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는 채민정(33) 씨는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라운지바 ‘디브릿지’의 단골 고객이다. 그러다 최근 P2P 대출회사 피플펀드가 디브릿지에 대한 투자금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윳돈 1000만원을 지체 없이 피플펀드에 입금했다.
채 씨는 “평소 자주 찾아 익숙한 단골집이라 돈이 될 것 같아 투자했는데 VIP고객으로 등록돼 파티에까지 초대받을 수 있었다”며 “다른 투자할 만한 재밌는 P2P 투자상품이 있는지 더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P2P금융으로 몰리고 있다. 온라인에서 대출자와 투자자를 직접 중개해주는 P2P금융은 최근 성장세가 가팔라졌다. 공연과 맛집 등 트렌디한 투자상품이 다양하게 출시된 데다 평균 10%가 넘는 높은 투자 수익을 거두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세 재테크 수단’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P2P금융 연구기관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P2P금융사들의 누적대출액 합계는 지난 4월말 기준 1조1000억원을 돌파하며 P2P대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올 들어서만 누적대출액 5000억원을 돌파했으며 현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누적대출액 1조5000억원을 가뿐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P2P대출 1조 돌파
P2P금융 성장세는 올해 들어 특히 두드러졌다. 올 1분기에만 3340억원 규모의 대출이 실행돼 전년 동기(496억원) 대비 대출액이 6배 이상 급증했다. 올 들어 신규 업체 23곳이 새로 생겨나면서 P2P업체 수도 144개로 불어났다.
올해 들어 P2P금융이 급성장한 것은 이달 말부터 P2P대출을 규제하는 가이드라인 시행을 앞두고 P2P대출업체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데다 예·적금 금리가 낮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10% 이상의 고수익을 제공하는 P2P금융에 대거 쏠렸기 때문이다. 한국 P2P금융협회에 따르면 P2P대출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평균 13.93%의 수익률을 올려 평균 1~2%대에 그친 다른 금융상품 수익률을 크게 앞섰다. 이승행 P2P금융협회장은 “저금리 기조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P2P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며 “차입자 입장에서도 2금융권보다 낮은 중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어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부동산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담보대출이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분야별 누적대출액을 살펴보면 신용대출이 2154억원, 담보대출이 7879억원을 기록해 담보대출 비중이 80%에 가깝다. 담보 P2P는 올 1분기 대출액이 2842억원을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부동산 P2P대출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무래도 담보물이 있기 때문에 신용대출에 비해 투자원금 회수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업체가 부도를 내더라도 담보로 잡고 있는 토지를 경매로 넘기면 투자금 중 일부를 상환받을 수 있다. 피플펀드, 8퍼센트 등 그동안 개인신용대출만 취급하던 P2P업체들도 부동산담보대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중금리 대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P2P업계는 여전히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P2P금융이 이미 저금리 시대에 맞춰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인건비 등 비용이 크지 않아 새 경쟁자들을 상대로도 금리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2P 신용대출 분야 1위 업체 8퍼센트는 지난 13일부터 ‘금수저 증정 최저금리 보상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른 금융기관에서 자사 신용대출보다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으면 현금 10만원과 24K 금수저를 제공한다.
P2P금융은 시중 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중·저 신용자를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P2P업체 어니스트펀드는 오는 20일부터 기존 신용평가모델에 더해 머신러닝 기반의 신용평가를 추가할 예정이다. 대출자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신용평가를 적용해 한 평가에서만이라도 통과되면 대출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승인율을 높이는 것이다. P2P업체는 독특한 투자상품이 많아 평소 관심이 많은 분야에 투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P2P업체 미드레이트는 최근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했다. 팝아트 작가인 마리 킴의 ‘신데렐라’, 극사실주의 화가 고영훈 작가의 ‘스톤북’에 투자한 데 이어 다음주 중 새로운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P2P대출 취급회사 148곳 달해
P2P투자에 몰리는 돈에 업체들도 우후죽순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에만 9개 업체가 새로 생겨났다. 지난달 기준 P2P대출 업무를 취급하는 회사는 148곳에 달한다. P2P협회 사무직 직원 1명을 뽑는 공채에 금융권 직원 100여 명의 지원이 몰리는 이색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초기에는 청년 스타트업 형태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금융회사에서 퇴직한 사람이 치킨 가게가 아니라 자신의 전공을 살려 P2P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P2P금융시장의 급격한 성장세가 정부 규제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새로운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규제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P2P업체들마저 운신의 폭이 좁아져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위가 지난해 11월 ‘P2P 대출가이드라인’을 발표함에 따라 오는 5월 29일부터 개인투자자가 P2P업체 한 곳당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1000만원으로 제한된다. 