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특목고 폐지에 술렁이는 학원가 부동산, 강남 넘어 목동까지 아파트 가격 ‘들썩’
이선희 기자
입력 : 2019.12.03 15:16:09
수정 : 2019.12.08 13:35:23
최근 TV에서 ‘(대입 전형) 정시 확대’ 뉴스를 본 주부 김아영(49) 씨는 중학생 딸을 학군 좋은 곳에 보내기 위해 강남 대치동 전세를 알아보던 중 급격하게 상승한 가격에 깜짝 놀랐다. 불과 6개월 전만하더라도 11억원이었던 가격이 요즘은 호가가 1억이나 뛰어있었다.
공인중개사는 “12월이 되면 전세 매물이 없으니 이거라도 빨리 잡으라”고 했다. 김 씨는 “올 초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갈까하다가 보류했는데 갑자기 정부가 자사고, 외고를 폐지하고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하니 학원 인프라가 좋은 강남 집값은 더 오르게 생겼다”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강남 전세 들어가기 힘들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자사고 재지정 취소’ 이후
대치동 일대 집값 상승
대표적 교육학군 강남 대치동 일대는 ‘자사고 재지정 취소’ 이슈가 불거진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대치동은 서울대 배출 상위 5위 안에 드는 휘문고, 단대부고에 진학할 수 있는 지역이다. ‘대한민국 사(私)교육 중심지’로 통하는 대치동 학원가를 끼고 있는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는 연일 신고가를 기록 중이다. 래미안대치팰리스 84㎥형은 6월 24억5000만원에서 8월 26억5000만원으로 올랐고 10월 14일 27억7000만원으로 1억원 이상이 뛰었다. 91㎡형은 불과 한 달 전 26억5500만원이었지만 10월 20일 27억5000만원으로 약 1억원 가까이 올랐다. 전세 계약은 더 활발하다. 11월에만 4건, 10~11월에는 각각 25건 이상 거래됐다. 래미안대치팰리스 102㎡형 전셋값도 6월 12억5000만원 수준에서 이달에는 호가가 14억원까지 올랐다.
래미안대치팰리스 주변의 한 공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수능 끝나고 신학기 이사철이 시작됐다. 미리 이사 와서 친구들도 사귀고 새 학기 준비를 하려는 발 빠른 부모들은 두세 달 전부터 움직였다”고 했다.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숙명여고가 바로 옆에 있는 도곡 삼성래미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발표한 10월 전세(월세)가 5건이나 계약됐다. 인근 부동산은 “전세 매물도 없을뿐더러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했다. 89㎡형은 전세가 4월만 해도 7억9000만원에 거래됐지만 9월에는 9억원, 10월에는 12억원에 실거래됐다.
대치동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현 정권이 교육평준화를 강하게 시행할 것을 알기 때문에 타지역 학부형 중심으로 이 일대 아파트 매매와 전세 문의가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올해 들어 강남 아파트 매매가가 계속 올랐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 정책 변화도 한몫했다”면서 “내년 1~2월 이사철에는 강남 선호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했다.
강남에 버금가는 ‘학세권’ 목동은 명문 중학교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 목동에는 특목고를 많이 보내는 명문 중학교가 많다. 서울 시내 특목고 진학을 가장 많이 이룬 월촌중, 신목중, 목운중이 있는 데다 지역 전반적으로 학업성취도 수준이 높아 학부모들의 선호가 높다.
특목고 진학률 1위인 월촌중을 끼고 있는 목동신시가지1단지 아파트는 전용면적 154㎡가 지난 10월 31일 21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인근 중개소는 “명문 중학교로 꼽힌 월촌중학교 바로 앞에 목동1단지 아파트가 위치해 있어서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월촌중과 목운중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세 품귀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목동신시가지1단지 전용 51.48㎡ 전세매물 호가는 최근 수천만원이 올라 4억원에 형성돼 있다.
목동에서 보기 드문 신축 목동힐스테이트도 ‘신축 품귀’ 현상과 학군 프리미엄이 겹쳐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84㎡형은 7월 12억원에 거래됐지만 10월 12일 12억7000만원이 거래됐다. 대출 한도, 자금 출처 조사 등 정부의 각종 규제로 거래가 얼어붙은 10월에도 이 단지는 매도 계약이 6건이나 일어났다.
