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데 도움이 됐거든요. 우린 늘 열차의 맨 끝 차량에서 도약하기보다 기관차를 이끄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모든 성과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절대 해선 안 될 일 중 하나가 과거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나가야죠. 그런 태도나 마음가짐이 진정한 행복이고 자부심입니다. 전 77세가 된 지금도 그러한 계획과 소망 속에 살고 있어요. 지금도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기대와 성과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감동합니다.”
열정에 바친 인생, 자랑스럽다
로저드뷔가 가장 아낀다고 밝힌 오마주 컬렉션
과연 현존하는 시계의 전설은 어떤 시계를 착용하고 있을까. 슬쩍 그의 손목을 바라보자 시선이 느껴졌는지 손수 시계를 풀어 앞에 내놨다.
지난 봄 SIHH(스위스국제고급시계박람회)에 처음 공개됐던 오마주 컬렉션이었다. 그를 오마주한 이 제품은 브랜드를 설립하고 처음 출시됐던 컬렉션을 복원한 새로운 모델이다.
“컬렉션의 출발점은 장인들에 대한 존경이었습니다. 전 이 시계를 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발견한 신호로 받아들였어요. 전 브랜드의 정신을 구현하는 사람입니다. 제겐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에요. 최근에 당신은 성공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굉장히 힘들더군요.(웃음)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열정에 따라 인생을 바친 것에 대해선 자랑스럽다는 겁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제네바 실 인증이란
로저드뷔나 바쉐론 콘스탄틴 등 하이엔드급 시계는 부품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제작한 후 마지막으로 ‘제네바 실(Geneve Seal·Geneva Hallmark)’ 인증을 받는다. 최정상급 브랜드만 받을 수 있다는 이 인증은 이후 마케팅에 활용되며 제품의 공신력을 뒷받침한다. 프랑스어로 ‘프엥송 드 제네브(Poincon de Geneve)’라 불리기도 하는데, 1886년 이른바 짝퉁을 예방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처음 시행됐다. 워치메이커라 해서 모두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매뉴팩처가 제네바 칸톤 지역에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조립된 무브먼트가 대상이다. 스위스 정부에서 임명한 7명의 위원들이 4년 임기로 인증을 책임지는데, 모델에 따라 800개 이상의 부품이 승인과정을 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