또 P2P업체는 받은 투자금을 은행, 상호저축은행, 신탁업자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예치 또는 신탁해야 한다. 자기자본으로 대출해준 뒤 투자자를 모집하는 영업 방식도 막힌다. 금융당국이 행정지도를 준수하지 않는 P2P 연계 금융사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밝혀 영업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당국 기준이 애매해 P2P업체들이 기업투자나 법인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크라우드연구소는 “투자 가능금액이 축소되는 것에 대비해 P2P업체들이 신규 회원 유치 및 기존 회원 이탈 방지를 위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며 “대출 가이드라인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 고액 투자자 중심으로 투자금액을 늘리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욘드펀드
▶은행대출 힘든 저신용·자영업자도 중금리 대출
P2P금융은 투자자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저신용자 등 돈을 빌리는 차주 입장에서도 새로운 대출 돌파구로서 금융 소외계층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를 운영하던 김병섭(32) 씨는 지난해 1월 또 다른 이자카야를 내기 위해 P2P 대출업체에서 7000만원을 빌렸다. 은행에서 이미 1억원 대출을 받은 김 씨에게 P2P업체가 제시한 ‘연 11% 이자에 18개월 상환’이란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김 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이자카야 브랜드를 내기 위해 동일한 P2P 대출업체에서 또다시 6000만원을 빌렸다. 지난 대출에서 성실상환을 인정받은 김 씨는 ‘연 10%에 1년 내 상환’이란 더 나은 조건으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엔 점포 하나를 더 내기 위해 ‘연 9%에 1년 내 상환’ 조건으로 3000만원을 대출받기로 했다. 이렇게 총 세 차례나 P2P대출을 이용한 김 씨는 현재 이자카야 5개를 운영하며 연 40억원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으로 성장했다.
김 씨는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들은 부가세증명원 등 소득증빙만 보고 개인신용을 평가하지만 P2P업체는 대부분 점포의 실제 매출을 바탕으로 대출 심사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담보 없이 매장의 매출만을 바탕으로 P2P업체에서 신용대출을 해주기도 한다. 김 씨는 “은행에서 대출한도를 초과한 사람들이 P2P업체를 이용하면 2금융권보다 더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대상 P2P업체인 펀다 관계자는 “P2P의 중금리 대출을 통해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대환해 신용등급을 관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P2P금융을 이용하면서 신용등급 상승의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외국계 리서치 회사 직원 최태욱(34) 씨는 갑자기 올라간 아파트 전세금 마련을 위해 카드론 2건, 보험 담보대출 1건, 고금리 대부업 대출 2건 등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P2P업체 피플펀드를 알게 돼 기존 채무를 상환하고 ‘피플펀드론’으로 차환 대출을 받았다. 최 씨는 기존 신용등급 6등급에서 P2P대출로 차환한 후 즉시 신용등급이 3등급으로 상승했다. 또한 대부업체 대출 이자로 27.5%를 내다가 피플펀드로 갈아탄 후 이자도 15.64%로 줄어 월평균 10만원 이상을 절약하고 있다.
▶원금보장·예금자보호도 못 받아
P2P금융은 빠르게 성장한 대출시장인 만큼 ‘투자 주의보’도 잇따르고 있다. P2P업체들은 대부분 대부업으로 등록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투자자들도 원금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에 현혹돼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이 ‘P2P 투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P2P금융이 주력하고 있는 부동산 대출에 대해 금융당국은 “원금 손실 가능성을 줄이려면 담보대상과 채권순위, 담보인정비율(LTV), 담보권 실행 방식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권고한다. 부동산 관련 대출 상품이 대개 1년 이내의 단기 대출로 이뤄져 있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채무상환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말 기준 P2P 대출 잔액 3357억원 중 부동산 관련 상품은 2214억원으로 66%에 이른다.
최근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연체율과 부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을 주로 취급하는 빌리는 지난달 말 현재 연체율이 6.83%다. 3월 말 0.11%에서 급격히 높아졌다. 특히 부동산 관련 대출은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개인 신용 대출은 서민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부실화가 우려된다. 따라서 P2P업체를 고를 때는 가급적 협회에 소속돼 있는 회원사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한국P2P금융협회가 출범했으며 4월 현재 40여 개 회원사가 협회에 등록해 영업 중이다. 전문가들은 P2P대출에 투자할 때 수익률만 좇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누적 대출액, 연체·부실률, 상품별 담보율 및 투자 등급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크라우드연구소 차미나 선임연구원은 “P2P대출 투자 수익률은 모든 비용을 제하고 난 뒤 대체로 8% 전후”라며 “지나치게 수익률이 높다면 투자 위험도 그만큼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현지 최대 P2P업체인 렌딩클럽이 지난해 부실대출을 한 사실이 내부감사를 통해 적발된 바 있고, P2P금융이 급성장 중인 중국에서도 부동산 투기를 이용해 투자자금을 횡령하는 업체들이 잇달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전문가들은 “상품 구조상 수익률이 높을수록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에 과도하게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업체는 경계하는 게 좋고, 상품의 부실률과 연체율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권고했다.