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6·19 가계부채대책 발표 후 수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시장을 압박해왔다. 정부의 시장 압박 무기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세금과 대출규제였다. 이미 작년 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올해 9·13 부동산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추가 대출을 일절 통제했다.
올해 4월 이후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 때 양도세 부담이 훨씬 커져 최고 62%의 세율을 받아들게 됐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을 대폭 늘리는 안은 7월 기획재정부가 확정한 후 9·13 대책을 통해 그 강도를 더 세게 만든 후 확정해 국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두 가지 압박수단을 갖고 겨냥한 대상은 서울과 경기도, 세종시, 부산 일부 등 ‘규제지역’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다주택자’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들에 대한 압박은 커진 게 맞다.세금을 많이 걷겠으니 더 이상 집을 사지 말고, 있는 집도 팔라는 메시지다. 이는 어느 정도 먹혀들어 9·13 부동산대책 발표 후 시장은 냉각됐고, 서울의 강남권 등에서도 가격하락은 실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 조건에서 나온다. 몇 군데를 콕콕 집어내는 소위 ‘핀셋규제’를 하다 보니 이 핀셋이 잘못 나간 경우가 있었다. 지역적으로 보면 부산이 대표적이다. 부산의 해운대, 연제 등 7개 구·군은 작년 11월로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는데, 이후 시장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정부는 결국 최근 이 중 기장군만 조정대상지역에서 제외시켰지만, 부산의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부산의 아파트값을 보면 1월부터 11월 2주차까지 누적으로 3.69%나 떨어졌다. 6대 광역시 중 지역경제 문제로 계속 상황이 안 좋은 울산 다음으로 나쁜 숫자다. 역대 최고 청약 경쟁률을 연신 갈아치웠던 부산은 최근 1순위 마감이 힘든 단지가 속출할 정도로 신규 분양시장마저 얼어붙어버린 상황이다.
▶‘핀셋규제’의 부작용
시중 유동성 여전… 김포· 부천 등 주목
핀셋규제의 부작용도 있었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정부가 서울을 옥조이고, ‘준서울’이라는 성남시 분당구 일대와 과천, 동탄2신도시 등에 이어 광명, 하남, 안양 동안구 등까지 콕 집어 규제지역으로 정했다. 정부가 찍은 곳의 투자는 어려워졌고, 시중의 유동성은 갈 곳이 없다. 예금 금리는 너무나 낮고, 주식시장은 폭락했으며, 한동안 달아올랐던 비트코인 등은 주저앉았다.
그런 상황에서 8·2 부동산대책 이후 9·13 발표 전까지 부동산 가격은 그래도 끊임없이 올랐으니 유동성은 다시 부동산을 찾았다. 그런데 서울 등 규제지역 투자는 쉽지 않아졌다. 자연스럽게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규제를 피한 수도권이 눈 돌릴 대상이 됐다. 경기도에선 그동안 가격이 올라도 너무 안 오른다고 했던 부천, 김포 등이 대표적이다.
부천의 경우 서울과 바로 인접해 있는 수도권 대표 신도시임에도 불구, 그동안 부동산 시장이 조용했다. 부천은 올해 들어 9·13 부동산대책 발표 전인 9월 둘째 주까지 1.3%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9·13 이후 갑자기 부천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규제지역에서 벗어나 있어 서울 대비 여러 가지 제한사항이 없었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투자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다. 여기에 최근 들어 교통 관련 호재가 많아지면서 서울 접근성이 부쩍 좋아진 것은 이같은 부천 상승세에 불을 붙였다. 지하철 7호선을 통해 강남권 이동이 쉬워졌고, 지난 6월 개통한 소사원시선 복선전철로 시흥이나 안산 등으로의 이동도 1시간 30분 이상에서 30분대로 단축되는 등 교통여건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2021년 개통 부천 소사역~고양 대곡역 노선이 정식 가동될 예정이고, GTX-B와 송내~부천역 트램 신설 등 사업도 진행 중에 있는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9·13 직후인 9월 셋째 주부터 11월 둘째 주까지 9주 동안 부천 아파트값은 2.1%가 올랐다. 2달여 만에 9달 동안 오른 가격상승률의 1.5배가 넘게 상승한 것이다. 여기에 11월 ‘래미안 부천 어반비스타’라는 새 아파트가 오랜만에 나오면서 부천의 분위기는 식을 줄 모르는 상황이다.
