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대해부… 메모리 반도체 수요 폭발 업사이클 전망, 시스템 반도체도 장기 상승 국면 진입
문지웅 기자
입력 : 2021.02.01 15:06:20
수정 : 2021.02.01 17:02:42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올해부터 내년까지 큰 호황을 맞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온다는 얘기다. 특히 증권가와 투자자들은 D램과 낸드 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문 베이스로 제품을 생산하는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일단 공장에서 찍어낸 재고를 바탕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판매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는 생산과 판매의 시차·오차가 거의 없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시차가 발생하고 경기 사이클에 따라 시차는 벌어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한다. 마지막 메모리 반도체 대호황은 지난 2017~2018년에 있었다. 보통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을 3년 정도로 보기 때문에 올해 코로나19 백신 보급 확대와 경제 정상화 과정에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내년까지 큰 사이클이 다시 한 번 올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이다.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1, 2위 기업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기업 주가를 끌어올려 올해 코스피 3000 시대를 안정적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SK하이닉스가 세계최초로 출시한 2세대 10나노급1y㎚ DDR5 D램
▶반도체 시장·업계 기본구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리서치 기관마다 다르지만 대략 43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30%를 차지하고 나머지 70%는 비메모리 반도체로 불리는 시스템 반도체 몫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다시 D램 60%, 낸드 40%로 나뉜다. D램은 컴퓨터, 노트북, 서버의 속도와 직결된다. 낸드는 저장 용량을 좌우한다. 낸드 플래시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상품이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대체하고 있는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다.
D램 시장은 글로벌 과점 상태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41.3%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SK하이닉스가 28.2%로 바짝 뒤쫓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은 25.0%로 점유율 3위를 기록 중이다. 3개 업체의 점유율 합계가 94.5%에 이른다. 기존에도 많은 업체들이 있었지만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을 견디지 못하고 3개 업체 과점 상태가 굳어졌다.
낸드는 D램보다 많은 6개 업체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낸드 역시 삼성전자가 지난해 3분기 기준 33.1%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다. 2위는 일본의 키옥시아로 점유율은 21.4%다. 미국 웨스턴디지털은 14.3%로 3위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4위(10.5%)지만 7.9%인 인텔의 낸드 사업부 인수가 끝나면 2~3위까지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인수가는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로 올해 말 70억달러, 2025년 3월 15일 20억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크게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인 CPU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 이미지센서인 CIS, 디스플레이용 반도체인 DDI, 인공지능 구현에 들어가는 그래픽카드인 GPU 등이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부문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있지 않고 글로벌 분업 구조를 갖는다. AMD, 엔비디아(NVidia), 퀄컴 등 팹리스(Fabless)에서 필요로 하는 반도체를 설계하면 디자인 하우스에서 설계 최적화를 진행하고 파운드리(Foundry) 전문 업체에서 위탁 생산을 한다.
반도체 공정은 워낙 복잡하고 초미세공정이 많아 설계대로 생산을 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7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업체는 현재 대만의 TSMC와 우리나라 삼성전자 2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와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시가총액 1~2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글로벌 시총은 엎치락뒤치락하지만 파운드리 시장에서만큼은 TSMC가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보인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55.6%에 이를 정도다. 삼성전자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점유율은 아직 16.4%에 그친다. 또 다른 대만 업체인 UMC의 점유율도 6.9%에 이른다. 파운드리 시장은 거의 대만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한국 정부 “올해 사상 두 번째 수출
1000억달러 돌파한다” 자신감
코로나19 확산, 재확산 등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992억달러로 2019년(939억달러) 대비 5.6% 증가하며 역대 2위 실적을 기록했다. 역대 1위는 가장 최근 반도체 초호황기였던 2018년으로 1267억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은 6개월 연속 플러스,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모바일향 수요는 부진했지만 비대면 경제 가속화에 따른 서버, 노트북 분야 수요 견조로 선방했다”며 “시스템 반도체 수출이 303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연간 기준으로 철강, 석유제품을 넘어 수출품목 5위로 도약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639억달러로 시스템 반도체의 2배가 넘어 수출 품목 1위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코로나19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도체 수출 역대 2위 기록을 세운 것은 올해 이후 전망을 더 밝게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전망을 종합해 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대비 8~10%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약 13~20%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올해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 대비 10.2% 증가한 1075억~11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역대 2번째 1000억달러 이상 실적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말은 곧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을 의미한다. 다만 2017~2018년 이상의 성과를 내기엔 아직 2% 부족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반도체 슈퍼사이클 진입 전망을 내놓은 이유는 5G 시장 확대, 비대면 경제 확산 지속 등으로 스마트폰, 서버, 컴퓨터 등 전반적인 전방산업 수요 증가가 올해 이후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가트너 등에 따르면 올해 스마트폰 시장은 2.4%, 서버 6.0%, 컴퓨터 5.8% 성장이 예상된다.
