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vator] 톰 켈리 IDEO 공동대표…미래를 얘기하는 한국, 잘 나갈 수 밖에 없죠
입력 : 2012.05.04 13:26:21
수정 : 2012.05.25 09:24:15
동그란 눈,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수북한 콧수염, 대머리에 여자만큼 높은 하이톤 목소리의 소유자. 마치 만화 주인공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유쾌한 인물은 세계적으로 가장 창조적인 기업 IDEO의 공동대표 톰 켈리다. 창밖으로 서울시내를 바라보던 톰 켈리는 이번 한국 방문이 어떠냐는 질문에 신난 어린아이처럼 대답했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다. 올 때마다 공기 가득 에너지를 느낀다. 나는 세계 30개국에서 강연하고 수백 군데를 여행했지만 한국처럼 미래지향적인 나라에 올 때면 내 가슴도 덩달아 벅차다.”
포춘 500대 기업 중 함께 일해보지 않은 기업이 드물 정도인 세계 최고의 창조적 파트너가 한국에 올 때마다 가슴이 뛴다는 것일까.
“유럽과 미국 등에 가면 과거에 집착하는 나라들이 많다. 과거에 무엇을 발명했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식으로 문명이 발달했는지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만 바라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디어를 통해 미래를 열기를 원하는 곳이 대한민국 같다.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한국에 진출할 계획은 없는가.
“IDEO는 지금껏 많은 한국 기업들과 일을 해왔다. 삼성과는 1990년대부터 함께 일하면서 5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현대카드 M과도 함께 일하면서 카드의 혁명을 일으켰고 새로운 현대카드의 브랜드를 성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웅진 코웨이와 함께 일했다. 그래서 정말 서울지사를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IDEO는 지경을 넓히는 데 매우 조심스러운 기업이다. 우리는 30년이 넘는 동안 꽤나 성공적으로 성장하면서도 세계 아홉 군데의 오피스밖에 두지 않았다. 닷컴버블이 일어났을 때 우리 주변 기업들은 몸집 키우기에 치중하면서 최대한으로 규모를 키웠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나마 해외 지사를 넓힌 것도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상하이와 도쿄,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었다. 아시아 지사를 둔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도쿄지사장이 사실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한국말도 잘한다. 그가 한국의 일도 도맡아 하고 있다. 가끔 그도 한국에서 있는 시간이 일본에서 있는 시간보다 많다면서 불평하곤 한다. 결과적으로는 아직 IDEO는 도쿄지사에서 한국의 일을 맡아 할 것이다.”
IDEO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주는 기업에서 이젠 교육을 도맡아 한다고 들었다. 애플 대학이나 픽사 대학처럼 IDEO 대학을 기대해 볼 수 있는가.
“교육기관을 설립할 계획은 없다. IDEO는 직원을 뽑으면 ‘IDEO 기초’라는 IDEO 101 클래스를 진행한다. 이것은 IDEO의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학습 정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특별히 직원들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101 클래스 안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창의적인 IDEO의 문화를 가르치고 그 문화가 잘 보존될 수 있게 알려주는 계기가 된다. 3~4일 정도 짧게 진행하면서 대표인 나도 한 명 한 명과 이야기하고 그들을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말한 바와 같이 IDEO의 고객들도 예전처럼 컨설팅을 받거나 물건에 대한 디자인을 해달라고만 하지 않는다. IDEO의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고객들이 늘었다. 사실 IDEO의 문화를 배우고자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업은 바로 일본 기업이었다. 현 파나소닉이 20년 전 처음으로 IDEO에 제품 디자인이 아닌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의뢰했다. 실제로 우리에게 지불한 돈도 ‘디자인 비용’이 아니라 ‘트레이닝비’로 본사에 청구했다. 당시 웃기는 기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선견지명이 있던 그룹이라고 생각된다.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공감하고 있는 것을 파나소닉은 20년 전에 알아차린 것 아닌가. 한국 기업 중에서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IDEO와 함께 생활한 기업이 있다. 바로 삼성이다. 삼성은 실리콘밸리에 IDEO와 공동으로 오피스를 만들고 함께 일했다. 우린 말 그대로 완전히 같이 살았다. 삼성의 문화는 이를 계기로 많이 바뀌었다. 삼성은 창조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고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문화가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IDEO의 창조적 혁신은 유명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아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사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줄 수 있는가.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가. 그가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 정통하려면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1만 시간을 한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IDEO는 창조적 혁신을 하는 것에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했다. 그래서 아마 IDEO가 창조적 혁신의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일반적 인간 관찰에서 시작한다. 다른 말로는 공감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 제품의 디자인이든, 운영에 있어서 다른 컨설팅이든, 경영 전략을 위한 혁신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공감대’를 중요시한다. 인간 관찰을 하면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고 어디가 문제인지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IDEO의 직원들은 창조적 혁신을 하는 법엔 정통했으나 모든 고객들의 주요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관찰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애쓴다.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IDEO에 새로운 은행 플랜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래서 우린 관찰로 시작했다. 관찰할 때는 타깃 고객을 정하는 것이 좋다. 특별히 꼭 필요한 고객층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객이든 좋다. 한 분류를 정해서 관찰하다 보면 더 넓은 층의 고객이 필요한 것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IDEO의 생각이다. 물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의뢰에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 아주머니들을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50대 아주머니들이다.
아주머니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가서 편안한 상태에서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다가 재미있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첫 번째는 베이비붐 세대 아주머니들은 그들의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것이다. 두 번째 더 재미있는 일은 미국에서는 여전히 개인 수표를 써서 세금 계산을 많이 하는데, 희한하게 계산하는 아주머니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금 계산서에 29.12달러라고 찍히면 30달러짜리 수표를 써서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왜 세금을 더 내느냐고. 사실 더 내는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달 세금계산서에서 지난달 더 낸 금액은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주머니들과 조금 더 친해지면서 이유를 알아냈다. 그들은 심플한 가계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29.12달러보다는 30달러라고 쓰인 가계부가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는 것. 그래서 나온 것이 IDEO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작품 ‘잔돈 가져(Keep the change)’ 직불카드다. 이 카드는 베이비붐 세대 아주머니들이 원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직불카드로 계산 하는 그 무엇이든 딱 떨어지는 정수에 맞춰서 계산된 것으로 나온다. 이 시스템은 1년 사이에 120만명이 가입했고 매년 가입자 수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고객에게 공감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해결책을 만들어내면 처음에는 상식적이지 않다거나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창조적 혁신이 되는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이디어에 친근한(idea-friendly) 문화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의 가치를 키워 줄 수 있는 기업문화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반응이 아이디어를 죽이는 것이면 안 된다. 특별히 고위층에 있는 임원들은 아이디어를 들으면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라 더 노련한 눈을 가진 상사로서 어떻게 하면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고객에게 해주는 것도 디테일한 한 가지의 미션을 끝내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경험의 지붕(arc of customer experience)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각각의 고객들에게만 해당될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기업은 꼭 성공할 것이다.” [황미리 매일경제 기업경영팀 연구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