김포도 마찬가지다. 김포는 김포한강신도시가 들어서며 대규모 분양이 쏟아져 미분양이 속출했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규제에선 이 때문에 벗어났고, 어떻게든 띄우려는 노력에도 불구, 제대로 띄워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올 들어 11월 둘째 주까지 김포의 아파트값은 1.13 %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런데 이 숫자는 최근의 ‘미친 상승’ 덕분에 나온 것이고, 9·13 부동산대책이 없었다면 마이너스에 머무를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줄곧 마이너스를 거듭하며 신음하던 김포 아파트 시장은 9·13 부동산대책 발표 후 마이너스 폭이 2주 연속 확 줄어들더니 10월 첫 주 상승으로 전환했고, 이 추세는 7주 연속 계속돼 이 기간 동안에만 1.1%가 올랐기 때문이다. 11월 둘째 주엔 서울과 경기도 주요지역을 통틀어 아파트값이 한 주간 가장 많이 오른 곳으로 등극했다. 11월 2주차 김포 아파트값은 0.29% 상승했다.
김포가 갑자기 뜬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서울 인접지역임에도 불구, 비규제지역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올라 서울 아파트 가격의 절반 이하에도 내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점은 투자자뿐 아니라 실수요자들도 끌어당겼다. 김포는 더구나 새롭게 개발된 마곡과도 지리적으로 가깝다. LG전자 등 기업도시로 거듭난 강서구 마곡 일대는 기업의 힘으로 아파트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마곡 힐스테이트’ 전용 84㎡는 11억8500만원에 10월 거래됐는데, 김포 일대 동일면적 아파트는 아직도 4억원 선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청약시장에서 연일 신기록
인천은 청약시장에서 최근 연일 신기록을 쓰고 있다. ‘수도권’ 카테고리로 묶이지만 서울이나 경기도 핵심지에 비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던 인천은 최근 중단됐던 신도시 및 개발사업이 재개돼 분양에 들어가고, 서울을 피한 투자자들이 이를 따라 움직이면서 연일 ‘핫’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청약을 접수받는 아파트투유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인천 검단신도시에 첫 분양 단지인 ‘검단신도시 호반베르디움’은 평균 6.25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 마감했다. 이어 서구 가정동에서 분양한 ‘루원시티 sk리더스뷰’에는 총 3만5443명의 청약자가 몰리며 평균 24.48대1의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위 단지들은 9·13 부동산 대책 비규제 지역에 들어서, 분양 전부터 실수요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큰 관심을 끌었으며 성공적인 분양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11월엔 미추홀구 일대 도시재생사업이 오랜 진통 끝에 성과를 내 아파트 분양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화건설의 ‘인천 미추홀 꿈에그린’은 주안역 일대의 대규모 초고층 주상복합단지로 다소 낙후됐던 이 일대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몸에 받고 있는 단지이기도 하다.
수도권의 비규제지역으로 풍선효과가 도드라진다면, 상품 쪽에선 아파트 대비 규제가 없는 오피스텔과 단독주택 등으로 반사효과가 옮겨 붙고 있는 형국이다. 오피스텔은 원래 ‘상업용 부동산’으로 분류돼 사무실로 쓰는 용도와 주거용으로 쓰는 용도가 혼재된 독특한 상품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신규 분양에서 사무실보다는 소형 아파트를 대신할 소형 주거공간으로 많이 포지셔닝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업용 부동산’ 카테고리에 있어 아파트와 달리 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주택 숫자 산정시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소액직접투자가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상품이기도 해 규제 속에서 오히려 오피스텔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단, 이는 서울과 수도권 등 핵심지 오피스텔에 국한되는 현상이라는 점은 알아둬야 한다. 서울의 경우 규제지역이지만, 이 규제를 피한 오피스텔은 훨훨 날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오피스텔 매매가격지수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올해 단 한번도 작년보다 낮은 10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꾸준히 상승했다.
