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 중식당 도림(桃林)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서 변화를 지휘한 이는 중식 장인으로 이름난 여경옥 셰프. 다수의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과 친숙해진 그를 롯데호텔이 중식부문 총괄임원으로 영입하자 업계에선 “스타 셰프 영입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는 사건”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 셰프는 1984년 신라호텔에 입사해 24년간 중식당 팔선에 근무한 레스토랑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중식당 ‘루이’를 열기 위해 신라호텔을 떠났던 그가 다시 호텔로 돌아온 것도 관심사지만, 임원급 대우를 받으며 경쟁사의 중식부문을 총괄한다는 것도 화제였다. 그간 롯데호텔의 전 체인에서 조리부문 임원은 이병우 총주방장이 유일했기 때문에 호텔 내부에서도 파격적인 인사란 분위기다.
한국인의 입맛 맞는 광동요리로 새롭게
롯데호텔 서울 본관 37층 도림에서 만난 여경옥 셰프는 “왜 경쟁사로 이동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신라에 있으면서도 도림은 몇 번 들렀었죠. 그때마다 굉장히 좋은 입지인지라 이곳에서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사업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총지배인께서 도림을 활성화시켰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시더군요. 부임한 지 3개월쯤 됐는데, 이제 출근시간에 적응했습니다.(웃음) 지금은 도림에 올인하려고 합니다.”
여 셰프는 부임 이후 도림의 전체적인 메뉴를 조정했다. 레시피도 모두 바꿔 나갔다. 이전의 도림이 서양식에 가까웠다면 이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광동요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역시 재료죠. 중국요리는 재료가 70%입니다. 최대한 직접 구매하는 게 원칙인데, 예를 들어 국내산 전복은 완도에서 직접 구매합니다. 같은 재료라도 단계를 거칠수록 신선도나 가격이 달라지거든요. 직접 나서면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 가격은 낮아지고 질은 높아집니다.”
그의 이러한 전략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도림의 변화가 발 없는 말이 된 건 이미 오래. 여경옥이란 이름을 보고 도림을 찾는 이들 중엔 사인을 청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그렇다면 여 셰프가 추천하는 9월의 요리는 무엇일까.
“비즈니스 미팅이나 가족 모임을 하는 분들 중에 불도장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날씨가 덥고 습하다보니 보양식이 어울리는 시기죠. 감히 자신 있게 권해드립니다.”
롯데호텔서울 중식당의 불도장
늦깎이 공부, 올해 박사 학위 받아
TV 출연과 레스토랑 루이 운영 외에도 여 셰프는 롯데호텔 부임 전 혜전대 호텔조리학과 겸임교수, 경기대 외식조리 외래교수 등 후학 양성에도 열심이었다.
16살 나이에 세 살 위 형인 여경래 셰프(그랜드 앰배서더호텔 서울 중식당 홍보각 운영)의 권유로 요리계에 입문한 그는 당시 중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다. 형도 마찬가지. 하지만 형제는 용감했다. 여 셰프는 중국 동방 미식 세계요리대회 개인 금상, 중국 CCTV요리대회 금상 등 중국과 대만,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요리대회에서 단골 수상할 만큼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불혹을 넘긴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 여 셰프는 올해 경기대에서 외식조리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에 대한 갈증은 없었는데, 1990년대 초에 대학 강의를 나가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군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제가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웃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 보고 디지털 강의 들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뭐든 읽고 깨우쳐 도움 되지 않는 게 없더군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늘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강조합니다. 아! 저보단 도림에 집중해야죠?(웃음) 이곳에 여경옥이 온 게 아니라 음식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얻고 싶네요. 오시는 분들 모두 도림 음식을 드시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