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뉴스를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작성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글을 쓰는 기자부터 당장 실업자가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자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신문사에서 지불하는 인건비가 없어지면 신문 자체가 거의 공짜로 변할 것이니 말이다. (이미 공짜 신문들도 많다.)
상상력을 확장해 보자.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 휴대폰, 냉장고 따위의 모든 제품들이 로봇과 3D 프린터에 의해 제조된다면, 그리고 그 결과 제품의 가격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진다면? ‘구글’을 공짜로 사용하는 것처럼 제품들도 거의 무료로 쓰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현대를 이끄는 사상가 10명 중 한 사람으로 꼽은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가 상상하는 미래다. 그는 이런 시대가 온다면 기존의 국제경제 질서와 거시경제 논리는 모두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지식포럼 둘째 날인 10월 16일 송의영 서강대 교수와 대담을 하면서다.
그가 경고하는 전 세계 거시경제의 위기는 아시아를 겨냥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값싼 노동력 투입을 통해 제조한 저렴한 제품들을 수출해 경제를 성장시켰던 국가들은 퇴조하게 될 것”이라고 코웬 교수는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과연 현실이 될 것인가?
1994년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아시아 신화의 기적’(The Myth of Asia’s Miracle)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크루그먼 교수를 일약 스타로 만든 논문이다. 3년 뒤에 진짜로 아시아에 거대한 경제위기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의 논문 내용은 아시아가 그 이전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 증대 때문이었다는 지적이었다. 기술발전이나 인적 자본 향상 등에 따른 ‘총요소 생산성’의 증가는 아시아 성장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이전 소련이나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노동 투입 증가에 따라 경제가 성장했지만 두 지역은 결국 경제가 고꾸라졌다. 아시아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게 크루그먼의 1994년 경고였다. 3년 뒤에 현실이 됐다.
코웬 교수가 제시한 논리는 크루그먼이 20년 전 냈던 경고장의 ‘업그레이드’ 판이다. 코웬 교수는 ‘거대한 침체’(The Great Stagnation)라는 책에서 지난 20년 동안 기술진보는 없었고 이게 2008년의 금융위기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이 위기에 빠진 것은 총요소 생산성 하락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25년간 미국경제 좋을 것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이제 입장이 달라졌다. 총요소 생산성은 금융위기 이후 바닥을 찍고 상승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는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과 온라인 교육 서비스의 발달,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에너지 가격 하락, 의료보험비 상승 억제 등으로 앞으로 25년간 미국의 경제가 상당히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가 “왜 입장이 갑자기 바뀌었나”라고 묻자 그는 “지난 20년 동안은 미국의 총요소 생산성이 침체를 겪었지만 향후 20년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라고 답했다.
미국이 이처럼 좋아지는 이유는 좋은 교육을 받아서 창의력이 충만한 인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소프트파워’(교육, 언론 등을 통한 권력)가 경제에 반영될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심지어는 한국 같은 국가들은 반복적 교육에 익숙한, 창의적이지 않은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다. 이런 나라들은 가라앉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그는 그 원인을 ‘공급구조의 해체’(Unpacking of Supply Chain)에서 찾았다. 이런 일이 진행된다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는 앞으로 영원히 한국처럼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우려했다. 코웬 교수는 “가나, 나이지리아, 베트남 등은 절대 한국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며 “그런 나라들이 어떻게 공장에 로봇을 도입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송 교수가 “그럼 그 나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자 “다른 나라들과 협력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낙수효과’를 통한 기술이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흥국에 더 이상 기적 같은 성장은 없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각이었다. 코웬 교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다르다”라며 “중국은 부동산 버블, 섀도우 뱅킹, 부정부패, 공산당의 관료주의 등이 잠복해 있는데다 앞서 말한 도전(기술진보에 따른 전 세계 산업지도의 개편)도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정신 차려야 한다고 했다. “삼성 휴대폰을 분해해 봐라. 95% 이상의 부품이 해외 값싼 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그의 이런 논리는 신흥국이 더 이상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과가 된다.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신흥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는 또 다른 원인으로 금융시스템을 제시했다. 교육시스템이 선진화돼 있다면 노동생산성이 늘어날 테지만, 금융시스템이 앞서나간 나라는 자본생산성이 높다. 벤처캐피탈처럼 좋은 기술을 잘 알아보는 금융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국가 전체적인 자본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과 금융을 발전시켜서 자본·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해법이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신흥국이 교육과 금융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한국에 대한 조언이었다.
송의영 교수는 “창의력은 신의 선물일 수도 있겠다”고 하자 그는 “한국은 이미 ‘강남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창의력은 한국인 내에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이런 것이 창의적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을 정하는 순간 창의력은 없어진다”며 한국의 경직적 교육문화가 창의성을 가로막고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한국에도 창조경제가 중요한 화두”라고 소개했고 “그러나 그 자극을 어떻게 줘야 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수백 가지의 과제들 때문에 중장기 과제인 창조경제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코웬 교수는 이에 대해 “내가 느끼기에는 창조경제는 정부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불평등 극단적으로 심화
코웬 교수는 글로벌 불평등 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의 소득 불평등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내가 쓴 책 ‘평균은 끝났다’(Average is Over)는 창의력이 뛰어난 상위 10% 정도의 사람만이 높은 임금을 받을 것이고 나머지는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극단적 불평등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과 기계가 단순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이라면 로봇기술을 새롭게 개발하는 창의적 인재 밖에 큰돈을 만지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코웬 교수는 창의력과 설득력, 그리고 브랜딩 능력이 있는 사람들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다. 세계지식포럼 행사장에서 몇몇 석학들에게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저임금에 의존한 중국 수출 모델은 5~6년 내에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도 “중장기적으로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올해 6월 NYT에 기고한 글에서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보다 훨씬 치명적”이라며 “2000년대 즈음에는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와 불평등이 문제였지만 그 이후에는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의 소득분배가 문제가 됐다”고 적었다. 그는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를 봤더니 이런 현상이 미국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말 이런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는 현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음울한 과학자(Dismal Scientist)인 경제학자들의 상상에 불과한 얘기일까? 분명한 것은 지금 ‘창조경제’가 싹을 틔우지 않는다면 이 시나리오에 한국이 대응할 길은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