10월 목동 신시가지로 이사한 한 학부모는 “아이 교육은 환경의 영향이 크다. 학원 인프라는 단기간에 생길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면학분위기가 조성된 곳으로 움직이자고 생각해서 이사를 결정했다”면서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는 더 가격이 오를 것같아 서둘러 결정했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값이 19주 연속 상승(11월 14일 기준)하는 가운데 명문 학군지로 꼽히는 지역들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1월 둘째 주 주간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평균 0.09%로 상승세를 기록했다. 강남 3구는 이를 웃도는 상승률을 보였다. 서초는 0.14%로 지난 6월 이후 계속 상승세를 보였고, 강남은 0.13%, 송파 0.14% 등 강남 3구 집값은 일제히 올랐다. 목동 학군으로 꼽히는 양천은 0.11%로 8월부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계 학원군 노원도 0.06%로 6월 이후 상승세로 반전한 후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서울 집값 상승에 대해 “매물이 부족한 신축과 학군 및 입지 양호한 선호단지 중심으로 상승폭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강남 아파트 매수세 더 강해져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강남 아파트 매수 수요가 강해지는 분위기에서 자사고·외고 폐지 정책이 명문 학군에 대한 선호를 자극해 집값을 더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사고뿐 아니라 외국어고 등 특목고가 없어지면, 전통 명문고들이 모여 있는 8학군이 존재감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강남 땅값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자사고 폐지는 명문 학군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강남 8학군뿐 아니라 목동·중계동·분당·판교 등 지역 명문 학군에 학부모의 관심이 쏠릴 것이다. 학군과 함께 대형 학원가가 몰린 이 일대 집값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소위 명문 학군으로 불리는 ‘강남 8학군’ 부동산의 상승은 지난 7월 자사고 지정 취소 때부터 조짐이 보였다. 7월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8곳을 지정 취소했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강남으로 가야한다”며 강남 전셋값이 꿈틀댔다. 지정 취소된 8곳 중 2곳을 제외하면 모두 강북에 있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한 뒤 명문 학군지 부동산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당시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 논란이 일자 “대학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 해달라”고 주문한데 이어 아예 “정시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정책화할 것을 발표했다. 이어 다음 달 정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과 함께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양천구 목동 아파트 일대 전경
▶대치동, 중계동, 반포동 순
학원 인프라 잘 갖춰져
학부모들은 거주지에 기반한 추첨제로 고등학교를 배정받는 시스템에서는 명문 학교를 품은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일반 고등학교는 1단계 서울시내 학교에서 지망을 해서 추첨으로, 2단계는 구끼리 묶여 있는 학군 중에서 희망하는 학교를 적어내 추첨한다. 3단계는 거주지에서 40분 안에 갈 수 있는 통학편의를 기준으로 그 범위 내 학교에 신청하고 전산추첨으로 학교를 배정받는다.
서울 잠실동에 거주하는 학부형 김장훈(54) 씨는 “외고나 자사고가 있을 때는 대안이 있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강북이어도 자사고를 보내면 됐지만, 이젠 그런 대안도 없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면서 “아무래도 명문 학교에 가까운 곳에 살면 그 학교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답은 강남 아니겠냐”고 했다.
부동산 정보 앱 호갱노노에 따르면, 학원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곳은 대치동, 중계동, 반포동 순이다. 호갱노노가 학원 개수를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서울 학원 최고 밀집지역은 대치4동 부근으로 한티역과 도곡역, 대치역 일대다. 이 일대 학원은 748개로 전국 최고였다. 그 외에 노원 중계동(212개), 양천구 목동(136), 서초구 반포동(127개), 송파구 잠실(97개), 강동구 명일동(97) 등이 학원 밀집군이었다.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3월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집을 알아보려는 학군 이사 수요가 본격화되는 시기다. 올 12월부터 명문 학군지는 매물 찾기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명문 학군 지역은 수능 직후인 12월 아파트 거래량이 대폭 증가한다.
양지영 연구소장은 “학군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조성될 수 없다. 오랜 시간, 그 지역 학원가 초중고 학교 시설이 결합해서 형성돼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선택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서 “자사고 폐지를 계기로 강남 8학군뿐 아니라 목동·중계동·분당·판교 등 지역 명문 학군에 학부모의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