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의 직업적 페르조나(사회적 가면; 사회에서 맡는 역할)는 어떤가. 우리 사회엔 개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무릅쓰는 기자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기자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하자 ‘그럼 됐다’며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줬다고 한다. 기자만은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 믿은 것이다. 기자 중에 돈 벌려고 기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기자이기 때문에 고민하고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한다. 그래서 스스로 직업적 정체성을 강하게 요구해 비분강개하기도 하고 계몽질을 하기도 한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대한민국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을 시작한 정신과 의사 정혜신(마인드프리즘 대표)은 기자뿐 아니라 한국 직장인 대부분은 지나친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이 우려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우리 사회엔 과도한 부담을 주는 역할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 많다”며 그러다 보니 직업인으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면 남편이 귀가할 때 부인이 ‘여보 왔어요’라고 하지 않고 ‘회장님 어서 오세요’라고 한다. 회장이란 권위에 젖어 집에서까지 회장이란 가면을 쓰고 산다. 그 가면에 과도하게 동일시되는 경직성 때문에 (삶의) 불건전성이 나타난다.”
정 대표는 군인과 그 가족, 교사 성직자도 과도한 직업적 정체성에 휘말리는 직업군이라고 했다.
“군인의 아들은 집에서도 군대식으로 다뤄진다. 페르조나와 개인이 분리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교사나 성직자도 그렇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배우는 또 어떤가. 악역을 하는 어떤 배우는 시골 갔더니 아주머니들이 욕을 하고 돌을 던지기에 ‘내가 그렇게 연기를 잘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내부에 그런 사악한 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란다.
“서구에선 사이코 역을 맡은 배우들은 연기가 끝난 후 심리 상담을 받기도 한다. 과도한 동일시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직업이 과도하게 규제하고 요구하면 그걸 혼동하기도 쉽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사람을 기능적으로 규정해 과도하게 억압한다.”
그런 점에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게 치유의 근본 목표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마인드프리즘은 심리검사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내 마음 보고서’라는 이름의 세상에 하나뿐인 책자로 만들어 보내준다. ‘내 마음 보고서’를 정 대표는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라고 불렀다.
“어렸을 적 ‘밥 먹어라’라는 소리를 듣고 날이 저물었는지 배가 고픈지를 알았다. 그것처럼 내 마음 보고서는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꺼내 보고 나를 불러내 돌아보고 잠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내 마음 보고서는 사격에서 영점 조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공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할지 방향을 잃었다”
한게임 대박에 이어 카카오까지 대박을 터트려 IT업계의 우상이 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나는 마인드프리즘의 파트너”라고 밝혔다. 정혜신 대표는 “1000명이 넘는 CEO를 만났는데 그중 매우 성찰적인 3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김 의장을 소개했다. 김 의장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그 때문에 길을 잃게 됐다는 얘기로 시작했다.
“나는 삼성에서 유니텔을 시작할 때 있었다. 거기 있었기에 인터넷이 들어오는 것을 남보다 빨리 캐치했다. 그 뒤 인터넷에서 게임은 어떨까 생각했다.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이너스 통장 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커져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했다. 그렇게 해서 NHN을 포털 정상에 올려놓았다. 내 나이 40세가 되기 전 시가총액 10조원짜리 회사를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인생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멈춰야 했다.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남들이 보기엔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배는 정박해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니. 그러나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네이버는 이미 포털 1위의 자리를 굳혔다. 더 이상 내가 할 게 없었다. 1년간 가족 사회와 떨어져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음악 예술에 빠져들었다. 혼자서 성찰했다. 그리고는 중학교 1학년과 고2인 아이들을 설득해 휴학시키고 가족 안식년을 떠났다. 함께 밥 먹고 함께 PC방도 갔다.”
그렇게 해서 회사 대표가 아닌 아버지로서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딸이 신을 구겨 신기에 바르게 신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가 괜찮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일에 묻혀 집에선 전혀 영향력 없는 아빠였다. 아이를 한 번도 제대로 안아본 적이 없었다. 지금 같아선 쫓겨날 것이나 그때는 성공을 위해 그런 게 용인되던 시대였다. 어쨌든 그렇게 안식년을 보내면서 가족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 아들이 스물한 살이고 딸이 열아홉인데 집 나설 때면 뽀뽀를 한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다.”
