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향 파주에 조그만 집을 지었다. 아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제 당신의 뜻을 이룬 건가요?’라 했다. 정원과 담장을 배열하고 창문의 위치를 잡는 것을 아내와 상의해 했다. 공정이 끝나기를 기다려 꽃과 나무를 심으려고 했는데 일이 끝나기 전에 아내는 병들고 말았다. 아내가 내게 말하기를 ‘파주 집 곁에 저를 묻어주세요’라고 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물만 흘렸다. 집이 파주로 이사 오던 날 아내는 관에 실린 채 왔다. 아내의 무덤자리를 정했는데 집에서 백보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인연 중 가장 질긴 것이 부부의 연이라고 한다. 50대는 흔히 하는 말로 ‘지지고 볶으면서’ 부부의 연을 맺은 누군가와 20~30년쯤 살았을 나이다. 달콤한 가슴 떨림은 이미 사라지고 없겠지만 어디 그것이 대수랴.
조선후기를 살았던 심노숭(1762~1837)이라는 선비가 남긴 글을 모아놓은 <눈물이란 무엇인가>는 조선후기 산문문학의 백미다. 특히 그의 책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갑내기 부인 전주 이씨를 추억 하는 글이 많다.
가부장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시대. 한 남자가 부인에게 바친 헌사는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1792년 아내와 사별한 이듬해 한식날 아내의 무덤에 나무를 심고 심노숭은 이런 글을 남긴다.
“지금부터 내가 죽은 날까지 봄가을로 나무심기를 의식으로 삼을 것이 다. 아! 이것은 참으로 오랜 계획이었다. 남원을 버리고 파주로 가겠다던 그 계획을 이제야 이루었는데 아내와 하루도 함께 기거하지 못했으니 뒤에 죽는 것이 다만 슬픔만을 더한다.”
죽음을 함께 못한 사랑은 모두 실패한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 실패다.
아내의 바람이었던 그 꽃과 나무를 끝내 보여주지 못했던 남편은 이제 회한의 감정으로 이를 가꾸는데 집착한다. 그렇게 가꾼 꽃과 나무를 보며 아내의 화신을 만나고 죽은 후에는 영원히 그 산에서 함께 하겠다는 심노숭의 절창이 가슴을 뒤흔든다. 우리 고전산문의 매력은 그것이 ‘초로(初老)문학’이라는 데 있다.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현대문학과는 달리 고전 산문들은 삶의 질곡을 어느 정도 겪은 50대 이상 계층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튀는 맛은 없지만 깊은 맛이 일품이다.
한문으로 씌여진 것을 번역한 글이라 ‘뜻글자의 독특한 매력’도 감칠맛이 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할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액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모든 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가슴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작자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눈물이 마를 날 없는 시간을 보내다. 문든 이런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든 중력을 무시한 채 가슴 깊은 곳에서 위로 솟아 눈으로 나오는 눈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함께 인생을 산 아내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선비들의 이별법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감동과 격조가 함께 느껴진다.
“내 마음을 토로하여 당신과 영결하고 싶은데 붓을 잡고 종이를 대하니 억장이 막혀 한 자 한 자 써내려 갈 때마다 눈물이 흘러 글이 제대로 안 되는구려. 당신은 분명 못다 한 내 말들을 알고 있을 거요. 부디 이 자리를 돌아보고 멀리 가지 마시기를.”
18세기에 살았던 선비 이만부가 부인의 죽음 앞에 바친 제문이다. 쉽게 표현하고 쉽게 돌아서는 지금보다 선비들의 사랑은 오히려 더 애틋했다.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을 테지만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반가의 법도를 중시한 조선의 선비들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애절하다.
조선 중기 명문장가이자 병조참판을 지낸 채팽윤도 부인의 죽음 앞에 절규한다.
“슬프고 슬프오. 인간사가 이럴 줄이야. 사립문 밖은 적막한데 세모에 바람 불고 눈 내려 보이는 것마다 스산하니, 눈물이 절로 떨어지는 구려. 죽은 자는 멀리 떠나도 산 자에겐 슬픔이 남는 구려. 막걸리와 몇 가지 찬으로 조촐한 제수를 마련하긴 했지만 어찌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겠소. 영혼이 있거든 이 마음을 헤아리구려.”
조선시대 부부간의 덕목은 ‘부부유별(夫婦有別)’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차별의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별이란 본분과 역할이 따로 있으니 이를 헤아려 서로 침범하지 말고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