D램과 낸드의 구체적인 수요와 가격 전망도 발표했다. 우선 D램은 연초부터 초과수요로 전환해 그 폭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낸드는 초과공급 상태를 유지하다가 하반기부터 초과수요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D램 가격도 올해 1분기부터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반면 낸드 가격은 올해도 완만한 하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파운드리 위탁 수요 증가와 5G 통신칩, 고해상도 이미지 센서,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 수요 증가로 글로벌 시장이 5.5% 성장할 전망이다.
▶아마존, MS,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데이터센터 서버 투자가 핵심
앞서 우리 정부가 밝혔듯이 올해 메모리 시장 슈퍼사이클을 이끌 핵심 동력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등이 데이터센터 서버 시설투자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원래 이들 글로벌 빅테크 업체들은 지난해 서버 증설 등 시설투자(CAPEX)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와 반도체 가격 협상 문제, 인텔의 차세대 CPU인 아이스 레이크(Ice Lake) 출시 지연 등이 맞물리며 올해로 넘어왔다.
그러는 사이 구글의 유튜브는 최근 몇 차례 접속이 안 되는 사태를 빚었다. 그만큼 서버 증설, 교체 등을 미루기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투자는 올해 1분기에 재개될 전망”이라며 “2020년 코로나19로 데이터 트래픽은 폭증한 반면 데이터센터 투자는 록다운 여파로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자가격리,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등 데이터 트래픽이 지난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번 올라간 트래픽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으로 증가한 트래픽이 다시 내려오지 않을까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라며 “과거 통신사들이 공짜 데이터 용량을 늘려주면 가입자들은 그 기준으로 데이터 사용량을 늘렸고 그 후로도 트래픽이 지속 증가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트래픽은 오히려 앞으로 더 폭발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19년 41제타바이트(ZB)였던 글로벌 데이터 트래픽은 2025년 175ZB로 4배 이상 늘어나고, 2035년이면 2142ZB까지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게 자율주행차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완전자율주행차의 카메라, 라이다, 레이더 등은 하루에 4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소모한다.
한편 인텔은 올해 1분기 안에 10나노(㎚)급 아이스 레이크 서버칩 대량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인텔 아이스 레이크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보급되면 그동안 서버 투자를 미뤄왔던 많은 업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서버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당연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도 수혜를 입게 된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017~2018년의 초호황(영업이익률 60% 이상)은 발생하기 어렵겠지만, 통상적인 수준의 업사이클(영업이익률 40%까지 개선)은 향후 1~2년 사이 발생 가능한 상황”이며 “소수 집중형 서버 고객들의 판가 교섭력은 향후에도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며, 초호황보다는 안정적인 호황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 향방은
D램의 1등 수요처는 스마트폰이고 그 다음이 서버다. 둘이 합치면 대략 70% 정도 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마침 올해 스마트폰 판매도 지난해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화웨이, 샤오미 제재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에 유리한 환경이지만 샤오미향 D램 수출 타격은 불리한 환경이다. 반면, 서버용 D램 수요는 올해 확실히 큰 증가가 예상된다. D램 글로벌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혜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특히,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 공정을 적용하는 삼성전자의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3세대 10나노급(1z) LPDDR5 모바일 D램을 평택2 라인에서 생산한다고 밝혔다. D램은 구동 속도에 따라 DDR1, 2, 3, 4, 5로 구분되는데, 숫자가 높아질수록 기존 대비 2배씩 빨라진다. 스마트폰용 D램에는 LP(Low Power)가 붙어 LPDDR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파운드 업체 중 EUV 장비를 통해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이 가능한 곳은 삼성전자와 TSMC 두 곳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EUV 활용은 더 기대를 모은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상무부가 블랙리스트(Entity List)에 중국 SMIC를 올려 SMIC가 10나노 이하 선단 공정 연구개발을 진행하기 어려워졌다”며 “파운드리 선단 공정 시장에서 양대 강자(삼성전자, TSMC)의 과점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업황과 별개로 삼성전자는 지난 1월 18일 이재용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다시 구속돼 장기 투자 계획 등 차질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마침 파운드리 절대 강자인 대만 TSMC가 최근 예상치를 훨씬 뛰어 넘는 250억~280억달러 설비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SK하이닉스는 올해 예상한 대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펼쳐지면 별다른 악재 없이 고스란히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낸드 부진이 주가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나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며 “D램 가격이 하락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D램 재고는 매우 낮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올해 하반기 176단 4D 낸드 양산을 통해 주식 재평가(Re-rating)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