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원하면 금융사 고객 정보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줘야… 예비허가만 35개사 신청, 금융사 vs 핀테크 승자는 누구
이새하 기자
입력 : 2020.10.29 15:44:27
‘데이터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전 세계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경쟁에 뛰어들었다. 정부와 기업 등이 가공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새롭게 쌓인 데이터는 더 나은 서비스로 이어진다. 데이터를 가진 자가 더 많은 데이터를 갖게 되는 이유다. 데이터 특징은 ‘수요’와 ‘공급’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 개인이 모두 소비자이면서도 생산자다. 서로 다른 데이터를 결합하면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데이터의 힘이다. 예를 들어 결제 데이터와 검색 데이터를 합치면, 어떤 고객이 무엇을 검색하고 사는지를 알 수 있다. 데이터는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고갈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고, 아무리 사용해도 데이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이러한 데이터 가치 덕분에 데이터를 손에 쥐는 자가 승자가 되는 건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많은 빅데이터 중에서도 ‘금융 데이터’는 소위 ‘돈 되는’ 데이터다. 돈의 흐름은 물론 고객이 어떤 물건을 사는지 등을 엿볼 수 있는 결제 데이터여서다.
금융사들이 데이터에 집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돈 되는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이다. 하지만 같은 데이터를 보유하더라도,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빅데이터 그대로 두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뽑아내지 못한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와 핀테크 기업들까지 금융 데이터 전쟁에 뛰어들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빅데이터와 금융 데이터를 결합해 소비자들을 파고들기 위해서다.
▶마이데이터 사업 도입, 생존 위한 ‘열쇠’ 됐다
금융권 데이터 경쟁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제도다. 마이데이터란 흩어진 개인 신용정보를 한 가지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통합 조회·관리하는 제도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마이데이터 제도의 목적은 데이터의 주인인 ‘개인’에게 데이터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개인의 신용정보를 각 금융사가 독점했다면, 앞으로 개인이 원하면 금융사는 고객 정보를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줘야 한다.
우선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시행되면 은행과 보험, 증권, 카드사 등 각 금융사에서 따로따로 정보를 수집할 필요 없이 앱에서 모든 금융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앱만 열면 오늘 예정된 모든 신용카드 상환금액과 대출 이자상환액을 알려주는 식이다. 항공권 결제내역을 보고 앱이 알아서 여행자보험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마이데이터 앱에서 조회할 수 있는 본인 정보로는 ▲예금·대출(월 납입액, 금리, 만기일, 대출잔액, 상환일, 이자 등) ▲보험(보험 만기일, 납입금액, 주기 등) ▲신용카드(결제내역, 청구금액, 할부정보 등) ▲금융투자상품(거래단가, 잔액, 예수금 등) ▲통신(통신료 납부내역, 소액결제액 등) ▲지급결제(간편결제, 간편송금, 전자화폐 충전금액) 등이다. 국세·지방세는 물론 전기·수도세,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공공 분야 신용정보도 포함된다.
이 같은 데이터를 통해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개인의 투자·소비·지출 습관을 분석해 맞춤형 금융상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이 보험사에 본인 대중교통 이용 및 자동차 운전 습관 등을 제공하면 보험사가 자동차 보험료를 낮춰줄 수 있다. 고객들은 대출, 신용카드, 보험 등 금융상품 조건을 손쉽게 비교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품으로 갈아타면 된다.
KB국민은행을 예로 들면 그동안 자동차, 부동산, 투자, 생활, 보험, 뱅킹, 페이 등 각각 나눠져 있던 서비스가 통합돼 고객에게 제공될 수 있다. 부동산 정보와 시세와 함께 대출 상품을 보여주고, 차량 정보와 중고차 시세와 함께 대출 상품을 소개해주는 식이다. 단순히 보험 상품 추천을 넘어 건강검진 자료에 기반해 보험 관리를 해줄 수도 있다. 특히 은행들은 IT 기업들과 달리 온라인 앱은 물론 오프라인 지점도 있어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 기업들이 마이데이터 사업에 뛰어드는 건 금융업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에 쌓인 검색·결제 정보와 개인 신용 정보의 ‘연결’은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네이버가 이용자 후기를 모으는 플랫폼 ‘네이버 마이플레이스’ 서비스에 마이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다. 영수증을 인증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결제 내역을 손쉽게 연동해 생생한 후기를 남기는 것이다. 정보가 쌓이면 맛집 목록이 만들어지고, 가게 사장들은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매물과 시세를 보여주는 ‘네이버 부동산’과 마이데이터 사업을 결합하면 어떨까. 원하는 매물을 고른 뒤 곧바로 전·월세 대출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곧바로 대출 신청까지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일일이 은행을 찾아다니며 대출 한도와 금리를 비교했다면, 앞으로 네이버에서 모든 게 가능해지는 셈이다. 네이버 ‘지식인’과 금융도 결합될 수 있다. 지식인에서 활동하는 세무사와 주식 거래 투자자를 연결해 절세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다.
▶정보 어디까지 줄까
마이데이터 준비하는 금융사들
금융사와 빅테크들은 이미 마이데이터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기존 모바일 앱인 ‘하나원큐’를 업그레이드한 ‘뉴 하나원큐’를 선보였다. 하나원큐는 은행 앱이지만 하나금융투자와 하나카드, 하나저축은행 등 6개 계열사가 참여한다. 한 개 앱에서 모든 계열사 계좌 조회는 물론 금융 거래가 가능한 셈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 고객이 한도가 나오지 않으면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등 제2금융권 대출 상품을 조회하는 식이다. 하나카드도 비대면으로 발급 가능하다.