김 의장은 이 대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구로 설명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김 의장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100인의 CEO 모임도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사회는 이렇다.
“첫째,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다. 나는 무모하게 도전해 성공했다.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내가 그리는 사회다. 둘째, 마음이 건강한 사회다. 나는 성공한 CEO들을 숱하게 만났다. 그들의 삶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을 감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꿈을 열어주는 카카오 페이지
김 의장은 ‘꿈 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려고 카카오를 시작했다고 한다.
“스마트폰 변혁기에 카카오톡을 시작해 성공했다. 그래서 카카오 전 직원은 상생의 모바일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애니팡 등 소수가 만든 게임이 전 국민의 게임이 됐다. 카카오는 ‘소통의 혁신을 통한 모바일 생태계’이다. 이를 통해 우수한 사람들이 계속 게임을 한다. 그러면 더 좋은 기회가 온다. 요즘 게임업체 사장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그들은 지금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최고의 기회가 왔다고 한다.”
아제 카카오 페이지를 콘텐츠 유통의 플랫폼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오는 9월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 이제까지의 플랫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플랫폼이다. 어떤 이에겐 월 1000만원을 버는 게 성공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월 100만원만 벌어도 성공일 수도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이루면 그게 성공 아닌가.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것이다.”
그는 특히 국내엔 벤처투자 환경이 극히 미약하다며 이 부분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가능성이 보이면 투자한다.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선 그게 안 되니 창업할 때 부모 친지의 돈까지 모두 동원해야 한다. 실패하면 모두가 어려워진다. 가족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창업이 어렵다. 창업 여건이 안된 나라다.”
그런 반성 속에 카카오는 새로운 벤처투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K큐브는 지난 1년여 동안 10여건을 투자했다. 우리는 팀이 좋으면 투자한다. 실패하면 팀 자체를 인수한다. 이런 방식으로 창업 부담을 줄여준다. 똑똑한 사람은 무조건 창업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큰다.”
마음건강 캠페인 나선 까닭은
김 의장은 마음건강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정 대표와의 만남부터 풀어 나갔다.
“지금 대한민국은 분노의 사회다. 그것도 심각해진 상황이다. 그래서 전 국민 힐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지난 2005~2006년 상담을 받았다. ‘내 마음 보고서’의 긴 버전이다. 500만원 정도를 냈다. 4시간 검사하고 4시간 상담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와 싸운 적이 없기에 그만큼 낙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얘기했더니 감정 마비의 초기단계라고 하더라. ‘헐!’ 화를 억제하는 게 발달하다보니 마음이 평온한 게 아니라 감정이 억제되는 최악의 상황이 됐다.”
그러면서 정 대표의 ‘내 마음 보고서’가 마음속 앙금을 풀어줬다고 했다.
“내 마음 보고서는 남들과 다른 나의 다섯 가지를 뽑아 준다. 그것을 가지고 나를 이렇게 만든 실마리를 찾게 된다. 내가 남들과 싸우지 않고 참고 살게 된 계기를 찾는데 3년이 걸렸다. 나는 어려서 방 2개짜리 집에서 8식구가 살았다. 자다가 깨면 부모가 싸우고 계셨다. 싸움이 심하게 나갔다. 저러다가 갈라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렇다고 막지도 못하고 무기력했다.”
김 의장은 과거의 앙금을 풀게 된 뒤 매우 편안해졌으며 그러다 보니 남을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어렸을 때 환경이며 부모님과의 관계를 알게 되면 고치기 힘든 단점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체를 아는 공포는 두렵지 않다. 그러나 실체를 모르면 엄청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 대표는 김 의장에게 안도현 시인의 ‘간격’을 처방으로 제시했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그 간격을 이해하고 나서 나는 치유를 받았다. 내 마음 보고서는 하루아침에 만든 게 아니다. 7년 이상 노하우가 쌓인 것이다. 해보지 않으면 이게 좋은지 모른다. 우리 모두 육체를 위한 검진은 자주 한다. 그러나 마음의 검진은 보이지 않는다고 간과한다. 마음을 진단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게 협력해 달라.”