올해 1월 100.3을 기록했던 서울 오피스텔 매매지수는 9월 101.9까지 올라가 1.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세지수도 1월 100.1에서 9월 101.4로 1.3% 올라갔다. 월세지수는 보합수준이긴 하지만 0.1%나마 올랐다. 9·13 이후 오피스텔 시장 상황은 더 좋아졌다. 8월 대비 9월의 매매와 전세지수를 보면 각각 0.2%씩 상승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경기도도 소폭이나마 상승했다. 공급과잉 우려가 있었지만 서울 인접지역 역세권 오피스텔 흥행에 힘입어 올 들어 3분기 누적으로 0.3% 상승한 것. 결국 규제 풍선효과가 오피스텔로 붙었다는 것이 통계를 통해서도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규 오피스텔 청약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대우건설의 ‘화서역 파크 푸르지오 오피스텔’은 10월 청약접수를 받았는데 최고 278대1, 평균 6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안양시에서 분양한 ‘범계역 힐스테이트 모비우스’는 622실 모집에 6만5546건의 청약이 접수돼 평균 경쟁률 105대1을 기록했고, 스타필드 고양을 끼고 있는 삼송역 역세권 오피스텔 ‘삼송 더샵’ 역시 평균 11대1, 최고 138대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또 오피스텔의 경우 10억원이 넘는 고가라도 10억원 이상 아파트 대비 규제가 아예 없다시피 하다보니 고가 오피스텔로의 쏠림현상도 감지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10억원 이상 고가 오피스텔 거래가 183건으로 집계됐다. 10억원 이상 오피스텔 거래는 2015년 118건, 2016년 126건이었고 작년에는 149건이 이뤄졌는데, 이미 올해는 작년 전체 숫자를 누른 상태다.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매매가 상승
최근 들어 주택 시장에 대한 강한 규제로 아파트 거래가 어려워져, 이를 모두 피해간 오피스텔이 각광받고, 이 중에서도 또 ‘똘똘한 한 채’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투룸 혹은 쓰리룸 형태로 구성된 주거용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커뮤니티시설이나 구조 등에서 큰 차이가 없다. 역세권 핵심입지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싱글 부자들의 경우 오히려 이 같은 상품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10억원 넘는 고가 오피스텔 거래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매매가도 상승세다. 시세차익보다는 임대수익을 주로 하는 오피스텔 시장이지만, 고급 오피스텔은 시세 상승도 뚜렷하다. 강남구 청담동 소재 ‘피앤폴루스’는 2003년 분양 당시 3.3㎡ 당 가격이 2400만원 수준이었는데, 올해 7월 전용 195㎡가 38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3.3㎡ 가격이 3300만원까지 올랐다. 가격은 10억원이 넘게 올랐다.
용산역 바로 앞에 위치해 신용산역과 바로 연결되는 ‘래미안용산더센트럴’의 경우에도 일반 소형 아파트 크기인 전용 77㎡ 매물 호가는 10억원을 넘어섰고, 지난 8월 실제 거래가격도 9억원을 찍었다. 이 면적 분양가는 7억~8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입주 1년여 만에 최소 1억원, 최고 3억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힐스테이트 판교역’도 10억원이 넘는 고가 오피스텔 분양을 단행했고,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 일대에 들어서는 ‘더 라움’도 소형 럭셔리 주거상품을 표방하며 전용 58~74㎡의 소형면적을 10억원 이상 매겨 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규제를 회피한 또 다른 상품인 단독주택도 브랜드를 단 블록형을 중심으로 잘나가는 추세다. 프라이버시 보호, 여유로운 공간 확보, 나만의 스타일 구성 등 아파트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 아파트 위주로 구성된 대한민국 주택시장 속에서 주택에 대한 관리와 책임이 온전히 집주인에게 있고 보안 부문이 취약한 단독주택의 인기는 낮았다. 그러나 대기업 건설사들이 ‘블록형 단독주택’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개발, 서울과 멀지 않은 곳에 분양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노년층을 중심으로 이 상품이 각광받고 있다. 청약통장 없이도 청약신청이 가능하고, 전매가 허용되는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피해갔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작년 초 GS건설이 김포일대에 분양해 최근 입주 3개월차를 맞은 ‘자이더빌리지’의 경우 분양가 대비 1억원 이상 시세가 상승한 상태다. 분당 일대에 KCC건설이 짓고 있는 ‘동분당 KCC스위첸 파티오’는 지난 6월 분양하면서 19대1이라는 높은 평균 청약경쟁률로 성공리에 마감했다. 최근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분양한 태영건설의 ‘운정신도시 라피아노 4단지’ 46가구도 10대1의 경쟁률로 성공리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