여기에 다른 은행 계좌까지 조회 가능한 ‘오픈뱅킹’을 더하면 사실상 하나원큐 앱만으로 다양한 금융거래가 가능한 셈이다. 얼굴 인증을 도입해 인증하는 데 1초면 충분하다. 예·적금 상품 가입도 1분이면 된다.
KB국민은행은 ‘마이머니’를 마이데이터 서비스로 선보인다. 신한은행도 마이데이터 서비스 ‘마이 자산’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KT와 손잡고 마이데이터 관련 공동 영업, 상품 개발 등을 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디지털금융부 안에 데이터 사업부를 신설해 마이데이터 사업을 맡는다. 모바일 앱 올원뱅크에 금융생활 분석 서비스가 들어가고, 공공데이터 연계 정부지원금 추천 서비스 등도 가능해진다.
특히 농협은 은행과 카드 등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하나로마트 등 ‘비금융’ 데이터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 전국 곳곳 오프라인 지점이 있어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결제 데이터’라는 다른 금융사보다 질 좋은 데이터를 보유한 카드사들도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서두르고 있다.
신한카드는 SK텔레콤과 ‘빅데이터 사업 전략적 제휴 업무협약’을 맺고 카드결제 데이터와 이동통신사 위치 데이터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최근 자산 관리와 소비 분석 등을 넣은 ‘리브 메이트 3.0’을 출시했다.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 상품을 추천해주는 기능도 강화됐다.
빅테크도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버킷리스트’ 서비스를 출시했다. 앱에서 원하는 금액과 주기를 설정하면 카카오페이가 알아서 자산을 관리해준다. 매주 모인 금액과 목표 달성 현황을 확인하고 빠르게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카카오페이가 돕는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죠르디’가 목표 달성 과정을 보여준다. 버킷리스트 계좌는 전월 실적·한도 제한 없이 매주 연 0.6%(세전) 이자를 준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출금·해지 가능한 점도 장점이다. 다만 마이데이터 사업을 두고 금융사와 빅테크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문제는 정보 제공 범위에 ‘주문 내역’을 포함할지를 두고 금융사와 빅테크 간 찬반이 나뉘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위는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고객 동의하에 온라인 상거래업체(전자금융업자)에서 고객이 언제 얼마에 어떤 상품을 구매했는지 주문 내역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A씨가 10만원짜리 빨간색 운동화를 샀다는 게 주문 정보다. 주문 내역은 고객의 호불호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금융사가 요구했던 부분이다. 반면 전자상거래업체들은 주문내역이 ‘신용정보’가 아닌 ‘개인정보’라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검정 속옷을 주문했다면, 이건 내밀한 개인정보라 다른 사업자에게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전자상거래업체들은 마이데이터 사업을 하지도 않는데, 정보를 줘야 한다고 불만이다. 금융사와 핀테크 업체들은 주문내역 정보가 없는 반면 전자상거래업체들은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은행 등 금융사들은 주문 내역을 당연히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우리도 주고 싶지 않아도 마이데이터 사업자에겐 모든 금융 정보를 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주문 내역을 주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네이버가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되면 주문정보와 신용정보를 모두 갖게 된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 가능성이 있는 건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는 게 금융사들 입장이다. 금융사와 전자상거래업체들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 관련 회의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이 회의엔 금융당국과 금융사와 핀테크 업체, 전자상거래업체 등이 참여한다.
두 번째 회의가 지난달 10일 열렸으나 일부 전자상거래 업체가 불참하면서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업계에선 전자상거래업체들이 정보제공을 피하기 위해 ‘분사’를 택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전자금융업자는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만, IT 등 일반 기업의 개인정보는 제외다. 이 때문에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 쿠팡은 쿠팡페이 등 전자금융업을 하는 계열사를 따로 만들었다. 11번가와 이베이 등 다른 전자상거래업체들도 이 같은 노선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정보 제공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주문 내역 정보가 신용정보에 포함돼 개인 사생활 침해가 염려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에 개인의 선호도까지 포함되느냐 관련 논란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합의를 잘 이끌어내겠다”고 답했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이르면 올해 안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우선 마이데이터 사업을 하려면 금융위원회 허가가 필요하다. 마이데이터 허가엔 최소 3개월(예비허가 2개월, 본허가 1개월)이 필요하다. 금융위는 한 번에 최대 20개 기업 심사를 차수별로 진행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이달까지 1차 그룹,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2차 그룹, 내년 2~4월 3차 그룹 등을 심사하는 방식이다. 대신 지난 5월 13일 이전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출시한 기업은 우선 심사 대상에 오른다. 마이데이터 사업이 현행 ‘자유업’에서 ‘허가제’로 전환되는 특수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이데이터 예비허가 신청을 받은 결과 35개 기업이 신청했다. 은행권에선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이 모두 신청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 NHN페이코 등 빅테크 기업들도 예비허가 신청서를 냈다. 카드업계에선 신한·국민·삼성·현대·우리·하나·BC카드 등 7개 카드사가 신청했다. 핀테크 업체들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를 포함해 레이니스트(뱅크샐러드), 보맵, 핀크, 한국신용데이터(캐시노트) 등이 신청했다.
같은 지주사에서도 각 계열사마다 마이데이터 사업자 신청을 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