김 의장은 “사람에겐 마음이 있다”란 정 대표의 강연을 듣고 철이 들었다고까지 부연했다.
“이제는 직원이 잘못을 지적해도 ‘멋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직원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무엇이 서운한지를 알면 설득은 쉬워진다. 경영자로서 성숙해진 것 같다.”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
김 의장과 정 대표는 지난 6월 26일 마인드프리즘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직장인 마음건강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한국의 직장인은 경제적 사회적 압박 속에서 지쳐 있다. 잠시 주춤하고 멈추는 게 필요하다”면서 대표적 감정노동자를 중심으로 심리치유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 마음 보고서는 나에게 묻고 답하면서 나를 완성해 가도록 제시한다. 과학적 분석을 했으나 인문학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진 시 처방을 하는 책이다. 이제 매월 50명씩 연 500명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 치유가 시급한 감정노동자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1군의 직장인은 매장 판매원과 호텔 종사자 고객 상담원 등이다.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이모 같은, 딸 같은 분들이다, 7~9월 중 이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2군의 직장인은 방송인이나 연예인 성직자 판검사 등으로 직업의 속성상 병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연예인은 대표적이다. 어쩔 수 없이 대중과 함께 해야 한다. 어느 연예인은 스스로 TV를 보면서 이질적인 느낌을 갖게 됐다고 할 정도다. 이게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성직자 상담도 많이 했다. 목사 사모님들은 사모란 자리 때문에 개인은 철저히 날아가 버린 사람들이다. 게다가 남에게 도움을 받기조차 어렵다.
3군의 직장인은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 교사 등이다. 특히 최근 사회복지공무원의 자살이 불거졌는데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은 긴급 출동했다가 매를 맞고 머리채를 잡히기도 한단다. 어떤 이는 ‘오늘은 안 맞겠지’하는 생각으로 나간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다보니 감정이 메말라서 희로애락을 전혀 표현하지 못한다. 대인관계가 망가지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1군이 끝나면 연말까지 2, 3군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한다. 이렇게 매달 50명씩 1년 동안 마음건강 캠페인을 진행할 방침이다.
김 의장은 “마인드프리즘은 주식회사이지만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1년의 캠페인 기간이 끝나더라도 이것을 시작으로 더 깊이, 더 오래 갈 것이다. 이번 캠페인은 500만원짜리를 축약해서 8만원까지 낮춘 것이다. 그래도 수익이 나면 그 아랫사람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일단 받아보면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못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마음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NHN의 경우 전 경영진이 심리검사를 받았다. 성공한 CEO도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개인일 뿐이다. 내면은 보통사람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도 내면엔 대단한 게 있다. 다만 우리 모두 편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치유 프로그램의 특이한 것은 시 처방이 나간다는 점. 심리검사 결과를 종합 분석해 각자에 맞는 시 한 편씩을 주고 두고두고 새기도록 한다. 사소한 것 같으나 효과는 대단하다고 한다.
“까칠하고 공격적이라고 소문난 한 CEO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시를 낭독하다가 울었다. 자기 내면에 대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마음 보고서’는 한 번 보고 버리는 책이 아니라 여러 번 들춰보는 책인데 그때마다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영점조정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게 정신과 치료의 솔루션이다. 대답을 주는 것은 치유에 반한다.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다.”
정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게 장벽인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성찰을 통해서 사회적 압박이나 대인관계 압박에 의한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만힐링 프로젝트는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함께 추진하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으로 일종의 사회환원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마인드프리즘의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IT와 접목해 대중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특히 올해는 직장인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치유 프로그램의 핵심인 ‘내 마음 보고서’는 자기성찰 보고서라고도 불리는데 마인드프리즘의 심리분석 노하우와 특허 받은 과학적 심리분석 시스템으로 찾아낸 심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개개인에 맞는 시 처방을 제공해 성찰을 통한 공감과 위로를 받도록 도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